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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Jul 05. 2022

코인 티슈

-자작시

코인 티슈

          한상림


1.


봄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그해 여름처럼 마른 흙에 봄비 스며드는 오늘

까만 화석으로 몸단장하신 당신 유골을

조심스레 꺼냈습니다

뭉그러진 뼛조각들 사이 금니 하나가 하얗게 웃고 있을 뿐,

명당이라는 자리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생전에 베란다에서 당신이 가꾸시던 동백꽃 봉오리가

빨갛게 불 밝히고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뼈와 살을 파고들었던 나무뿌리를 잘라내고

조각난 뼈들을 모아 새집으로 모셨습니다

돌돌 말린 당신의 기억을 양 손바닥으로 움켜쥐고

힘껏 비틀어 봅니다

비틀어진 기억들이 동전 모양으로 포개집니다

아픔이 많아서일까요

생생한 시간을 되돌리기 위한 몸부림과

잠시라도 젖어보고 싶은 열망이 팽팽하게 끌어당깁니다

간사스러운 비틀림 때문에

적셔지는 순간 버려질

아픔 따윈 한 번도 상상한 적 없습니다



2.


아버지를 묻고 돌아오던 길, 당신 눈가에 주름 눈물이

여전히 고여 있네요

너는 내게 언제나 아픈 손가락이야,

죽기 전에 내 손가락에 낀 금반지와

팔목에 걸린 순금 팔찌를 너에게 주고 싶었는데

어금니를 빼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만 소매치기를 당하고 말았어,

그 몹쓸 놈들은 어찌 그리 순금을 잘 알아보는 건지

한 번도 순금처럼 살아보지 못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 어머니가

실금 같은 날을 이어가면서

머잖아 함께 누워 계실 아버지 옆자리를 들여다봅니다


어머니,

당신 가슴에 그렁그렁 고여 있는 눈물 꺼내 드릴 수 없다면

차라리 억센 티슈에 봄비를 찍어 눈물 닦아 드릴게요

하르르, 하르르, 가쁜 숨 몰아쉬듯

오래된 기억들이 하얀 목련 꽃봉오리처럼 부풀어 오르네요

활짝, 꽃처럼 웃어보세요, 어머니




지난해 봄날, 그날처럼 아침부터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2007년도에 선산에 모신 아버지 이장을 하는 날,


그해 6월에도 빗방울이 유족의 울음을 대신한 듯 떨어지기 시작했었다.

아버지는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셨고 자기 몸 관리에 철저하여 70 살에도 치아가 거의  튼실하였는데,

뜻하지 않은 '흑색종'이라는 피부암으로 발병 후 2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수술 후 2년 간 국립암센터에 다니면서 관리를 받았지만 2년 안에 재발하면 힘들다는 의사의 말대로 되고 말았다.

아버지를 묻던 날, 배가 동이 배처럼 부풀어 오른 복수 때문에 관 뚜껑이 닫히지 않아서 참으로 안타까웠다.


저승꽃 그늘 / 한상림


아버지,

아버지 얼굴에 꽃그늘이 너무 짙어졌어요

제가 좀 꺾어 드릴까요


그 해 여름, 칠순 앞두고 유난히 짙어가던 아버지의 꽃그늘

우선 큰 송이 몇 개라도 꺾어드리고 싶었지만

극구 사양하시던 아버지의 야윈 얼굴 가득

검은 콩알이 여기저기 매달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듯

아버지의 누이가 그랬듯

걷어내지 못한 그늘 드리운 채

떠날 채비 서두르시던 날

겨드랑이 속에 압정처럼 박혀있는 검은 꽃 하나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이제 너희들 잘 사는 모습 보았으니

결코 죽음은 두렵지 않으나 죽기까지의 고통이 두렵다며

급히 떠나시려는 아버지 부둥켜안고 매달려 봤지만

그날 밤 오 남매 자식들 세워놓고

점점 차오르던 복수로 동이배 띄우시던 아버지

검은 꽃 흔들며 아주 먼 길로 떠나가셨다


어느새 검은 꽃씨 하나 내 손등에도 떨어져

어둔 그늘 점점 넓혀가고 있지만

나 역시 그 꽃을 꺾을 수 없다


-----2011년도 <따뜻한 쉼표> 첫 시집에 수록


그리고 14년 만인 지난 해 선산에 조상들 묘소를 한 군데로 모시는 이장 작업으로 아버지를 새 집으로 모셔야 했다.

고향 마을이 보이는 양지바른 곳이었는데, 습기가 많아서인지 조심스럽게 꺼낸 아버지 유골은 이미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그리고 금니 하나가 하얗게 웃고 있을 뿐,  생각보다 너무 상태가 안 좋았다.

새 집으로 다시  모시고 오던 날, 역시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새 집에는 돌아가시면 함께 누워 계실 현재 여든여섯 친정어머니 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코인 티슈는 식당에 가면 물수건으로 사용하라고 동전만 한 크기의 압축된 종이티슈이다.

메마르고 거친 코인 티슈에 물을 부으면 크게 부풀어 올라 우리는 그걸로 손을  씻은 후 식사를 하곤 한다.

아버지 집을 파묘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들이 되살아났다.


2년 간 일산 국립암센터로 가서 대전까지 모시고 다녔던,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오가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하였던 추억들이 내게 마지막 남겨주신 선물이다.

워낙 꼬장꼬장하고 깔끔한 외모에 늘 청바지도 다림질해서 입으셨고, 식사 후 3분 이내 양치질을 철저히 하시더니, 왜 그리 뜻하지 않은 흑색종이란 희귀 암으로 일흔한 살에 가신 건지..

지금은 대전 친정집에 가면 어머니 홀로 계셔서 아버지의 빈자리가 늘 허전하다.



친정엄마에게 나는 아픈 손가락이다,

학비도 제대로 못 대주고, 혼자 자립하여 알아서 공부하고 결혼하기까지, 엄마는 늘 오 남매 맏이였던 내게 빚을 진 것처럼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다.

베이버부머로 태어나 어려운 시기에 그 당시는 거의 다 그렇게 고생을 하였지만, 유난히 억척스러운 나는 문제집 살 돈이 없어서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 문제집을 빌려서 베껴가며 고등학교 입시 준비를 하였었다. 교복도 맞춰주지 못하여 주변에서 아래위 짝짝이 교복을 입고 입학을 하다 보니, 학교 갈 때마다 움츠러들었고, 고등학교 3년 내내 대전시 원동 헌책방 골목을 누비며 남들이 낙서하고 메모해 둔 냄새나는 교과서로 공부했었다. 그런 내게 엄마는 늘 빚진 자식으 미안해하신다.


지난해 갑자기 내게 목걸이를 주셨다. 그런데 목이 굵어진 내게 맞지 않아서 메달만 들고 왔다.

엄마가 그렇게 나에게 주고 싶어 하시니, 기념으로 간직하겠다고 메달만 들고 왔더니, 얼마 전에 다시 줄을 늘려주셨다. 그이후 목걸이를 항상 걸고 있다

어머니는 이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용 안 한 스텐 다라도 몇 개 주시면서 주변 정리를 하시는 거다.



아버지 임종을 지켜보면서,

"아버지, 죄송합니다. 아버지를 살려드리지 못해서요.

  엄마 걱정은 마세요., 제가 잘 모셔 드릴게요."

그렇게 나는 아버지에게 약속을 해 드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15년째 홀 어머니로 씩씩하게 살아가시는 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나, 서울에서 대전까지 먼 거리를 자주 오가지 못하여 마음뿐이다.


코인 티슈!

어느 날, 수강생들에게 코인 티슈 시재를 주면서 써보라고 하였었다.

그리고 나도 수강생들과 함께 이 시를 2021년 4월에 써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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