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랑 나랑

긍정의 손

-쌍둥이 아빠에게

by 한상림

긍정의 손


한상림



양쪽 눈 초점이 서로 따로 논다

눈이 유난히 커서 슬퍼 보이는 남자,

점점 굳어가는 몸을 휠체어에 기댄 채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알거든 손을 번쩍 들어보라 하니

왼 손을 반쯤 들어 올린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그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왼 손으로만 긍정을 말하는 거다

반쯤 오그라진 긍정의 손을 잡으니

내 손을 꼭 쥔 채 아무런 표정도 만들지 못한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두 귀를 열고

세상의 긍정을 말하기 위해

애써 한 손으로 생을 버텨왔는지

밥을 먹고, 글자를 쓰고, 술을 마시고, 악수를 하며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즐겨 들었던 그의 오른손이

부정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아무도

그에게 부정의 손을 내밀지 못한다

애절한 아내의 눈빛에도

고집 센 그의 긍정은 흔들림 없다



한 사람과의 만남이 쉬울 수는 있겠지만

소금처럼 변하지 않는 소중한 인연은 금보다 더 귀하고 값지다.

쌍둥이 아빠를 알게 된 것은 동주민센터에서다.

새마을부녀회 담당 주임과 봉사자인 나와의 인연으로 알게 된 Y 주임,

참으로 진솔하고 따스하고 인정 많은 남자다.

"회장님, 여자 손이 왜 이리 거칠어요.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

그러면서 여러 번 안쓰러운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었다.

구청으로 발령이 났을 때 손수건 3장을 이별 선물로 주었었다.

하지만, 구청으로 간 지 2주 만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아직도 말 한마디도 못하고 6년째 병원에서 지낸다.

한번 죽은 뇌는 살아나지 못하고 사람을 바보로 만들다니,

쌍둥이 남매를 어렵게 가져서 한참 공부할 중학교 3학년 때 쓰러졌으니

아이들에게도 아내에게도 충격이었다.

그로 인해 아들은 신부가 되겠다고 사제의 길을 선택하여 공부를 하는 중이다.

그 당시 공상처리가 애매한 상황에서 내가 써 준 한 장의 편지글로 인해서

서울시에서 공상처리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나와 부인과의 만남은 언니 동생으로 이어졌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뇌경색으로 수술을 하였으나

실패하여 하루아침에 가정이 곤경에 처해 암담할 때

사소한 마음 하나가 가족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거

그 쌍둥이 아빠를 생각하면서 2015년도 겨울에 썼던 시 한 편이지만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시이다.


" 나를 알아보면 손을 한번 들어봐요, 내가 누군지?"


그러자, 왼 손을 살짝 들어서 의사표시를 하였다.

그 후로, 두 번째 찾아갔을 땐 내가 하는 말에 눈을 깜빡여 보라고 하였더니

역시 눈으로 대답을 하였다.

재활치료 중였는데, 작년부터 코로나로 인해 면회를 할 수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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