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운명, 다른 삶

미성숙한 나와 마주하기 (1)

by 고민감자

"아기맹수요."

"아기?"

"맹수, 앙!"

(웃음) "딱이다."


흑백요리사 시즌2가 방영되고 유튜브에는 한동안 그와 관련된 다양한 영상이 떠돌았다. 그중 내 알고리즘에 자주 나왔던 쇼츠가 있는데 아기맹수라는 별명으로 출연한 어느 요리사의 쇼츠였다. 이런 걸 잘 챙겨보지 않는 내 알고리즘에 뜰 정도면 꽤 인상적인 장면이었나 보다. 내가 보기에도 눈길이 가는 장면이었고 또 워낙 자주 떠서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 나무위키에 작성된 문서를 둘러보았다.


김시현 요리사. 문서를 살펴보니 작성된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상당한 경험과 경력을 지닌 요리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요리사 세계의 생소한 표현이 난무하는 가운데 멍하니 내용에 수긍하던 중, 내 눈길을 끈 링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아기맹수의 스승이라는 김희은 셰프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은 미쉐린 가이드 1성 오너 셰프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처음부터 그녀가 요리사의 길을 걷기로 했던 건 아니었다. 화가였던 할아버지부터 조각을 하는 언니에 이르기까지 미술적 가풍 속에서 자란 김희은 셰프는 어린 시절부터 무언가 만들거나 그리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 분위기 속에 자연스레 아버지의 권유로 도예과에 진학한다. 그러나 도예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학교 생활을 이어갈수록 그 길에 대한 회의감만 늘어갔다고 한다.

그녀의 운명을 바꾼 건 다소 엉뚱하게도 선배들의 졸업 작품전이었다. 선배들의 작품을 보며 김희은 셰프는 "요리로 나를 표현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을 느꼈고 결국 진로를 바꾸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딸의 진로 변경을 완고하게 반대한다. 수차례에 걸친 의견 충돌 끝에 결국 극단적인 사건이 벌어지는데, 화를 참지 못한 아버지가 재떨이를 집어던져 김희은 셰프에게 상처를 입히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날로 김희은 셰프는 집을 나온다. 용돈을 모아두었던 빨간색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246,870원을 챙겨 들고 무작정 집을 나와버린 20살의 여대생. 막연한 상황이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녀는 보증금 없이 월 2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반지하 방을 구하게 되고 그곳에서 열악한 생활을 시작한다.

일단 나오긴 했지만 여전히 요리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던 청춘. 아버지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요리학교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최저시급이 3100원에 불과했던 그 시절, 1년에 걸쳐 허리띠를 졸라매고 1800만 원을 모으기에 이른다.

단순히 꿈을 좇는 걸 넘어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도 컸던 그녀는 모은 돈을 가지고 아버지를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요리에 대한 뜻을 재차 내비치며 지지를 구하지만 아버지는 또다시 차가운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끝내 아버지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김희은 셰프는 모은 돈으로 요리학교에 다니기 시작한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오히려 그 길에 대한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여전히 아버지의 인정을 바랐지만, 그녀가 요리학교에 진학한 걸 못마땅해하는 아버지에게 지원을 바랄 수 없었고 한때는 제4 금융권까지 손을 뻗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힘든 시간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노력한 결과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문서에 담긴 김희은 셰프의 인터뷰를 보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다 올라왔다. 아버지에게 그토록 인정받고 싶었다는 마음에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론 경외, 부러움, 아득함, 열등감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오묘한 감정들이 함께 밀려왔다. 영상이 끝나고서도 나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빈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생각에 잠긴 사이, 어렴풋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밀려왔다.




나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했다. 컴퓨터 일을 하시는 아버지 덕에 나는 당시로서는 나름대로 얼리어답터였고 컴퓨터 게임 또한 일찍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런 내 모습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여느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내 부모님의 최대 관심사는 자녀의 성적이었고 컴퓨터 게임은 그런 부모님에게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집안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컴퓨터 게임은 단순히 하면 안 되는 것을 넘어 죄악 그 자체였다. 가끔은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니까 게임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지만,


"그럴 거면 게임을 하지 말고 만드는 걸 해. 너처럼 쓸데없이 게임하는 애들 덕분에 게임 만드는 사람들이 돈 버는 거야. 알아?


이렇게 다그치는 아버지의 말에 늘 주눅이 들어 마음을 접었다.

돌이켜보면 당시 아버지는 알았던 것 같다. 어떤 분야를 가든 항상 1등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던 아버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대화할 때면 느낄 수 있었다.


"뭘 하든 네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면 나는 널 절대 인정해 줄 수 없어. 너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내 뜻을 거스르고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뭔가 보여줄 각오는 되어 있는 거지?"


나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고 무언가를 시도했다가 실패했을 때 쏟아질 비난이 두려웠다. 아버지는 아셨던 것 같다. 그 정도만으로도 내가 꼬리를 내릴 거란 것을. 어찌 되었든 나는 부모님의 뜻대로 현실에 순응했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여느 학생들과 같이 공부에 끌려다니고, 때론 게임이라는 일탈을 두고 갈등을 겪기도 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서울 소재 중위권 대학에 진학했다. 학과 따위는 고려하지도 않았고 최대한 간판만이라도 높여보려 아등바등한 결과였다. 나름대로 노력해 만들어낸 결과였지만, 그조차도 부모님 눈에는 한참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지원한 대학에 합격이 확정된 날 저녁, 아버지는 연거푸 술잔을 털어 넣으며 한숨을 푹푹 쉬셨다.

아버지의 반응에 나는 시무룩했지만 어쨌든 대학 생활은 시작되었다. 10대 시절과는 다른 학교 생활에 자유를 느꼈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며 소속감도 가져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늘 쓸쓸함과 공허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타인의 바람에 이끌려 도착한 이곳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황량함이었다.


"좋은 대학 못 들어가면 나중에는 네가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못한다니까? 일단 무조건 좋은 대학을 들어가야 해. 뭘 하고 싶은지는 그다음이야. 알겠어?"


늘 이렇게 말씀하셨던 아버지. 그런 말에 이끌려 스스로를 망각한 채 달려왔지만, 정작 내가 마주한 건 막다른 길이었다.

그렇게 큰 의미 없이 1학년을 보내고 입대했다. 일단 군대 갔다 오면 뭐 어떻게 되겠지. 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전역 후 복학을 앞두고서도 여전히 내 자아는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었다. 마음속을 휘젓는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긴 시간 방황하던 내가 한 선택은 결국 나 자신을 속이는 것이었다. 2학년으로 복학한 나는 어디로 뛸지는 생각하지도 않은 채 맹목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온전히 내가 결정할 수 있었다면 가지 않았을지 모를 그 길을 달리며, 나는 애써 "내가 좋아서 하고 있는 거야."라고 스스로를 속였다. 비록 아버지의 눈에 차진 않았지만 그 안에서라도 무언가를 성취해 보려 노력했다. 몇 차례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았고, 복수 전공을 해서 졸업이 더욱 까다로워진 상황에 조기졸업이라는 성과까지 냈다.

그러나 영원히 나 자신을 외면할 순 없었다. 무너지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또다시 막다른 길을 마주했다. 나는 뭘 해야 하지? 게다가 이번에는 두려움까지 밀려왔다. 나는 공부하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나를 어디서 써주긴 할까? 성과를 내고도 오히려 자신감이 떨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렇게 방황하길 수 달이 지난 어느 날. 큰집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뭔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집에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거실에 술상을 펴셨고 나는 언제나처럼 방 안에서 술에 취한 아버지가 풍기는 그 익숙한 불안감을 견디고 있었다. 술을 들이켜며 술상 앞에서 꾸벅꾸벅 조시길 몇 차례. 갑자기 아버지는 울분에 찬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나는 그간 외면해 왔던 나 자신을 똑바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뭐? A대? A대가 뭐냐 A대가."


슬프거나 상처받는 느낌도 아니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한 마디에 얼떨떨한 상태로 멍하니 있다가, 마음속에서 오랫동안 내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를 내팽개치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삶이 아버지의 인정을 갈구하는 하나의 장대한 연극이나 다름없었다는 걸.


"됐다. 이제 그만하자."


그 길로 나는 삶 속에서 무언가를 놓아버렸다. 그리고 나 자신도 잃고 부모님의 인정도 받지 못한 현실로부터 도망쳐 방문을 걸어 잠갔다. 그게 그토록 긴 시간 이어질 거라 생각지 못했던 은둔의 시작이었다.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다른 결정을 했고, 지금은 나와 완전히 대척점에 서있는 사람. 대체 무엇이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걸까? 두 삶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 아버지의 지지와 인정을 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녀에게 그 어떤 것도 주지 않았다.

2. 나는 현실에 순응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본인의 뜻을 관철시키려 했다.

3. 그녀는 본인이 무얼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알았고, 또 그걸 해 나가는 과정에서 확신을 얻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끝없이 의심하고 있다.

4. 좌절을 마주했을 때 나는 방 안에 숨었지만, 그녀는 정면으로 맞섰다.


나로서는 엄두조차 나지 않는 그런 선택을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걸까. 최저시급이 3100원이었던 시절 아르바이트로 1년에 걸쳐서 1800만 원. 단순하게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만 지금 기준으로 따지면 대략 6~7천만 원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하면서 아르바이트만으로 1년 동안 6천만 원 벌기? 지금 당장 내게 하라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데 그토록 어린 나이에 그걸 어떻게 해낼 수 있었을까. 그 정도로 본인의 꿈에 확신이 있었던 걸까?

물론 집을 나오는 데는 아버지의 과격한 행동도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단순히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려고 집을 나온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훗날 다시 찾아가지도 않았을 테니까.

게다가 김희은 셰프가 나와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 느낀 대목은, 그 힘든 상황에서 조차 본인의 진로에 더욱 확신을 얻었다는 부분이었다. 삶 전체가 스스로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한 나는 아득한 동경심만 품은 채 그 삶을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확신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스스로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갔던 한 요리사의 삶과, 현실에 순응하며 어떻게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의미를 찾아보려 애썼던 한 은둔자의 삶. 인정받고 싶다는 비슷한 감정을 품고서도 정 반대로 나아간 두 삶의 궤적을 나란히 맞대자, 나는 괜스레 서글퍼졌다. 나는 대체 왜 저렇게 할 수 없었을까?

침울하게 과거를 비춰보던 중, 상담 선생님이 늘 상담이 끝날 때 해주셨던 말이 떠올랐다.


"잘 나아가고 있어요. 자신만의 속도로."


아리송했다. 대체 뭐가 잘 되고 있다는 걸까? 물론 상담을 받고 많은 것이 바뀌었다. 이젠 전처럼 불안하지 않고, 전처럼 무기력하지도 않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가는 내 모습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냥 격려차 해주시는 말씀이었을까?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을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 선생님과 나누었던 이야기를 되새겨보려 책장을 뒤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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