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나는 누구인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썼다. 학교 숙제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누가 쓰라고 하지 않아도 일기를 꾸준히 썼다.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일기장은 어느새 세월이 흐르고 흘러 누렇게 빛바랬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사건과 그에 대한 감정은 지금도 내 인생을 증명하고 있다.
비록 매일 쓴 건 아니었지만 몇 달 이상 쉰 적은 없던 일기였는데, 지난 3년은 내 인생에 가장 오랜 시간 일기를 쓰지 않았던 기간이었다. 퇴화하는 뇌세포와 함께 기억도 사라져 기록이 없는 2017~2018년은 시간의 순서가 제멋대로다. 그동안 완독한 책은 짧게라도 반드시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겼는데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 언젠가 써야지 하며 읽은 책 목록만 노트 빈 페이지에 차곡차곡 써 내려갔다.
Output만 있고 Input이 없이 하루하루 시간만 흘러가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들이 소화도 되지 못한 채 밖으로 배출되어 나갔다. 감동도 울림도 없던 삶의 연속에 가슴이 헛헛해져 스스로 백기를 들었다. 이것이 일기도 블로그도 뭐든 글쓰기를 멈췄던 이유다. 그러다 우연히 <브런치>에서 발견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글쓰기가 행복하기도 하지만, 엄청난 고통과 절망감을 수반한다는 것을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첫 번째 번지점프 보다 두 번째 번지점프가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첫 번째 주제였던 '나의 행복한 순간'을 작성하는데 이제라도 그만둔다고 할까? 생각을 수십 번을 한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그만두자는 생각을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행복했던 순간을 끄집어내느라 마감 시간에 겨우 맞춰 글을 썼던 게 불과 두 달 전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감정의 희로애락, 아리랑 고개를 넘으며 글을 쓰고 읽고 피드백 받아 고치고, 바로 다음 주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떨림과 긴장의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도 모르는 문우들의 긍정적인 피드백에 자신감과 용기가 생겼다.
그동안 썼던 글들이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위주의 글쓰기였다면,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주제 대부분은 매일 아침 출퇴근 지하철에서 멍 때리거나 혹은 요가 수련하다 아이디어가 떠올라 글을 썼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나'라는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거라 구글을 검색하거나 책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저 나에 대해 생각만 하면 됐다. 2,000자 채우기가 어려워 한 글자 한 글자 세면서 쓰다가, 어느새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양이 늘어갔고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 있던 감정의 찌꺼기들이 하나씩 정리되어 갔다.
최근 배운 마인드맵으로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에서 작성했던 글을 정리해 보니 단연코 ‘책’과 ‘운동’, ‘나눔’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책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외로울 때나 든든하게 내 옆을 지킨 단짝이다. 반면 운동은 성향이 그리 잘 맞지는 않지만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 죽을 때까지 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하는 친구인 것 같다. 그리고 이 두 친구와 호흡을 잘 맞춰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 이것이 <나를 찾아가는 글쓰기> 과정에서 얻은 결론이다.
지난 2개월간 MBTI, 다중지능검사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라는 존재에 대해 탐구했다.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난 후 여기저기 부딪히고 이리저리 헤매며 나라는 존재에 조금씩 알아갔다면, 이번 글쓰기 과정은 그동안 하나씩 모은 구슬을 한 줄로 꿰는 시간이었다. 아직 팔찌로 만들지 목걸이로 만들지는 미지수이지만, 어쨌거나 방향은 정해졌고 운전대도 잡았으니 액셀레이터만 밟으면 될 것 같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