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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Mar 26. 2019

소년의 꿈은 눈물이 되었다

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배에서 자꾸만 하늘을 바라보는 소년이 있었다. 

마을 앞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어망에 걸려든 고기를 건져 올려 생계를 이어가는 어부의 아들이다. 집안 대대로 해온 일이라며 학교 대신 바다로 끌려 나온 소년의 시선은 자꾸만 저 밖을 향했다. 

평생을 어부로 살기는 싫은 아들, 내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을 거라는 말을 꾹꾹 눌러 담으며 사는 아들. 지금 사는 이곳이 아니라 다른 세상을 꿈꾸는 소년의 마음은 내내 고단했다. 


“바다로 어장으로 아버지 손에 끌려서 나가게 되었으니, 외부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얼마나 컸겠어요. 바다에 가면 하는 일이 어망을 던져 놓고 두 시간 세 시간을 기다려요. 그 시간에 조그만 배 안에서, 망망대해에서, 심심하잖아요. 그래서 신문을 가지고 가서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죠. 하다 못해 광고까지도 다 낱낱이 보게 되는.” 

  

#언제나 아들은 떠나고 싶었다 

매향리에 미군들이 주둔하기 시작한 1955년에 태어나 내내 이 마을을 지켜온 토박이라, 쿠니 사격장의 시작과 끝은 온통 그의 인생 안에서 벌어진 사건들이었다. 그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은 새벽부터 부지런만 떨면 어망을 가득 채우던 마을 앞 황금어장이 쿠니 사격장으로 편입돼버린 때였다. 


마을 앞에 떠 있는 농섬을 기준으로 사방 2.4킬로미터, 바다만 해도 680만 평이 미 공군의 사격훈련장으로 징발되었다. 물고기들이 알을 낳고 키우던 농섬 주변은 이제 전투기가 포탄을 투하하는 표적이었다. 손 쉽게 고기를 잡아 올리던 어장을 잃고, 그나마 남은 어장에서도 전투기를 피해 가며 고기를 건져 올리며 근근이 살아가는 집에서 자식 공부를 시킬 여력은 없었다. 


“중학교를 안 보내주려고, 고기잡이를 하게 하려고 하셨죠. 그래서 엄마 아빠가 바다에 간 사이에 엄마가 돈을 감춰 놓는 데는 아니까 그걸 훔쳐가지고 15킬로미터를 걸어 가서 시험을 봤는데, 그게 덜컥 합격이 돼버렸어요.(…) 합격된 거를 알고 나니까 더 참담하더라고. 근데 동네에 오니까 난리가 났어요. 9명이 갔는데 혼자 합격이 되는 바람에, 아버지가 마지 못해 보내 주셨죠. 저 너머 화산리 이모네서 농사일 도와주고 쇠꼴 베주고 쇠죽 쑤어주며 다녔죠.”  


몰래 본 시험 덕에 겨우 중학교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 온 소년의 머리 위에는 전투기가 날아다녔다. 맑고 청명한 하늘을 날카롭게 할퀴고 가는 전투기의 비행 소음. 검은 점 하나가 온 하늘을 망치는 것처럼 사격장이 들어 온 이후 이 마을에 고요하고 평화로운 하늘은 없었다. 땅에서 겨우 50미터 높이까지 저공 비행을 하면서 사람들 머리 바로 위에서 사격을 했다. 


어부들을 태운 배가 지나야 할 바다 위로도 전투기들이 날아 다녔다. 두 대나 네 대씩 짝을 지은 비행기 편대가 해상 폭격장에 폭탄을 투하하고 기총 사격을 했다. 농섬에 폭탄을 떨어뜨리고는 바로 육상 폭격장의 표적판에다 기총 사격을 하는 이중 훈련을 하기도 했다. 배 위에서 그물을 던지고 나면 몇 시간 동안 그저 전투기의 굉음을 견디며 바다만 바라봐야 했다. 


#어느새 내가 괴물이 되었구나

둥실 뜬 배에서 소년은 신문만 읽고 또 읽었다. 왠지 모르지만 서로 사는 게 힘들기만 했던 이 마을에서 신문은 다른 세상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여느 날처럼 배 위에서 신문을 펼치다가 박스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미국 어느 대학에서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지역 주민과 그렇지 않은 한적한 지역 주민을 비교 조사했다는 기사였는데, 비행장 인근 소음이 심한 지역 주민들은 성격이 포악해지고 자살률이 높다는 연구 보고였다. 


“그걸 보는 순간 소름이 짝 끼쳤어요. 그 동안 이것 때문에 우리 마을 주민들이 툭하면 흉기를 가지고 이웃간에 가족간에 끔찍한 폭력사태가 벌어지고. 또 주민들이 걸핏하면 자살을 하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 왜 이런 이들이 우리 마을에만 자꾸 벌어지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자리잡은 마을에서 태어나 미 공군기가 제 땅 인양 날아 다니는 하늘 아래서 자란 그였다. 내장까지 진동으로 울려 대는 전투기의 저공비행소리를 태교로 들어야 하는 마을이다 보니, 이제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만 들어도 척척 기종을 맞출 만큼 사격 훈련은 일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들어도 도무지 익숙해 지지가 않는 그 소리와 진동. 더 괴로운 것은 마을 사람들이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갈수록 황폐해지는 자신의 모습도, 돌이켜 보면 후회할 일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마을 사람들의 정신상태가 심한 소음을 견디다 견디다 못해 나타난 거란 단서들이 기사에 있었다. 


“서로를 괴롭히거나 동물을 괴롭히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후련함 그런 걸 느꼈단 말이에요. 절대 정상이 아니었죠. 그때 신문을 보면서 내가 마귀로구나, 악마로구나. 그 원인이 소음에 기인했구나 깨닫게 된 거에요. 전쟁지옥…. 나의 고향이지만, 여기를 탈출해야겠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죠.” 


살려면 떠나야 했다

밤낮 없이 전투기가 덮치는 마을에 살다 보니 나도 변해 가고 있었다. 


일년 평균 250일, 하루 평균 11.5시간 동안 사격 연습은 계속되었다. 이런 전쟁 연습장을 평생 동안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마을에서 더 살다가는 내가 정말 인생을 잡아먹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마을을 벗어나려면 돈이 있거나 기술이 있어야 했다. 고기 잡는 거 밖에 모르는 어부로 살다가는 이 마을에서 영영 벗어날 수가 없었다. 


“신문을 보니 광고가 났더라고요. 국가에서 하는 직업훈련과정을 거쳐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그런 정책이 있었어요. 직업훈련소에 들어가서 3개월 과정을 마치고는 중동 쿠웨이트로 갔죠.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기온이 40도 50도 되는 데서 하루 15시간 이상 일을 하거든요, 시간당 1불 50센트인가 받고 갔는데. 빨리 여기서 목돈을 마련해서 돌아가야 어머니 아버지랑 같이 마을을 떠날 수 있으니까요.”


탈출 자금을 모으는 독립군처럼 일을 찾아서 정신 없이 돈을 모았다. 하지만 일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 보니 집에서 기다려야 할 아버지가 없었다. 아버지를 찾는 그에게 긴 침묵으로 대답하는 가족들. 그가 떠나 있는 사이에 아버지는 스스로 목을 매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참으로 충격적인 소식이지만 이 마을 사람에게는 아주 크게 놀랍지는 않은, 정신이 지쳐버린 다른 마을 사람들도 비슷한 과정 끝에 종종 찾아 왔던 선택이었다. 


“이 마을에 자살한 사람들, 많죠. 많아요, 진짜. 아마 전세계에서도 이렇게 적은 인구에 이렇게 많은 자살이 발생한 거로는 최고일거에요. 그건 틀림 없어요. 극심한 소음이 정신장애를 가지게 하고 자살률을 높인다는 것은 여러 연구기관의 보고에서도 나와요. 쥐를 가지고 실험했는데 처음에는 새끼를 물어 죽이다가 나중에는 자기도 죽더라고.”


살아 보려고 떠난 아들이 있었고, 남아서 버티다 죽은 아버지가 있었다.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는 소음과 진동은 사람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을까, 그 답은 이 마을에서 유독 높았던 자살률과 폭력 사건 발생률이 말해준다. 소음은 그저 성가시고 시끄러운 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정신을 황폐하게 만드는 심각한 공해였다. 더구나 그것이 개인이 각자 알아서 감내해야 할 고통이 되면 죽음도 불사할 만큼 불안하고 사나운 정서로 나타났다. 


그저 그물을 건져 올리거나 밭을 갈던 사람들에게 쏜살같이 날아다니던 미 공군의 전투기란 도무지 대적할 수 없는 적이었다.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해결책도 탈출구도 없는 삶이었다. 억지로 버티며 살아내기 위해 소음과 폭력에 익숙해진다는 건, 어느새 스스로가 괴물이 되어 가거나, 버티지 못하고 사라질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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