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4. 11.
서울에서 가족이 오는 날과 겹쳐서 자네트 생일날 만나지 못했다. 열흘을 우리 집에서 묵은 어른이 한 주간 바닷가 리조트로 잠시 나가셨다. 자네트에게 텍스트를 보냈더니 점심을 같이 하자고 해서, 내가 자네트네 동네로 갔다.
요즘 자네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집 근처 화원에서 일을 한다. 새벽 네시 반에 출발해서 오후 서너 시가 되어 귀가하는 그녀는, 가족을 다 외지로 떠나보내고 혼자 살지만, 건사할 또 다른 가족이 많다.
초록 깃의 앵무새, 13살 된 검둥이, 그리고 보타닉가든처럼 셀 수 없는 갖가지 꽃들과 나무들이 그녀의 하우스를 에워싸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잔디밭도 넓어서 손수 깎아야 하는 노동 또한, 그녀의 손길을 기다린다.
그녀 집의 울타리 밖엔 캥거루 사촌인 왈라비 열댓 마리가 아침마다 풀을 뜯는, 이전에 살던 곳과 분위기가 유사한 목가적인 곳으로 그녀는 이사를 했다.
출처. Culture trip 왈라비. 캥거루보다 몸집이 더 작다.
33만 평의 농주에서 소꿉장난 같은 작은 규모로 삶을 푹 줄였는데도, 만날 때마다 늘 쾌활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내어줘서, 나는 그녀가 편안하고 좋다.
약속 장소인 칠더스 카페 앞에 주차를 해놓고 가려는데 한 낯선 여인이 아는 체를 한다.
자네트 친구라 한다. 그녀, 린다는 칠더스 주변에서 고기소를 키우는 목장주란다. 린다의 영어발음은 내가 알아듣기 편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녀는 구호물품 수집 오피스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은퇴해서 외국인이 듣기 쉽게 말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린다네는 두 군데의 목초지가 있는데, 한 군데는 200 에이커 되는 초장에서 150 마리의 소를 치고, 또 다른 초원은 600 에이커인데 소 300마리를 먹인다고 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30분 정도 떨어진 두 목초지를 오가면서 다른 사람을 쓰지 않고 린다네 부부가 직접 일을 한다.
린다 옆에서 후덕하게 웃는 밥은, 린다의 손아랫동서인데, 그녀도 투움바에서 소를 키운다고 했다. 이스터 홀리데이를 맞아 부부가 형네 집을 방문하기 위해 다섯 시간을 운전하여 왔다는 밥, 그녀도 유쾌했다.
호주의 전형적인 목초지. 출처. ndairyfarmers.com.au
과거와 현재의, 글로벌 농사꾼? 여인
네 명이 만나게 된 그 시간에 나는, 기시감이 느껴졌다.
수십 년 전에 내가 머물렀던 시공.
나를 지나간 먼 시간, 이역만리에서 다른 풍습, 다른 언어로 농사를 짓거나 목장으로 밥벌이(빵 벌이?)를 하던 공통분모의 여인들을 우연히? 만나게 된 이 공간.
이 운명처럼 엮어낸 이 현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예전부터 만나왔던 것처럼 이 편안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을까.
신이 짜낸 운명일까.
오지랖이 오지게 넓었던 그일까.
평택 과수원에 살 때, 과수원을 하기 전 남편은 잠깐 소를 먹였다. 새벽마다 이슬 맞은 쇠꼴을 베어 경운기에 한가득 실어 나르던 남편, 그를 동네 사람들은 일귀신이라 불렀었다. 그 땅을 일구고 배나무를 젊게 만들고 더러는 어린 묘목을 심었다.
대한민국에서 2등이라면 서러웠을, 아름다운 배 농원을 경영하던 남편.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수확기를 기다리던 어느 구월 햇빛 밝은 날에 그는 갔다. 더 아름다운 곳으로 떠났다. 그 빛나는 과원에서 남편은, 농기계 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그때 가을빛을 받은 남편은, 온몸에 아직 피가 돌듯 따스했었다. 여태까지 나는 그의 그때의 온기를 꺼내 추억한다. 몸의 온기뿐 아니라 마음의 온기가 뜨거웠었다. 그는.
이야기가 잠시 샛길로 빠졌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다.
여하튼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때 봄꽃 놀이를 떠나던 일이 연례행사였다. 그때마다 이웃집의 목장을 운영하는 지은이네는 부부 중 한 사람은 반드시 집에 남아있어야만 했다. 소를 돌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네는 부부가 다 열흘 동안 집을 비우고 이쪽으로 여행 중이라니, 차로 다섯 시간 거리인 곳에서 태연하게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하고 있다니. 이 이질적인 풍습에 나는 신기했다.
그래 "너네 소는 누가 돌봐주니?"라고 물어봤다.
그녀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소들이 스스로 제 삶을 해결한다"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개 두 마리가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그러고 보니 이 나라 목장에는 소외양간이 따로 없다.
초지에다 소를 풀어놓으면 소들은 풀을 뜯어먹는다. 쉬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종일 풀을 뜯어 스스로 제 배를 채운다. 초지의 울타리엔 전기장치를 설치하여 소가 바깥으로 나가는 걸 예방한다.
내가 그들의 삶이 궁금하듯 그들은 한국의 소외양간과 배 모양새나 맛이나 과수원 운영 같은 게 궁금한지, 내게 질문을 꽤 했다.
그중 한 가지는 한국과 호주의 배 모양과 크기와 맛이 확연히 다르다고 하자, 나중에 시드니에 가면 한국의 배를 꼭 맛보고 싶다고 한다. 아마 한국산 배를 먹어보면 이들은 깜짝 놀랄 거다. 속살이 하얗고 시원하고 달콤하며 사각사각 촉촉한 배 질감에.
내가 나중에 사다 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국인이 12만 명 정도 산다는 시드니의 '한국 마트'엔 한국배가 즐비하니까. 그것 또한 국가 간의 작은 문화교류이니까.
호주 슈퍼마켙, 콜스에서 사온 배
자네트가 다음엔 린다네 농장에 같이 가보자고 하며 서로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살던 평택의 농원이 그리워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었다.
기화요초로 가득하고 계절마다 온갖 열매가 열리던 그곳. 15년 동안 살면서
희로애락 애오욕을 다 겪은 아름다운 곳. 꿈에도 잊지 못할 그곳.
그곳 대신, 린다네 농장이라도 얼른 가보고 싶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벌써부터 가슴에 잔잔한 파동이 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