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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림 Nov 01. 2021

병아리 똥은 뜨겁다

 -자작시


병아리 똥은 뜨겁다

  

    한상림     



아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사 왔다     

나를 엄마로 알고 졸졸 따른다     

잠시 안 보이면 뺙뺙 거리며 찾는다     

가끔 무릎 위로 올라앉아 응석을 부려보거나     

날개깃에 부리를 파묻고 잠을 잔다     

그러다가 손바닥으로 감싸주려면 발버둥 치며 달아난다     

삐삐삐, 울어대는 것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 같다      

저 어린것과 말이 통하려고 한다     

벼슬이 피고 빳빳해져 가는 날개를 부풀려     

밥상 위를 넘볼 때도 있다     

베란다에서 상추 싹을 깡그리 쪼아 먹기도 한다     

하루속히 내쫓아야 한다고 구박이라도 하면     

가족들의 안타까운 눈빛이 나를 머뭇거리게 한다     

어깨 위에 올려놓고 놀아주던 남편은     

이마의 주름살까지 쪼인 적이 있다     

오늘은 시를 쓰고 있는 내 허벅지 주변에서 떠나지 않는다     

도대체 어느 별에서 환생하여 내 곁으로 온 거니,     

한 줌도 안 되는 녀석의 체온에서 우주가 보였다     

8년 전 느닷없이 가버린 아들의 체온이 느껴지고     

닭기똥 눈물이 쏟아졌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서 나누는 체온은 같은가     

맨살을 콕콕 찍어대다가 엉덩이를 내리고     

내갈기는 물똥, 그 똥살에 언젠간 내쫓기게 될     

점점 닭의 형체를 찾아가고 있는 녀석     

그 똥이 지독하게 아프고 뜨겁다     


 ------2011년 시집 『따뜻한 쉼표』 중에서



이 시는 10년 전에 쓴 시이다.


2003년도 9월 6일

느닷없이 고2 첫아들을 떠나보내고 나서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치 팔다리가 모두 잘려나간 풍뎅이 몸뚱어리처럼 뱅뱅 돌면서 몸부림을 쳐 봐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 밤잠을 못 자고 날이 밝으면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새벽마다 성당에 가서 미사를 하면서 울고  또 울어봐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리고 혼자서 매일 글을 쓰면서 스스로 견뎌냈다.

남은 아이 셋을 바라보면서 좌절하면 안 된다는 신념 하나로...


2년 후

2005년도에 수필을 등단하고,

2006년도에 시로 등단하여서 지금은 시 창작 강의도 하고

수필, 칼럼 등 글쓰기 창작교실을 통하여 제자들이 하나둘씩 그때의 나처럼 등단을 하기 시작한다.


지독하게 아픈 후에 성숙해지는 것이 글쓰기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그 끝은 보이지 않기에 여전히 배워가면서 글을 쓰고 있다.


아들을 잃고 마음 추스르고  난 후 선택한 봉사활동,

새마을 부녀회원으로 동에서 구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문학을 늦깎이로 시작하여서

문학과 봉사로 22년 동안 앞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려왔다.

그리고 대통령 훈장과 강동구민 대상, 청향 문학상 대상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상을 받았지만

올해부터 봉사활동은 모두 내려놓고 오로지 문학에만 전념하고 있다.


남은 인생은 조용히 나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면서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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