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에 대한 물음.

by 홍승표 승우담

신은 나를 위해 있는 걸까,

나는 신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어느 날 문득, 나는 나 자신에게 물었다. 신은 과연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내가 신을 위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이 질문은 단순한 철학적 호기심을 넘어서, 나의 존재 이유와 삶의 방향을 되묻는 울림이었다.


어릴 적에는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기도하면 들어주시고, 슬프면 위로해 주며, 기쁘면 함께 웃어주시는 그런 존재. 그때의 나는 신이 마치 나의 후견인 같았다. 내가 중심이고, 신은 나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 분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슬픈 일이 생기면 신이 나를 버렸다고 느끼기도 했고, 뜻밖의 기쁨이 찾아오면 신의 사랑이라며 감사했다.


그러나 삶이 깊어지고 세상 풍경이 복잡해질수록, 나는 이 믿음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왜 신은 고통을 허락하는가? 왜 아무리 기도해도 어떤 일은 바뀌지 않는가? 신이 있다면, 그 신은 과연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조각에 불과한 걸까?


신을 나의 이익과 행복의 도구처럼 생각할 때, 우리는 자주 실망하게 된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는 신의 부재를 탓하고, 뜻대로 이루어졌을 때만 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하지만 이런 신은 너무 인간적이고, 너무 편리하다. 마치 주문을 외우면 나타나는 요술램프의 지니처럼.


반면, 내가 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또 다른 질문이 생긴다. 신은 왜 나를 창조했는가? 나라는 존재는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가? 내 인생의 고통과 기쁨, 실패와 성공, 이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면, 나는 그 뜻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해야 하는가?


이런 물음 끝에서 나는 한 가지 생각에 이르렀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누가 누구를 위해"라는 단순한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의미"일 수 있지 않을까? 신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도, 내가 일방적으로 신을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통해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들이다.


신은 어쩌면 인간이 삶의 깊은 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물음’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묻고,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그 간절한 마음. 그 마음이 신이 머무는 자리이고, 그 자리를 향해 걸어가는 내가 곧 신의 뜻일지도 모른다.


결국 신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언덕이기도 하고, 내가 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신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내가 신을 통해 더 나은 나, 더 깊은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삶을 통해 그 신의 사랑과 진실을 드러내길 바란다.


신은 나의 질문 속에 있고, 나는 그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존재한다. 어쩌면,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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