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빚어낸 가장 따뜻한 고백
겨울은 내게 늘 인내의 계절이었다. 두터운 코트 속으로 몸을 웅크리듯, 마음도 자꾸만 안으로 파고들었다. 생동감 넘치던 것들이 자취를 감춘 무채색의 풍경 속에서, 나는 자주 길을 잃곤 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엔 '눈꽃'이 있었다.
비워낸 자리마다 피어나는 것들
여름내 울창했던 잎들이 다 떨어지고 난 뒤에야 알았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마른 나뭇가지가 실은 가장 아름다운 화분이었다는 것을.
나의 삶도 그랬다. 무언가를 꽉 채우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화려한 성취나 뜨거운 열정이 잠시 멈춘 그 자리에, 차가운 공기를 견디며 내려앉은 하얀 눈송이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상처와 빈틈은 결핍이 아니라, 눈꽃을 머금기 위한 준비였음을.
찰나를 사랑하는 법
가만히 손을 뻗어 눈꽃을 만져보려 하면, 나의 온기에 이내 자취를 감추고 만다. 허무했다. 하지만 그 허무함이야말로 눈꽃의 본질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영원할 것 같던 슬픔도, 쥐고 싶던 욕심도 결국은 이 눈꽃처럼 시간의 흐름 속에 녹아내릴 것이다. 나는 사라지는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내 눈앞에 반짝이는 이 찰나의 순결함에 집중하기로 했다. 잡을 수 없기에 더 소중한 것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나의 겨울에게 건네는 안부
눈 덮인 길을 홀로 걸으며 내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세상의 소음이 눈 아래 잠겨 고요해진 순간, 비로소 내 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추운 겨울을 잘 버티고 있구나.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눈꽃은 나에게 그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억지로 꽃을 피우려 애쓰지 않아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다 보면 하늘이 내려주는 찬란한 순간이 찾아온다고. 나의 시린 계절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
나는 이제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안의 마른 가지 위에 언제든 다시 피어날 하얀 눈꽃을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내 마음 한구석에 피어난 작은 눈꽃 하나를 소중히 품어본다. 내일이면 사라질지라도, 그 투명한 위로가 나를 살아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