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나네 Jan 14. 2024

꽃에 대한 예의

2024. 1. 13. 월.


새벽에 길을 나섰다.


오늘은 집단속이 단출했다. 요 며칠 비가 내려서, 당의 꽃들에게 물을 주지 않아도 되었다. 칠 전 구글이한테 물어보니, 집을 비우는 사흘동안에도 비가 온다고 했다. 우리가 없는 사이,  로 챙기지 않아도 되니 홀가분했다. 


아무리 너투브를 보고 요리를 해도 음식에 대해선 엄마의 손맛보다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듯이, 하늘이 내려주는 빗물은 내가 물뿌리개로 뿌려주는 인위적 물에 비하여 꽃의 뿌리를 더 씩씩하게  뻗게 한다. 참 희한하지. 빗물은 내가 땅속에 묻어둔 꽃씨의 외피도 수월하게 벗겨내어, 꽃싹이 파릇파릇 땅을 뚫고 전히 올라오도록 근력 아낌없이 보탠다. 빗물과 수돗물의 깊이는 엄마와 딸의 처럼 뭔가 다르다. 그래 난  비소식을 반기면서, 몇 개의 화분과 뒤뜰에다 땅을 파고 금잔화와 들깨와 고추와 상추씨앗을 다담다담 묻어두었다. 그리고, 


등불처럼 환한 뜰안의 꽃들과도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으로 하얗게 떨어진 꽃을 쓸고, 누렇게 시든 잎들을 똑똑 따주고, 벌레를 잡아내어 꽃들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면서 사흘간 별리 나누었다. 내가 집을 비운 사이, 이쁘고 생생한 모습 그대로 집을 잘 지키라고 꽃들에게 난 속으로 일렀다. 붉고, 고, 활활 타오르던 꽃들도, 내게 랑살랑 꽃눈을 윙크하며 잘 다녀오라 했으니, 난 안심하고 적지까지 네 시간을 달려도 되리라.


구글이의 일기예보가가 적중한 듯,  새벽이 지났는데 해가 나오지 않았으니 참 다행이다. 해가 바짝  더운 날씨보다 여행하기도 딱 좋은 날씨니, 입술 사이로 흥얼흥얼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구름 잔뜩 낀 하늘로 봐서는 곧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면서, 노래장단을 맞춰줄 것 같았다. 시, 내 소망대로 이 말대로, 곧 비가 오긴 왔다.


그런데 노루꼬리만치나 아주 짧게 내리다 말았다. 후루룩,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들이킨 국숫물만큼 쬐께 내렸다. 그러다 불현듯 파 하늘에 불청객 해님이 , 성난 시엄니처럼 나타났다. 어,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쓰흡, 멈추었다. 호주 서머 써니가  양 이글이글 태울 듯 운 건, 이 나라 삼척동자도 알고 있으니 긴장되었다.


구글이한테 날씨를 물어보았다.


구글아, 구글아, 오늘 날씨 알려줘. 근데 어제까지만 해도 구글이는 90% 비가 온다고 해놓고선, 오늘은 비 올 확률 10%라 한다.

 글이이렇게 제 말바꿔버릴 줄 알았으면, 내 집 마당의 수도꼭지에 달아 둔 타이머를 열어 놓고 올걸, 하며  엎질러진 물 앞에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타이머만 접속해 놓고 떠났더라면, 여기 앉아 나의 손안에 든 폰으로 물을 틀면 됐는데, 내가 구글 일기예보를 너무 철석같이 믿은 바람에 걱정을 사서하고 .  


백설공주의 요술쟁이 거울보다  작은 것 속에, 온갖 세상만사 다 든 현대의 요술쟁이, 죄 없는 폰을 손으로 톡 드리 애고, 구글아, 구글아! 며 안달하자, 운전딸이 헤실 웃는다. 그러더니, 마, 내일 하루 더 기다려보고 비가 계속 안 오면 옆집 릭할아버지한테 전화, 우리 꽃들한테  좀 주라고 부탁야겠다, 러더니 , 이런다.


"그게 꽃에 대한 예의인 것 같네. 꽃은 굶겨놓고 우리만 맛있는 거 먹을 순 없잖수!"

어제 다정다정 인사를 주고 받았던 꽃들이 목마를까봐, 나는 애가 타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 브리즈번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초록초록 초장에서 소들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꽃들도 걸을 수 있으면 물가로 활짝활짝 걸어갈 수 있을텐데.
우린 공교롭게도, 물이 가득 찬 호숫가에 여장을 풀었다. 현대의 폰이 아무리 잘났어도 지금 이 물을 내 뜰까지 나를 순 없다.
난 오 그러네, 하며
딸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꽃에 대한 예의에.




매거진의 이전글 거미가 줄을 타고 올라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