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어떻게 불안감을 다스리나요?

불안을 잊는 몰입, 불안을 마주하는 몰입

by 고민감자

나는 어릴 때부터 비디오 게임을 좋아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건 아니지만, 아버지가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셨기 때문에 나는 또래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컴퓨터를 접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PC라는 게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90년대에는 개인 컴퓨터가 흔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는 우리 집에 놀러 와 컴퓨터가 있는 것을 보고 눈을 반짝이는 친구들도 많았다. 덕분에 나는 내 또래보다 게임을 일찍 접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게임을 좋아하게 되었다. 물론 부모님은 그런 나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으로부터 거리를 두며 서서히 고립되어 가던 시절. 나는 새로운 게임에 푹 빠졌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World of warcraft)라는, 약칭 와우(WOW)라 불리는 게임이었다. 온라인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대작으로 워크래프트라는 판타지 세계관에서 여정을 펼치는 롤플레잉 게임이다.


i1973451399.png 곧 출시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한밤 확장팩 포스터. 이미 이 게임에서 손을 뗀 지 오래지만 새로운 확장팩이 발매될 때마다 아련한 향수가 느껴진다.


솔직히 이 게임을 그리 오래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정신적으로 상당한 소진을 느끼던 차에 잠깐이라도 놀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그래서 게임도 아주 가볍게 즐겨볼 심산이었다. 나를 소진시켰던 대학 마지막 학기는 내게 상당한 고비였다. 당시 나는 졸업에 필요한 남은 요건을 채우기 위해 내키지 않은 강의를 잔뜩 들어야 했고 조기 졸업이라는 목표까지 세운 상황이었다.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공백기를 줄이기 위해 졸업을 유예하는 게 부지기수였던 내 주변과 달리 나는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만한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었고, 누구보다도 아버지에게서 그 인정을 받고 싶었다. 가족들을 늘 짐짝 취급하고 한심하게 여기는 아버지에게 나도 무언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조기 졸업 요건과 학점을 모두 갖출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졸업했다. 나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생각보다 시원찮은 반응에 나는 크게 실망했다. 돌이켜보면 아버지는 나와 내 동생에게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원래 대학도 다 너희가 직접 벌어서 가야 하는 건데 아빠니까 특별히 이렇게까지 해 주는 거야."


확실히 그런 친구들이 있긴 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거나 방학에 일을 해서 등록금을 직접 버는 친구가 몇몇 있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정말 존경스러운 친구들이었다.

아버지의 반응에 낙담하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내 노력으로 한 학기 분 등록금을 아끼게 되었으니 그 보상으로 새 컴퓨터를 요구했다. 당시 쓰던 컴퓨터는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새 컴퓨터가 가지고 싶었다. 아버지는 정말 내키지 않는 듯 망설였지만, 그냥 넘어가기엔 마음에 걸렸는지 새 컴퓨터를 마련해 주셨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내가 원하는 사양의 컴퓨터가 너무 비싸다며 시종일관 불평하셨는데, 아낀 등록금의 절반도 되지 않는 금액조차 아까워하는 아버지의 반응에 나는 다시 한번 실망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원하는 성능의 컴퓨터를 갖기 위해 내 돈까지 더 얹어서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새 컴퓨터를 마련할 수 있었다.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당장 무언가를 하자니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고 무엇보다 너무 지쳐 있었다. 그래서 잠시 쉬며 지친 심신을 달래는 게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며 나는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말 게임이 그 자체로 재밌었다. 하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순수하게 재밌어서 게임에 푹 빠져있었던 기간은 대략 6개월 정도였지만, 나는 거의 3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이 게임을 놓지 못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나서도 내가 이 게임에 머물렀던 이유는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있었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방대한 콘텐츠를 담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건 바로 레이드(Raid) 콘텐츠이다. 레이드는 게임 내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공격대를 조직하고, 협력하여 강력한 적을 쓰러뜨리는 콘텐츠이다. 비교적 쉬운 레이드는 가볍게 조직된 공격대만으로도 큰 어려움 없이 즐길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어려운 레이드는 철저하게 준비된 전략과 공격대원 간 협동이 없다면 공략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상위 난이도의 적들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끌어모아 공격대를 꾸리기보다는, 어느 정도 검증된 인원을 선발해 매주 같은 사람들끼리 게임을 즐기는 고정 공격대를 조직하게 된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보다는 검증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게 합이 더 잘 맞을 수밖에 없고, 각자의 역할에 대한 책임감도 더 커지기 때문에 공략 가능성이 올라간다.


처음에는 잘하지 못했다. 이동하는 공격대원들을 쫓아가지 못해 엉뚱한 곳에서 혼자 죽고 기다리거나, 살아도 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해 사실상 업혀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게임에서 만난 대다수의 유저들은 그런 나를 다그치기보단 이해해 주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었다. 함께했던 사람들의 배려 덕분에 나는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고 점차 게임에 익숙해졌다. 그들의 배려와, 재미있는 게임에 대한 나의 열정은 어느덧 결실을 맺어 나는 고정 공격대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게임 내에서 입지가 생기게 되었다.


고정 공격대에 들어간 후로 내 입지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물론 내가 특별히 게임을 잘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다른 사람들보다 게임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고, 어떤 역할을 맡든 숙련도도 좋은 편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공격대 내에서 내가 맡는 역할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주는 그 느낌. 지금껏 느껴볼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그즈음 나는 이미 게임 자체에는 흥미를 잃고 있었다. 매주 진행되는 레이드 일정은 게임이라기보단 숙제에 가깝게 느껴졌고 공략을 위해 미리 영상을 보거나 물품을 준비하는 과정도 날이 갈수록 귀찮게 느껴졌다. 하지만 흥미를 잃었음에도, 나는 게임을 놓을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광적으로 집착했다. 다들 하기 싫어서 기피하는 역할도 공격대에 필요하다면 내가 먼저 주저 없이 나섰고, 하고 싶은 캐릭터보다는 공격대에 필요한 캐릭터를 육성했다. 지금 돌아보면 광기 그 자체였던 것 같지만, 그 정도로 나는 인정 욕구에 굶주려 있었다.


성적우수 장학금을 받을 때면 잘했다는 말 대신 "네가 그거라도 해서 다행이다."라는 이상한 칭찬을 하고, 조기졸업을 했으니 아낀 등록금의 일부를 쓰고 싶다고 해도 최대한 덜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던 아버지. 집에서 나는 항상 천덕꾸러기이자 아버지의 삶을 옥죄는 짐짝이었다. 술만 들어갔다 하면 이제 겨우 중학생, 초등학생인 들어간 아이들에게 "너희 키우느라 힘들어 죽겠다. 빨리 독립해."라며 일갈하고, 집에 손님이 올 때면 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결혼도 안 하는 게 좋긴 한데, 애라도 절대로 낳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늘어놓던 아버지. 나는 대체 왜 태어났을까. 나는 존재하지 말아야 했는데 왜 아득바득 살아남아 부모님을 괴롭히고 있는 걸까. 늘 그런 죄책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그런 감정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게임 속에서 만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은 현실의 내가 누구인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았다. 매주 약속한 시간이 되면 당연하다는 듯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고, 매주 보던 사람이 갑자기 보이지 않으면 그다음 주에 "지난주에 무슨 일 있으셨어요?"하고 물었다. 레이드가 어려운 부분에서 막힐 때면 서로를 탓하기보다는 격려했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서라면 필요한 장비를 서로에게 양보했다.

현실에서 내 어깨를 짓누르던 무가치함이라는 사슬. 그로부터 유일하게 해방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게임 속이었다. 그래서 흥미를 잃었어도, 나는 게임을 놓을 수가 없었다. 늘 나를 비난하기만 하고 그 무엇도 인정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이곳에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었다.




고립·은둔 청년들이 쉽게 빠져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게임이다. 문득 고립·은둔 시민특강에서 오은영 박사님이 말씀하셨던 게 떠올랐다.


어머님, 아버님들 자녀가 밖에 안 나오면서 주로 뭐에 빠지죠? 게임하고 영상 시청하고 그러죠? 근데 이 아이들이 단순히 나태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이 친구들도 사실은 굉장히 불안해요. 그래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는 건데, 요즘에는 게임 같은 게 딱 그러기 좋죠.


불안이었다. 내가 정말 무가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것이 내가 게임에 흥미를 잃고도, 날이 갈수록 즐거움보단 괴로움이 더 커져도 게임을 놓을 수 없는 이유였다. 게임에 열중하고 있을 때는 잠시나마 현실에서의 불안을 잊을 수 있었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가 현실에서 느꼈던, 인정받고 싶다는 갈증을 채워주었다. 게임은 내게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사막의 오아시스였다.


하지만 그런 도피는 동시에 나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고 있었다. 잠깐만 머물러야겠다고 생각했던 오아시스에서 나는 떠날 수 없었다. 두려움은 줄어들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커져만 갔다. 머릿속은 "이제 와서 내가 대체 뭘 할 수 있지?", "여길 떠나면 나를 받아주는 곳이 있기는 할까?"와 같은 생각에 잠식되어 갔고 고립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잠깐만 멈춰 쉬자는 그 생각이 이토록 긴 은둔생활의 첫걸음이 될 거라고는.




요즘에도 나는 게임을 즐기곤 한다. 아이러니한 건 현실에서 느끼는 불안이 클수록 게임이 더 재밌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알고 있다. 게임으로만 내 불안감을 달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무엇이든 몰입할 수 있다면 게임이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심지어 너무나 하찮아 보이는 설거지마저도(!) 불안을 잠재워줄 수 있다. 그저 귀찮은 마음에 억지로 수세미를 문지르는 게 아니라, 그릇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피면서 기름기가 남아있지 않도록 뽀득뽀득 문지르고 건조대에 작은 그릇부터 순서대로 보기 좋게 가지런히 놓는다. 그리고 정리가 끝난 싱크대를 바라보면 마음 한편에서 자그마한 뿌듯함이 피어난다.


누구라도 살아가면서 불안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스리는 나름대로의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한때 내게는 게임으로 도망치는 게 불안에 맞서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젠 매일 운동을 하고, 글을 쓴다. 더 작게는 매일 일어나자마자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밥을 먹으면 그때그때 미루지 않고 설거지를 한다.

중요한 건 무엇에 몰입하느냐가 아니다. 내게는 게임이 도망친 낙원이었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정말 건강한 몰입일 수 있다. 가령, 게임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이 게임에 빠져드는 건 내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놓지 못했던 이유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다.


건강한 동기에 이끌린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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