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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네 Dec 15. 2023

외쿡에서 미리 크리스마스!


아시다시피, 지난주 수요일엔 영어교실 종강파티를 했어요. 12월 6일 발행한 매거진 <통 큰 우크라이나 여인과 쫑파티>를 보화기애애하던 우리 반의 종강파티 광경이 그려질 거예요.




이번주 수요일엔 블랭킷 버디스라는, 뜨개질로 홈리스와 환우들을 돕는 자선교실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어요. 30여 명의 할머니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서 뜨개질과 수다를 함께 뜨는 커뮤니티 센터입니다. 올 한 해 동안 600여 점의 이불과 비니모자와 머플러와 인형을 떴어요. 물론 웃음꽃보따리도 수없이 떴지요. 그렇게 웃음으로 따듯한 편물은 이곳 로컬 병원에도 전달되지만, 인도와 남아공으로도 인연을 맺어서 직접 부쳐주었다네요.


사람의 일이 그러하듯 이곳도 늘 기쁜 일만 있는 건 아니더군요.  뜨개질을 직업이듯 밤낮으로 떠서 가져오시는 8 순의 제인 할머니가 글쎄, 말기라는 폐암치료를 받으시느라 부쩍 수척해지셨어요. 얼굴이 반쪽이 되시니 주름살도 늘어나시고 눈은 한층 더 푹 파이셨어요. 짠했어요. 저에게 유난히 따스한 마음을 보여주셨는데... 마음이 어요. 그저 곁에 가서 말벗이 되어드렸네요. 그래도 할머니는 멤버들이 한 접시씩, 직접 쿡하거나 사서 들고 온 푸드를 개인접시에 가득 담아놓고 계셨어요. 가 한인마트에서 사 들고 간, 찹쌀떡 한 개 맛있드셨어요.


이번 크리스마스 게임은 우리의 2,30대 때 사진을 지타할머니에게 몇 개월 전에 문자로 보내놓았드랬어요. 친절한 지타할머니가 사진 한 장 한 장을 모두 프린트해 요. 그리고 1번부터 20번까지 번호를 매겨서 벽에다 사진을 붙여놓고, 지금 할머니가 된 분들 중 누구의 사진인지, 매치를 해보는 거였답니다. 진과 실제 인물을 찾는 일이, 리언인 만 어려운 줄 알았는데, 동일한 국적의 호주할머니들끼리도, 쉽지 않다고 아우성이었어요. 서로가 치열한 토론을 거쳐서 번호를 매기더군요. 람의 속내는 역시 도긴개긴이에요. 


그런 거 보면 이 세상에서 쉽기만 한 시험문제는 없나 봅니다. 지타할머니는 또, 회원의 이름을 물어보는 시험문제지까지 덤으로 프린트를 해와서 회원전체에게 골머리를 생으로 앓게 했어요. 베브라는 할머닌 골치 아픈 시간을 못 견디고 글쎄, 회원명단을 탁자 위에다 턱 올려놓고 문제를 풀다가, 시험감독 제인한테 걸려서 퇴장까지 당했어요. 불현듯 우리 교실은 모두, 눈물이 나도록 폭소를 터트리는 웃음바다가 되었지요.


지타할머니는 온리 외국인인 저를 위하여 다담다담 담은 정성으로, 그 난해하다던 시험지에다  정답을 눌러쓰셔서 지를 저에게 전해주셨어요. 저는 할머니의 따스한 마음이 고마워서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붙여놓고 암기를 하고 있어요. 때마다 저의 가슴이 따듯해져요. 별일은 니지만요. 이런 걸 소확행이라 하나요?




어제, 목요일엔  문화센터, U3A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를 했어요. 1년 동안 우리 반을 위하여 헌신하여 주신 앤과 제니할머니에게 회원들이 5불씩 낸 돈으로 작은 선물을 마련해서 땡큐카드와 함께 열화와 같은 손뼉을 치면서 모두가 전해드렸어요. 그리고 힐이라는  바닷가의 레스토랑에 단체로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에 게임이 없었다면 앙꼬 없는 찐빵 같은 파티가 되겠지요? 이 반에는 매년, 시크릿 산타게임을 해요. 지난 9월에 앤 할머니가 회원들로부터 받고 싶어 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의 리스트를 수집해요. 단, 20불 이내의 금액을 써야 해요. 그리고 그 종잇쪽지를 한 장씩, 몰래 뽑아두었다가 마니토 선물을 마련해서 카드랑 써서 가져오는 방식이에요. 저는 팸할머니를 위하여 빨간색 코바늘꽂이와 필통을 닮은 코바늘통을 전해드렸어요. 인사동에서 사두었던 한국발 그 선물을 받고, 팸할머니 만면에 웃음꽃이 만발하셨더군요. 저도 내심 덩달아 좋기만 했어요. 저는 크리스털로 된 추에다 나비문양이 달린 고리를 선물로 받고 기쁨을 못 이기어서, 할머니들한테 돌아가며 자랑을 좀 했어요.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하나 있어요. 궁금하신가요. 그리 큰 일은 아니지만요, 제가 생각해도, 작년 이맘때보다 영어실력이 늘었어요. 제 미숙한 영어가 부끄럽다며 집에 꽁꽁 박혀있었다면 이런 소확행을 누리지 못했을 텐데, 수줍음을 무릅쓰고 꾸역꾸역 나와서 원어민들과 어울리다 보니 그래도, 걸음마 수준까지 올라왔네요. 할머니들께서도 저의 영어와 저의 용기를 칭찬해 주셨어요.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는데, 내년에도 저의 행로는 정했어요. 세 개의 교실이 가끔씩 버거워도 칭찬을 들으러 나와야겠다고요. 그래서 저 스스로에게 선물을 줄 거예요. 행복, 이라는 프레젠트, 지금을요. .


그러고 보니 오늘 오후 두 시에는 영어교실 베트남 그녀가 우리 집으로 오기로 했어요. 이제 이 글을 발행하고 나면 집안을 쓸고 닦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국에서도 외롭지 않은, 기나  크리스마스 파티 소식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오늘도 많이 웃는 날 되시기를요.



메리 크리스마스!
아니
미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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