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곁으로 내려앉다

by 예나네

볕이 청명한 날.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산에 올라갔다.

전망대는 산의 가마 위에 둥글게 떠 있다.

볕이 맑아서인가. 실핏줄까지 보일 듯한 눈 아래 경관이 잘 익은 햇곡식처럼 터질 듯하다. 멀리 지평선으로 마주한 산의 능선과 넓은 하늘, 하늘을 떠가는 뭉게구름 또한 시리도록 푸르고 희다. 한낮을 조금 지난 시간은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눈이 부시다. 하지만 산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아래를 훤히 바라볼 수 있으나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없어 아쉬운 감이 든다. 멀리서 조망할 뿐, 가까이서 교감할 수가 없다.

도시를 감싼 저 강의 물빛에도 풍경이 투영되고 있으리라.


굽은 산길을 내려와 강물 곁에 앉아본다.

파스칼 키냐르라는 프랑스의 소설가에게는 늘 강이 필요했다고 한다. 흐르는 강을 보며 소설을 썼다던가. 자신의 글맥이 끊어지지 않고 강물처럼 융합되어 흐르기를 바랐기 때문이리라.

유동적이며 감싸 안고 깊으며 잔잔한 강의 모성성 곁에 머물다 보면 강이 바다로 유입되는 게 아니라 강은 이미 바다를 품은 듯하다. 작은 나무가 거목을 품고 있듯이 강물은 바다를 품고 흐른다. 강은 바다를 낳으러 먼 길 떠나는 임부이다. 몸가짐이 조신한 강이지만 바다에 이르면 몸을 풀기 위해 푸른 멍으로 몸부림치며 흰 포말의 바다 알을 해산할 것이다.

파스칼 키냐르, 그는 강의 침전된 서정도 흠모했으리라. 가라앉히기 위해 느린 흐름을 타는 강은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절망을 제 바닥으로 숨기며 유유히 흐른다. 현재보다 더 짙은 물빛으로 푸르를 수 있는 희망, 신선하면서도 고고한 자태, 그건 강의 미학이다.

바람이 수면을 터치하면 부챗살의 춤사위로 화답하고 빗방울의 발자국 세례를 그리움처럼 그려 담는 강물은 특유의 액체적 이미지로써 환상적 어울림의 음색을 발현한다.
자연과 자연이 마주치는 실로폰 소리라 할까. 우주의 속삭임이라 할까.


흐르다가 신의 정원만큼이나 황홀한 풍경을 만날 때도 강은 같은 톤으로 흐른다. 결코 절제하지 않는듯하나 극도의 절제로써 자신의 성정을 잔잔하게 조절하면서 간다. 펠리컨과 청둥오리가 강의 한가운데로 날아들어 구심력으로 물살을 잡고, 강가의 키 큰 숲들이 원심력으로 강의 흐름을 멈추려 하더라도, 강은 유연한 몸짓으로 안녕을 고하며 제 갈 길을 간다. 더 푸른 바다를 낳기 위하여, 흐림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흐름을 따라간다.

강물은 풀린 듯 하지만 풀리면서 흐르는 게 아니다.

강물의 입자끼리 서로 결집하여 하나로 흐른다.

인간이 떠밀리듯 흘러가는 세상도 강물 같은 만남과 떠남이면 어떨까.

한때 글에 빠져 글만 생각하고 싶은 이가 있었다. 그것이 예술이었는지 도박이었는지 자신도 아직 잘 모르지만. 친한 벗이 불러내어도 돈이 되는 기회가 생겨도 심드렁했다. 벗과의 안락한 친분도 실존적 존재로서의 튼실한 자리도 강물이 멀어져 가는 것처럼 그녀에게서 점차 멀어져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심경은 강물같이 초연하지 못했다. 완급의 진폭이 개울의 물살만큼이나 수다했다. 주체할 수 없어 울부짖기도 하면서 벗과의 작별을 했고 어질머리를 끙끙 앓으면서 글을 썼다. 글이 안 될 때는 괜스레 화를 내기도 했다. 만나주지 못했던 그녀의 벗들 또한 그녀에게 섭섭함을 표시했다.


강물을 떠나고 보내주는 강가의 숲처럼 아름다운 손짓으로 보내고 떠나는 관계이면 어떨까. 강물처럼 담담한 작별이면 어떨까. 떠가는 듯 멈춘 듯 표 나지 않게 떠나는 강물은 우리 인생의 흐름을 닮지 않았는가. 백조가 강물을 따라가다 지루하면 다시 거슬러 올라도 강물은 홀로 잔잔하게 제 흐름 그대로 흐르는 것처럼 인생의 행로도 결국은 그렇게 가는 게 아닌가.

가다가 얼음에 잠길지라도 강물은 바다를 품고 있어, 신산과 고독을 강의 바닥으로 숨길 수 있으리라. 강물같이 목표가 있는 삶은 홀로이더라도 결코 외롭거나 서글프지 않으리라.

떠난 그도 어드메 즈음에서 세월의 강을 건너고 있으리라. 벗들이 많이 그립더라도 이제는 삭힐 수 있으리라. 그리움과 외로움을 심곡心谷으로 가라앉히면서 세상의 어디론가 시간을 떠가고 있으리라. 자신이 떠나고 있는지 벗들을 보내고 있는지 확연히 인식하지 않은 채, 흘러가고 있으리라.


강의 이미지를 사모한다.

두고 온 것에 대한 그리 애달픔도 가는 길에 대한 그리 급함도, 강물 밑으로 앉히며 초연한 흐름 끝에 바다를 해산하는 강. 자신을 하염없이 내려놓다가 바다에서 몸 푸는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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