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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19. 2023

마음의 크리스마스 선물


밤새 뜨개질을 했다.


새벽 두 시까지 뜨개질에 푹 빠져있었다. 올 한 해 동안 마음을 섞고 살았던 이웃을 생각하면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컵받침, 티코스터를 뜨기 시작하였다. 낮에 그들에게 전할 작은 마음의 선물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휴무여서 곁에 있던 딸이, 부담 없이 마음을 나눌 수 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낼 수 있는 티코스터를 추천하였다. 그녀의 차를 타고 스포트라이트라는 샵에 가서 초록 빨강 흰색의 면사를 사 왔다. 너투브를 보고 뜨개질을 배우는 일은 이제 쉽다. 1년 반의 뜨개질 경력직이 되어서다. 유 선생님이 소개해주시는 웬만한 패턴과 순서를 보면, 이해가 팍팍되니 무슨 일이든 경력직은 주변은 물론 자신의 삶도 해피모드로 바꿔놓는 데 일조한다.


올 한 해는 칼리할머니와 릭할아버지네 가든에서 네 가정이 금요일마다 오후 다섯 시에 모여왔다. 자신들이 마실 콜드드링크를 한 가지씩 가져와 앞에 놓고 두어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나도 가끔 참석하였었다.


린할머니는 한결같이 동그랗게 핀 수국꽃처럼 방실방실 웃으면서 곁에다 나를 앉혀놓았다. 내가 딸의 퇴근시간이 되어 먼저 일어설 때마다 린은 아쉬워한다. 서른이 넘은 딸인데 자기가 손수 차려먹겠지, 하며 나를 붙들어 앉히려 하셨다. 영어스피킹 연습하라며 다음에도 꼭 오라고 다정하게 손을 흔들곤 하셨다.  수줍은 소녀 같으신 린할머니가 좋다. 얌전하신 할머니가 몇 년 전만 해도 친구들과 카라벤을 몰고 호주 방방곡곡 여행을 즐기셨단다. 올해 팔순이 되신 할머니는 이제 먼 여행길은 나설 엄두를 안 내시는 듯하다.


믹과 트레이시 내외는 사십 대인데 트레이시는 옷가게에서 일을 한다. 그녀가 가게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모두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다. 믹은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는데, 집에서 초상화 같은 그림을 실물처럼 잘 표현하여 그린다. 그의 유머는 자기 아내보다 더 웃겨서 모두가 눈물 콧물까지 흘리며 웃어젖힌다. 그들의 뒤뜰에는 생강, 상추, 고추, 피망, 딸기... 을 비롯하여 나는 이름도 모르는 수십 종의 식물을 화원보다 더 화원처럼 길러놓았다. 일전에도 우리 빈 집 현관 앞에다 그가 키운  딸기모종을 놓아두고 갔더랬다.  외에도 우리 집 뜰에는 가 준 모종이 자라서 넓적한 잎사귀를 자랑하는 식물이 하고 많다. 칼리할머니네는 더 많다.


1년 동안 그분들과 더불어 살다 보니 그저 살빛이 똑같은 사람인양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 조금만 친절하여도 웃어주고, 나누어주고, 도와주려 애를 쓰는 따듯한 이웃을 생각하며 뜨개질을 하다니 벌써 새벽 두 시가 되었다. 이틀만 못 보아도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칼리할머니와 릭할아버지의 티코스터를 맨 먼저 뜨게 되었다. 뜨다 보니 어쩐지 마음이 흡족하지 못하여 중앙에다 동그라미를 따로 만들어 더께 꿰매었더니 더 프리티 해졌다. 소박한 선물이지만 나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내가 사랑하는 이웃들은 알아줄 것 같았다. 하나하나 고이 접서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포장을 해두었다. 크리스마스 이전에 그들에게 전해줄 테다.


메리 크리스마스와 해피뉴이어를 서로 주고받으며, 이웃으로 정담을 나누어 온 우린 또 다른 한 해, 2023을 마무리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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