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자궁은 쓰다 한입 베어 물면 진저리 치며 내뱉고 싶은 뜨거운 양수를 가진 여자 자궁벽에 씨앗 몰래 감추고 돌덩이처럼 단단해지기 위해 터지고 갈라진 맨살에 살아온 내력을 새겨놓은 속 무른 일생을 읽어본 적 있다 한때 노란 화관을 머리에 꽂고 연둣빛 아기집을 꿈꾸던 철없는 소녀
온몸에 잔가시 두르고 여린 덩굴손 조심스레 뻗어 담벼락을 기어올랐다 폭염에 영글어가는 씨앗을 품에 안은 노각 가려운 몸통 줄기에 비비며 단단해져라, 돌같이 딱딱해야만 엄마가 될 수 있다 두루뭉술 점점 불러가는 배를 내밀며 하늘, 바람, 흙에. 그저 순종하는 것만이 살길이라 믿었던 거칠고 누런 몸통에 칼날이 스치면 피눈물 쏟으며 지키고 싶던 자존심 하나 억세게 늙어가면서도 완강히 주름을 거부하는 여자 단 한 번이라도 그 누구의 여자이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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筆者 주>
한상림 시인은 한 때 <미당문학 band>에서 같이 활약한 인연이 있습니다. 마경덕 시인과의 인연으로 늦깎기로 시에 입문했지만 천부적 재능으로 날카로운 통찰과 은유를 육화 시킬 수 있는 드문 여성시인입니다. <늙은 오이>가 입증하고 있습니다.
늙은 오이, 그것은 회한을 드러내는 우리들 어머니의 자화상
이 작품의 백미 (白米 )는 결구의 여운(餘韻)으로써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인생 교훈적인 여정(餘精)이 아닐까? 외로운 황혼의 절벽 끝에 도달했을 시적 화자는 "피눈물 쏟으며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이었을 동양적 여인의 한(恨)을 가슴에 묻고자 하는 가슴 시린 독백을 나지막하게 그러나 강단하게 들려준다. 가슴 먹먹한 잔잔한 감동의 울림으로 눈시울마저 붉어지게 만든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 누구의 여자(女子)이고 싶었던....." 통절한 고백에 달려가 그 거칠어진 누런 몸통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현실의 늙은 오이는 악착같이 굴곡진 인생항로를 넘고 넘어왔을 숙명적인 여자의 일생에 대한 회한(悔恨)을 드러내는 우리들 어머니의 자화상이다. 완숙한 메타포의 절묘한 맛을 여성적인 시어들로 맛있게 비벼 낸 아름다운 서정시다.
우연히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제 시 <늙은 오이>가 <온글>이라는 다음 카페에 올려져 있길래 모셔왔습니다.
'늙은 오이' 시는 10여 년 전에 썼습니다. 두 번째 시집에 수록된 시이지만 항상 이맘때가 되면 떠오르는 제가 사랑하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