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비우고 나를 펴다.

제구포신(除舊布新).

by 홍승표 승우담

​올 한 해를 보내며 거울 앞에 서 본다. 거울 속에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한 사람이 서 있다. 그동안 나는 세상의 속도에 맞추느라, 혹은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정작 '나'라는 사람의 속마음이 얼마나 낡고 지쳐있는지는 외면해 왔던 것 같다.


​올해의 마지막 자락에서 나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이라는 말을 조용히 읊조려 본다.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펼친다'는 이 평범한 문장이 올해 유독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내 안에 버리지 못한 '묵은 마음'들이 너무 많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참 많이도 움켜쥐고 살았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들에 대한 미련,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아집, 그리고 '이 나이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를 가두는 한계들. 이러한 묵은 감정들은 마치 오래된 서랍 속에 쌓인 잡동사니처럼 내 삶의 공간을 차지하며 정작 새로운 설렘이 들어올 자리를 가로막고 있었다.


​과거의 나에게 미안함을 전한다. 부족한 점을 채우려고만 했지, 이미 충분히 애쓰고 있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했다. 실수했던 장면들을 복기하며 자책하느라, 그 실수를 딛고 일어선 나의 단단함은 보지 못했다. 그동안 '나'라는 나무에 매달려 있던 시든 잎들을 이제는 미련 없이 떨궈내려 한다. 그것들을 붙잡고 있다고 해서 다시 푸르러지지 않음을, 이제야 비로소 인정한다.


​이제 나는 새로운 마음을 바닥에 편다.

제구포신의 '신(新)'은 거창한 성공이나 화려한 변신이 아니다. 그것은 어제보다 조금 더 나를 너그럽게 바라보는 시선이며, 익숙한 일상 속에서도 작은 경이로움을 발견해 내는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이다. 50대의 제구포신은 무언가를 더하는 덧셈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어 본연의 나를 가장 가볍게 만드는 뺄셈이어야 함을 믿는다.


​묵은해의 끝에서 나는 다짐한다.

나를 힘들게 했던 자책과 타인과의 비교는 이 계절의 찬 바람에 실어 보내기로. 대신 그 빈자리에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다'는 확신과, '아직 가슴 뛰는 일이 남아있다'는 기대를 채워 넣기로 한다.

​창밖의 찬 공기가 오히려 선명하게 느껴지는 밤이다.

낡은 허물을 벗어던진 자리마다, 내일의 내가 걸어갈 새로운 길이 맑게 차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