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은 계절 변화에 아주 민감했다. 계절의 순환과 이법에 따라 사람의 마음 상태를 빗대어 1월에서 12월까지 달(month)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아라파호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불렀고, 정희성 시인도 '11월은 모든 것이 사라지지 않는 달‘이라고 인생의 늦가을 정취를 서정적으로 노래하였다.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 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 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
- 정희성 시인의 '11월은 모두 다 사라지지 않는 달‘ 전문
인생의 겨울이 오면 우리는 우두커니 혹은 지나온 인생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11월엔 정희승 시인의 시처럼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을 그리면서 남은 인생에 새로운 희망을 갖고 싶다. 1월에서 10월까지 봄,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로 들어서기 직전에 시작하는 간이역 같은 11월, 옛 선인들이 11월을 소춘(小春) 즉 가을과 겨울 사이에 잠시 머물렀다 가는 키 작은 봄이라고도 불렀다. 봄에는 온갖 꽃들이 겨울 동안 추위 속에서 오래 머물렀다가 새로운 희망을 갖고 꽃을 피우지만, 가을은 마지막 이승을 떠나기 전 인생이라는 꽃을 단풍처럼 활짝 피울 수 있는 색다른 봄이 아닐까.
늦가을이자 초겨울로 접어드는 11월은 숫자 ‘1’이 나란히 세워진 숫자이다. 11월엔 그 무엇이든 새롭게 세워보고 싶어 진다. 어쩌면 인생을 12개월로 나누었을 때, 늦가을인 11월에는 그동안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반듯하게 다시 세워놓을 수 있는 남은 인생을 향한 마지막 도전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갈바람 소솔히 부는 만추의 저녁, 낙엽 뒹구는 가로수 길을 홀로 걷노라면, 지나온 길을 돌아보며 회한에 잠기곤 한다. 마치 정희성 시인의 '빛 고운 사랑의 추억'처럼 가슴 언저리를 맴도는 퇴색된 추억을 떠올리기에도 좋은 11월이다.
11월, 달랑 두 장 남은 달력과 곱게 물든 잎새들은 저만치 멀어지고 있지만 젊은 날 우리 가슴에 머물러 있던 추억은 아름답고 영원하다.
자, 가을이 멀어지기 전에 창문을 열고 붉게 물들어 떨어지고 있는 낙엽들의 신음소리를 들어도 좋다. 아니면 조용히 혼자 만추의 풍경을 바라보며 여행을 떠나도 좋다. 구순의 노인들이 칠순의 노인들을 보고 “젊은이들, 참 좋을 때다, 좋을 때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12월을 앞에 둔 11월은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살아있는 달이 아닐까?
12월이 되면 한 해를 마무리한다고 여기저기서 자칭 평가대회나 송년회로 얼룩진 시간으로 채우면서 정신없이 바쁘게 마지막 달을 보내게 된다. 그나마 11월엔 빈 들판의 한적한 풍경처럼 한가로운 달이다. 희망이 아직도 살아있는 11월을 ‘키 작은 봄’이라고 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월은, 인생의 노년기를 맞이하기 전에 잠시 황혼을 맞이하기 전에 머물렀다가는 봄이기에 조상들은 소춘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아직 내 인생의 11월은 비록 아니지만, 팔순 중반을 넘기신 어머니를 보면서 소춘을 떠올린다. 아버지는 이미 14년 전에 저세상 사람이 되셨지만, 엄마와 결혼하고 바로 내가 임신되자마자 청년인 아버지는 논산훈련소에 입대하였다.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사랑방에서 나를 낳고, 서모인 할머니와 고모 넷, 그리고 큰어머니와 사촌 형제들 육 남매 대가족 속에서 몹시 고된 시집살이를 하며 3년 동안 아버지를 기다리셨다. 그 당시 스물 셋 청년 아버지가 훈련복을 입고 찍었던 흑백 사진 한 장을 얼마나 애지중지 바라보면서 3년 동안 기다리셨을까?
몇 해 전, 어머니는 자식들 오 남매에게 그때 그 흑백 사진을 확대하여 나눠주셨다. 빛바랜 흑백 사진 속에는 우리에겐 아주 생소하면서도 젊었던 청년의 잘생긴 아버지가 군복을 입고 서 있다. 신혼의 부모님 모습을 떠올려보면 마치 다시 봄을 보는 듯하다. 주름진 어머니가 이제 황혼으로 기울어져 가는 자신을 읽으면서 그때를 그리워하고 계시는 거 역시 소춘(小春)이 아닐까? 점점 사그라져가는 어머니를 보면서 작은 봄을 떠올리는 나 역시 스무 해를 더 보내고 나면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지금을 내 삶을 그리워하면서 소춘의 작은 봄을 읽게 될 것이다.
11월에는 수확을 마친 들판의 휑한 모습처럼 우리의 마음도 잠시 비워두면 좋겠다. 너무 정신없이 바삐 살고 있다가도 가끔 이렇게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 역시 나에게는 아주 짧게 스치는 봄이 아닐까. 사실 지난 22년 동안 나의 11월은 봉사한다고 바쁘고 정신없이 보낸 중년의 시간이었다. 올해부터 봉사하던 삶을 내려놓고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면서 미래의 나를 생각하는 키 작은 봄을 가꾸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