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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06. 2023

통 큰 우크라이나 여인과 쫑파티


사람의 일에는
만남과 이별이 있다.


한 달 동안 영어교실을 쉬다가 돌아갔더니, 내년부터 선생 린이 1년 동안 휴직계를 내었다고 했다. 수업시간에 우크라이나 여인 그녀가 선생에게 물었다. 다다음 시간이 너와 마지막 시간이야?라고. 우리 반은 내가 한국에 살던 때나, 여기서 한국들과 어울려 지낼 때처럼 리더가 따로 없다. 그러니 이럴 땐 좀 난감하다. 누군가 반이 되어 케이크를 사든지, 꽃을 준비하여서 함께 손뼉을 치면서 감사 표시를 해드리면 좋을 텐데, 연령대도, 살아가는 방식도, 출신국가도 다르니 섣불리 운을 떼기 좀 머쓱했다.


오늘이 그녀와
마지막 수업날이다.


난 그녀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 코리언 대표푸드, 잡채를 정성스럽게 쿡했다. 당근, 양파, 버섯, 파프리카를 최대한 가지런하게 채 썰고, 브로콜리를 초록색이 명징하도록 삶아내었다. 불고기는 달짝 짭짤하게 미리 양념을 해두었다. 뜨겁게 달궈진 에다 하얀색 양파부터 시작하여 붉은색 파프리카까지, 차례대로 지직 달달달 볶아내었다. 참기름 솔솔 뿌리고 20인분을 거뜬히 쳐내었다. 그녀, 선생 린의 잡채를 따로 한 팩, 한련화로 장식을 하여서 정성 들여 담았다. 마침, 오늘은 블랭킷 바디스에 뜨개질한 것을 갖다주고 털실을 갖고 오는 날이어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난 10시경에야 수업에 참여했다.


떠나갈 선생님 린과 내년부터 가르치러 오실 티처 질, 그리고 몇몇 학생들이 함께 웃으며 반겨주었다. 커피타임 후부터는 쫑파티 기념으로 Backyard Ashes라는 호주산 코믹영화를 시청하기로 되어있었다. 우리는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적힌 프린트물을 돌가면서 읽었다. 서로 앙숙이던 이웃 사이에 뒷마당에서 벌어진 크리킷 게임으로 화해를 해나가는 코믹한 장면들을, 떠나갈 선생 린의 지도로 먼저 워밍업 하였다. 그리고 10시 반부터 30분 간 커피타임이 되었다. 통 큰 우크라이나 그녀는 우리 학생들 모두를 급하게, 비어있던 옆교실로 몰아넣었다. 그녀의 인솔대로 우린 하나가 되었다. 다른 연령대도, 다른 출신국가도 다 하나로 뭉개어, 아니 하나의 반죽으로 몰랑몰랑하게 뭉쳐졌다. 우린 모두 일사불란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가만히 보니 통 큰 우크라이나
그녀가 오늘 정말 바빴다.


그녀는 오늘 아침, 떠나갈 린에게 전할 카드와 꽃바구니를 준비하여 학교에 왔다. 그런데 뉴 이어의 뉴 티처, 질이 같이 앉아 있어서, 그녀는 얼른 타운으로 운전하여 돌아가  하나의 꽃다발과 카드를 사 왔다. 아뿔싸, 하지만 비기너 클래스 남자선생, 이안까지 와 있더란다. 통 큰 그녀, 부랴부랴 다시 가서 꽃과 카드를 사 왔다니, 그녀의 뜨거운 정성에 내가 다 고마웠다. 그녀, 이번엔 발론티어 코렐 선생거까지 샀다.


네 개의 꽃다발과 카드를 혼자 헐레벌떡 준비한, 우크라인 그녀 콧등에 송송 땀방울이 아직 예쁘게 맺혀있었다. 그렇게 준비한 카드에 돌아가면서 우린, 삐뚤빼뚤한 영어로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뉴이어와 땡큐 메시지를 부지런히 썼다. 난 린에게 항상 친절하고 즐겁게 공부를 가르쳐주어서 고맙고, 앞으로 그녀가 많이 그리울 거라고 썼다. 그리고 어여쁘고 젊은 학생들이 꽃다발을 하나씩 안고 나가서, 그분들께 한아름씩 안겨드렸다. 우리 모두는 짝짝짝 감사와 환영의 손뼉을 쳐드리고, 뜨겁고 찐한 포옹을 면서 다시 한번 현재의 감사와 미래의 그리울 마음을 서로 전했다.


그리고 분홍색 보자기를 풀어서, 내가 쿡해 간 잡채를 냠냠냠, 모두모두 맛있게, 거뜬히 다 먹어치웠다. 린이 준비해 온 팝콘을 빠사삭 이빨 사이로 뿌개듯 먹으면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또다시 포옹을 하고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 뉴이어를 연거푸 반복하여 주고받은 후,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안녕의 손을 흔들고 우린 헤어져야 했다.


안녕!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
아무리 들어도 정겨운,
글로벌한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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