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내고 나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들에 대하여.
잠이 덜 깬 눈으로 마주한 겨울 아침, 세상은 밤새 누군가 공들여 칠해놓은 은빛 묵화(墨畵) 한 점으로 변해 있었다. 눈이 온 것은 아니다. 그저 지독하게 차가운 공기가 생의 끝자락을 붙잡고 견디다 못해 피워낸, 시린 서리꽃이다.
문득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멈춘다.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고 맨몸으로 서 있는 저 나무. 젊은 날의 나는 저 나무가 측은해 보였을 것이다. 무성한 초록의 훈장도, 탐스러운 열매의 영광도 다 빼앗긴 채 차가운 바람 앞에 발가벗겨진 패배자 같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오십 줄에 들어서서 다시 마주한 저 빈 가지는 패배가 아니라 '완성'으로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의 여름은 얼마나 소란스러웠던가. 남들보다 더 큰 그늘을 만들려 애썼고, 더 붉은 꽃을 피우려 안달했다. 직함이라는 이름의 잎사귀를 매달고,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열매를 지탱하느라 내 몸의 뼈대가 어떻게 휘어가는지도 모른 채 살았다. 바람이 불면 잎사귀 흔들리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고, 열매가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보낸 세월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보인다. 다 털어내고, 비워내고, 오직 서리꽃 몇 송이만 얹고 있는 저 나무의 정직한 골격이.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나무의 진짜 굵기가 보이고, 그가 평생을 견뎌온 상처 입은 옹이들이 훈장처럼 빛난다. 나 또한 그렇다. 자식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일터의 소란함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나니 비로소 '나'라는 사람의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내 머리 위에도 저 산등성이처럼 서리 같은 백발이 내려앉았다. 예전엔 숨기고 싶던 세월의 흔적이 이제는 나쁘지 않다. 저 나무의 서리꽃이 차가울지언정 추해 보이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인내의 결정체이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저 아래 굽이쳐 흐르는 강물을 본다. 주변은 모두 얼어붙어 정적 속에 잠겼는데, 물줄기만은 제 속도를 잃지 않고 묵묵히 길을 낸다. 세상이 나를 잊은 듯 고요해질 때, 비로소 내 안의 소리가 들린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안의 중심을 타고 흐르는 진짜 나의 의지 말이다.
오늘 나는 저 빈 가지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리고 마음속 일기장에 조용히 적어 넣는다.
"고생했다. 참 잘 비워냈다. 그리고 여전히 꼿꼿해서 고맙다."
겨울은 비정하고 시린 계절이 아니다. 다음 봄을 준비하기 위해 가장 뜨거운 생명력을 뿌리 깊은 곳으로 갈무리하는, 생의 가장 경건한 시간이다. 내 오십의 겨울도 저 풍경처럼 고요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깊어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