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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09. 2023

꽃을 말리는 시간

똑똑똑 꽃을 땄다.


새벽 다섯 시인데 벌써 집안으로 햇살이 피어올랐다. 여름 창밖의 새소리 바쁘다. 누군가의 이 시간은 겨울 이불속에서 세상모르고 잠 속에 빠진 시간일 테고, 어떤 이는 가게 문을 열어 손님을 맞이하여 밥벌이를 나갈 시간일 게다. 어쩜 밤새 병간호를 하다 까무룩, 샛잠에 든 사람도 있을 테고, 일찍 잠을 깬 아가 손에 이끌려 놀이터에 나온 엄마도 있을 게다. 모두 다, 아침부터 환하게 핀 꽃처럼 활짝 활짝 웃는 하루가 되면 좋겠다.




꽃에서 나온 향기가 짙다.


몇 년 동안 길러온 메리골드향이 이리 짙은 줄 미처 모르고 지냈다. 영양제와 물만 주고 꽃의 겉모습만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한솥밥을 먹거나 가족으로 살거나 지인으로 오래 더불어 살아도 그들의 깊은 속내를 모르듯, 꽃을 모르고 지냈다. 오늘 꽃대궁을 자르면서, 흠흠흠 꽃의 찐한 찐 냄새를 맡았다. 새벽 다섯 시의 공기 속으로 터져 나온 메리골드 꽃향은 쌉싸름함과 딸짝지근함 속에 스위트함을 가라앉힌 향으로 내 콧속을 통하여 폐부로 들었다. 요 작고 이쁜 몇 안 되는 꽃송이에도 내가 표현할 수 없는 냄새들이 고여있는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의 속에는 몇 가지의 냄새들이 곳곳에 숨어있을까, 싶었다. 드라운 꽃잎 앞에서 나의 냄새가 부끄럽기도 했다. 매무새를 여몄다.


채반에다 꽃을 펴 널었다.


꽃잎 새벽공기와 새벽새소리 속에다 앉혔다. 꽃은 아침바람과 아침햇살을 받기 시작한다. 꽃의 곁, 뒤뜰에서 잠자다 깬 청개구리들 꾸륵꾸륵 울기 시작한다. 나의 손바닥 다섯 배보다 드넓은 무명의 초록잎사귀가 수런거다. 너머 올리브트리에서 엽서처럼 바람 한 장 날아든다. 그리고 창공의 까만 새 두 마리 하얀 뭉게구름 속으로 바삐 다. 나는 햇과 바람과 자연의 소리가 가장 잘 스며드는 아웃도어 체어에다 꽃이 든 채반을 얹어두었다. 오늘 하루 리골드 플라워는 이제 드라이플라워에 조금조금 다가갈 터, 이전의 꽃보다 더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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