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나는 늘 미안하다.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고,
크게 아프지 않은 몸으로 저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따뜻한 국 한 그릇, 창밖으로 스며드는 저녁빛,
아무 말 없이 곁에 놓인 하루의 공기까지
삶은 가끔, 조용히 나를 위로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하루의 끝에 서면
나는 늘 같은 말 앞에 멈춰 선다.
“미안하다.”
누가 따로 묻지 않았는데
이 말은 먼저 마음속에서 떠오른다.
잘 살아왔느냐는 질문보다
혹시 놓친 것은 없느냐고
내 안의 내가 먼저 묻는 것처럼.
젊은 날엔 앞만 보고 걸었다.
가족을 위해서였고,
삶을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믿었다.
버티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고
말을 아끼는 것이 책임이라고 여겼다.
그 사이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얼굴들이 있었다.
괜찮다는 말로 넘겨버린 순간들,
침묵으로 대신한 마음들.
누군가는 기다렸을 것이고
누군가는 이해하려 애썼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아무 말 없이 돌아섰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은
후회와는 조금 다르다.
되돌리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안아주고 싶은 마음에 가깝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에서야 보이는 것들이
사람을 미안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삶은 조금 느려지고
대신 마음은 더 많은 것을 떠올린다.
받았던 것들,
지켜주었던 사람들,
아무 조건 없이 내 편이 되어주었던 시간들.
그 앞에서
나는 자주 고개를 숙이게 된다.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내가 늘 미안한 이유는
아직 마음이 무뎌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아직 내 안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산다.
미안함을 안고서라도
내일을 향해 한 걸음 더 간다.
늦었더라도
마음을 건네는 사람이 되기 위해.
사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리고
이 미안하다는 마음 덕분에
나는 아직,
사람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