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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Feb 25. 2019

할머니의 잃어버린 청춘

밭 사이로 이어지는 꼬불꼬불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간다. 그 길도 끝나가는 마을 구석에 움츠리듯 자리잡은 나지막한 집 한 채가 있다. 컹컹 짖는 개 한 마리만 반기는 평화로운 정적 속, 깔깔, 작당 모의하는 십대 소녀들처럼 명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옹기종기 앉아 있는 할머니 삼총사. 할머니의 주름처럼 잔뜩 주름져 있는 낡은 벽에서 실실 새어 들어오는 냉기로 방바닥은 차디 차다. 대신 뜨끈하게 데워 놓은 전기장판 위에 낡은 이불을 무릎에 나눠 덮고는 할머니들이 모여 앉았다.  


1.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 대신, 아니면 어느 집의 둘째 며느리 라는 정의 대신 자신을 소개하는 건 여전히 낯설고 어색하다. 한 동안 누구도 물어보지 않았을 고향, 어린 시절 자랐던 본가의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은 왠지 눈동자 저 너머가 아련해졌다. 자신의 나이를 되짚어 세는 것 조차 한참 걸릴 만큼 이 마을에서 오래 살아 온 세월이었다.


"고향은 저기, 저기… 전라도 무안… 내가 19살에 여기로 시집왔으니까, 그게 몇 년이여? 한 오십 년 넘었나. 뭐 여기가 어떤 데인지도 잘 모르고 시집을 왔지. 요즘처럼 연애하고 그런 시절이 아니잖아, 그때는 다들 그렇게 했으니까. 시집을 와보니까 바닷가 쪽에도 매화나무가 있었어. 해당화도 있고."


바다를 안고 사는 예쁜 마을이었다. 모를 내면 쑥쑥 자라는 땅도 있었고, 갯벌로 나가면 낙지와 조개가 지천이라 밥상 걱정은 안 해도 되는 살림살이였다. 굴만 따도 자식들 교육 걱정은 없다고 할 만큼 씨알 좋은 굴도 열렸다. 오래 전부터 신문에 소개 될 정도로 유명한 굴 산지가 있는 황금 어장. 갓 시집 온 새댁은 이만 하면 살만 하겠다, 싶었단다. 


2.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같다고 ‘청춘’이라고 부르던 이십 대 여인에게 생각 치도 않았던 시련들이 줄줄이 몰려왔다. 이제 스물을 넘긴 시골의 부녀자가 상대하기에는 너무나 강력하고도 무서운 일들이었다. 사실 저항은커녕 막아 설 엄두조차 안 나는 상대였다. 그 닥친 시련은 군대였고, 폭격기였고, 나라였고, 반공 이데올로기였다. 더 이상 푸르지 않은 청춘이 시작되었다. 


"벼가 노랗게 익었는데 사격장 들어온다고 다 쓸어 엎은 거여. 아직 벨 때가 멀었는데. 그 때 20원인지 10원인지 암튼 똥값에 (땅을) 주고… 미군 무대가 들어오더니 밤낮으로 사격을 퍼붓는 거여. 가을걷이를 못 끝내고 온 땅이 저 안에…. 저쪽, 사격장 안에 있었지."


모를 내고, 김을 매고, 이제 여문 곡식을 거두어 들이는 일만 남았는데, 가을걷이를 할 땅이 사라졌다. 농사 짓는 사람에게 제일 중요하다는 세 가지 일이 황망하게 사라진 것이다. 빈 손을 놀릴 수가 없어서 갯일이라도 하려 해도 뜻대로 되질 않았다. 마음대로 드나들던 바다도 갯벌도 이제는 사격장이 쉬는 주말에나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농사일도 빼앗기고 갯벌도 빼앗기고, 딱히 손 쓸 방법도 없이 나무줄기 껍질이나 뿌리껍질을 벗겨 먹으며 배를 곯던 시절. 푸르던 청춘은 온통 잿빛이 되었다. 


3. 

그렇게 시작된 쿠니 사격장의 폭격 연습은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끊이질 않았다. 이 마을 밖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난 한국 전쟁이었는데, 이 마을에서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민간인들이 멀쩡히 살고 있는 마을 바로 옆에서 미 공군의 폭격기들이 끊임없이 전쟁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아는 외부인들 조차 없었다. 답답하고 억울해도 하소연 할 곳 조차 없는 암울한 시대였다.  


"친정 어머니가 딸네 집 온다고 동구리에다 떡을 해가지고 걸어서 조암에서 실(언덕) 너머 왔었나 봐. 근데 저기서 막 들이부으니까. 어메 나 죽는다 하고 떡동구리를 길 옆에다가 내다(버려) 놓고는 기어 들어가서 숨어 있는데…. 어따 퍼붓는지 모르겠는데 나한테 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고 겨우 살아왔다고 그러더라고."


시집 간 딸내미가 보고 싶어서 찾아 왔던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돌아갔다. 하지만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마냥 견뎌야 했다. 쿵쿵 가슴을 울려대는 폭격 소리와 귀청에서 떠나질 않는 기총 사격 소리는 일상의 소음이 되었다. 세상 무서운 게 없이 한창이어야 할 장년의 시간들이 시름시름 시들어갔다.  


제대로 이야기를 할 수가 있나. 밤낮으로 뚱땅거리니까 말을 조근조근 할 수 있나. 야간 사격을 하면 저기다가 막 불을 켜놓고 해요. 노상 비행기들이 날아 오는데 그냥 따발따발따발 쿵쾅탕탕탕탕 난리여 난리여, 뭐 그 소리 때문에 전화도 할 수가 없고. 앉아서 대화를 못해. 


4.

보통이라면 노년이 되어서야 생각할 죽음의 순간도 불쑥불쑥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일년 내내 폭격기가 날아 다니는 사격장 담장 옆에 산다는 건 목숨을 내 놓고 사는 것과 매한가지였다. 알지도 못하는 어느 미 공군 조종사의 사격 솜씨에 따라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항아리에 뭘 꺼내느라고 있는데, 머리에다 대고 그냥 폭탄을 갖다 떨구는 거야. 금방 씨러져(쓰러져) 죽는 줄 알고 거기서 엎푸러져(엎어져) 있다가 못 일어나고. 그러다가 보니까 울타리 넘어 거가 (포탄이) 떨어진 거에요. 울 너머에. 나는 진짜 그 자리에서 죽는 줄 알고…. 미군들이 바다인 줄 알고 잘못 떨어뜨린 거지. 오발탄. 원래 목표는 농섬인데 마을로 잘 떨궈."

 

자잘한 오발 사고부터 이웃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까지, 이 마을에는 젊은이에게나 노인에게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늘 곁에 있었다. 자기는 평생 안 늙을 것처럼 마냥 해맑은, 죽음 따위는 안 올 것처럼 마냥 씩씩한 청춘의 시간은 이 마을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공평하지 않았어도 될 죽음의 공포가, 노인에게나 찾아올 죽음에 대한 공포가 모두의 젊은 시절을 야금야금 갉아 먹었다. 


그녀들에게도 아름다웠어야 할 청춘이 있었다. 하지만 그 청춘의 시간에 들었던 소리는 온통 우당탕탕 이었다. 이제 일흔도 훌쩍 넘긴 나이. 지나 온 세월을 손꼽아 보니 어림 잡아도 사십 년을 폭격기의 소음 속에 살았다. 어느 누구도 80년 인생에 절반을 잔인한 소음 속에서 살 꺼 라고 상상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인생의 절반을 버리고 나서 깨달을 건, 내가 가진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할머니를 잠시 웃게 만드는 것은 그저 조용함이었다. 그저 ‘아무 소리가 없음’이었다. 간만에 할머니에게 찾아 온 참으로 조용한 평화의 시간이 고작 십여 년이다. 이제 다시 빼앗긴다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여기는 것 역시 그저 조용함이다. 더 이상 비행기가 날아다니지 않고, 더 이상 폭격 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시간. 지금이 바로, 이미 늙어버린 몸에 찾아 온 인생의 황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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