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의미의 바람이고 싶은 날이 있다. 동안 너무도 바쁘게 앞만 보면서 달려왔지만, 가끔 이렇게 탁상용 카렌다 일정표 안이 비어있는 날에는 종일 혼자 지내본다.
그래서 詩題를 "바람의 발"이라고 해 놓고 막연한 바람의 발자국을 그려보았다.
아무리 바람의 발자국을 잡아서 인간의 그 무엇, 혹은 삶의 그 무엇으로 써보려고 해도 뚜렷한 시상이 잡히질 않는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 발을 가지고서도 보이는 모든 것들을 건드린다. 심술궂은 바람도 있지만 대부분 따스한 손길로 사물을 어루만지는 바람을 우리는 어떤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높새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갈바람....
심술궂은 바람은 태풍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동물 혹은 발생지역의 이름으로 잠시 세상을 어지럽힌 다음에야 소멸한다.
바람에도 마음이 있다면, 어떤 색깔로 나타날까?
지금 신문에는 온통 정치인들의 비리로 얼룩진 기사가 가득하다. 사회면에는 소외된 사람들의 고독사와 자살 혹은 어처구니없는 살인사건으로 한 발자국만 헛디디면 수렁으로 빠져들어갈 만큼 어두운 늪들로 깔려있다.
돌풍이 한바탕 불고 나면 좀 가라앉으려나, 이런 사람들은 그야말로 회오리바람으로 훅 날려버리면 시원스러울 바람이다.
인생은 잠시 우리 곁에 왔다가 슬며시 사라지는 바람이다. 짧은 생을 살아가면서 빈 마음으로 왔다가 빈 마음으로 돌아가는 실바람이고 싶다.
어제는 글마루문학동인들과 함께 올림픽 공원에서 단풍번개 모임을 가졌다.
25명 중 7명만이 만났지만 만추의 가을을 만끽한 날이다.
지난밤 밤새도록 창문을 흔들어댄 바람에 단풍이 많이 떨어져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불고, 금세 언제인 양 햇살이 비추고, 5시간 동안 공원을 맴도는 동안 마치 사계절을 온몸으로 느꼈다.
걸어서 30분 거리인 옆동네 송파구 올림픽공원엘 참 오랜만에 거닐었다.
심술부리는 바람에 떨어진 낙엽들...
모처럼 지난 글을 들척이다가 8년 전 메모 한 장을 꺼내 본다.
<바람이고 싶다>
이때 썼던 시가 <바람의 맨발>이다.
바람의 맨발
한상림 스쳐간 바람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저녁, 맨발로 집 나간 아이는 아직 소식이 없다 바람도 제 갈 길이 있다고 바람이 가는 길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따라나섰던 아이, 바람은 만지는 것마다 흔들림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입김으로 살아있음을 가르쳐 주었다 바람의 입김이 거세거나 혹은 창문이 부산스럽게 흔들릴 때 창문을 열고 바람의 길목을 바라본다 아직도 맨발인 바람을 보면 내 가슴도 마구 뛴다 바람에게 신발 한 켤레 신겨주면 길 잃은 아이가 돌아올 수 있을까, 그날 신겨주지 못한 신발은 점점 여위어 가는데 보이는 것들은 여전히 제각기 다른 그림자를 담고 있다 바람에 떨고 싶어 안달하던 사람도 바람에 끌려 다니는 사람도 제 몸 여기저기 바람의 발자국을 새기며 길을 찾아가는 날에는 유난히 나와 아이의 거리도 멀게 느껴진다 바람의 입김이 거센 날 나도 바람을 따라나서고 싶다 새 신발 한 켤레 사서 발목 시린 저 바람에게 신겨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