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 아래, 이웃들이 남긴 자리.

죽란 시사, 시로 서로의 하루를 지키다.

by 홍승표 승우담

그곳에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분명 누군가 있었던 자리다. 나무 난간 위에 놓인 술병과 잔, 가지런하지 않은 종이 한 장, 붓 끝에 남아 있을 법한 먹 향. 대숲 사이로 스며드는 늦은 오후의 빛은, 막 끝난 대화를 조용히 감싸고 있다.

정조 시대의 죽란 시사(竹欄詩社)는 이런 풍경에 가까웠을 것이다.


권력에서 비켜난 사람들이 선택한 시간

죽란 시사는 정약용을 중심으로, 이웃에 살던 남인계 선비들이 모여 만든 시 모임이다. 이들은 조선의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말은 조심스러워졌고, 뜻은 가슴 안으로 접혀 들어가야 했다. 그 대신 이들은 시를 택했다.

시를 짓는다는 것은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남길 수 있는 방식이었다. 정치의 언어 대신 자연을 빌렸고, 시대의 분노 대신 벗의 안부를 불렀다. 그렇게 시는 그들의 방패이자 숨구멍이 되었다.


같은 생각이 아니라, 같은 하루

죽란 시사의 사람들은 같은 이념으로 묶인 집단이 아니었다. 벼슬을 기다리는 이도 있었고, 이미 기대를 접은 이도 있었다. 학문에 몰두한 사람도, 술잔에 하루를 털어내던 사람도 있었다.

이들을 하나로 묶은 것은 같은 생각이 아니라 같은 동네, 같은 하루였다.

같은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같은 강물을 바라보며 계절을 건넜다. 이웃이라는 사실이, 그들에게는 가장 단단한 연대였다.


정약용, 말하지 않는 중심

정약용은 이 모임의 중심이었지만, 앞에 나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세상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밀어내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오래 듣는 쪽을 택했다.

훗날 강진에서 보여준 그의 사유와 연민은, 어쩌면 이 시절 대숲 아래에서 먼저 길러졌을 것이다. 사람을 제도보다 앞에 두는 마음, 현실을 미워하기보다 견디는 태도는 혼자서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버틴 시간에서 자란다.


흩어지기 전의 평온

죽란 시사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정치의 바람은 다시 거세졌고, 사람들은 흩어졌다.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향했다. 어떤 이는 침묵 속으로, 어떤 이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서 이 모임은 더 이웃 같았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 조심스럽고 따뜻했던 시간.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유배 이전의 마지막 평온이었다.


오늘, 우리가 이 장면을 바라보는 이유

사람 없는 마루를 바라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공동체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죽란 시사는 말해준다.

큰 뜻이 아니라,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서로의 하루를 묻고 기다려주는 마음이라고.

대숲 아래 남겨진 이 자리는,

시를 짓던 선비들의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조용히 지켜주던 이웃들의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