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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Apr 03. 2023

바람난 봄

자작시

바람난 봄

     

 한상림    

      

바람난 꽃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던 오후

붉은 꽃잎 몇 장 찍어 감추고 시침 뚝 떼었지요

날아든 꽃잎 꿀꺽 삼키면 죄명이 뭘까요     

아름다운 과거를 간직하고 싶은 열망 하나뿐인데,

온종일 진실을 캐달라 시비 거네요

찍힌 것들은 원래 왈가왈부 시끄럽잖아요     

허공에 매달린 채 땅바닥만 바라보았는데

지난밤 달빛이며 별자리까지

송두리째 도둑맞았다며

성난 하늘까지 우르릉 쾅, 으름장예요     

요염한 눈빛으로 날아든 도화의 눈빛

온몸으로 뿌리쳐 밀어내지 못하고

가슴 깊이 숨겨둔 죄 밖에 없다고요     

찍고 찍히는 일이 어디 시시티브이뿐이던가요

남의 심장에 비수 꽂아놓고

변명 늘어놓으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감추고 싶은 과거는 상처가 많지요

상처를 감추려고 덧칠이야 하겠지만 흠집은 지워지지 않아요

새살 돋는 미래를 담을 수 없다는 건

더 슬픈 일이지요     

당신이 원하는 과거는 언제든 되돌려 감아서

현재로 돌려 보여줄 수 있겠지만

잘못된 과거를 되감을 순 없어요

봄을 앓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여름을 봄이라고 자꾸만 우겨대요     

내장 깊숙이 박혀 있는 메모리칩을 꺼내어

다시 봄을 돌려주고야 싶지만

화살처럼 달아난 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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