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겨울나무에게
한상림
덕유산 향적봉
이파리 하나 매달지 않은 주목 가지에
바람이 내려 놓은 눈꽃이 활짝 피어있다
눈꽃은 바람의 껍질인가,
세기를 넘어 온 바람은 마른가지를 흔들며
생명을 불어 넣으려 한다
껍질을 벗기 위해서는
자신의 속부터 우선 비워야 했다는 내력을
바람은 나뭇가지에 촘촘히 새기고 있다
이제부터 바람의 껍질을 매단 가지들은
늦봄까지 바람의 내력를 읽어갈 것이다
한 때 산정상 가장 높은 곳에서 앉아
비바람에 맞서 잔가지로 허공길 찾으며
구름의 무게를 재고 푸른 햇살을 마셨을 시간들,
억겁을 지나온 바람에 과시했을 푸르름 어디가고
허물을 걸친 고사목은 지금, 살랑살랑
찬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가
_2011 <따뜻한 쉼표> 시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