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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Sep 19. 2019

[장편 동화] 아리와 폴짝이

아리는 오늘도 혼자 집에 갔습니다. 아리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단지 같이 갈 친구가 없어서는 아니었습니다. 집에 가도 아리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항상 바빴습니다.

‘치.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터덜터덜. 아리의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아리는 아무 잘못도 없는 돌멩이를 뻥하고 걷어찼습니다. 아리가 찬 돌은 땅에서 놀고 있던 참새들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아리도 혹시 다치게 한 건 아닌지 걱정스럽게 날아오르는 참새를 바라보았습니다. 참새들은 폴짝 뛰어올라 학교 게시판 위에 올라갔습니다. 

‘화성호 사생대회?’

아리는 참새가 안내해 준 게시판에서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리는 그림 그리기가 제일 자신 있었습니다. 

‘서지가 인기가 많은 건 얼마 전에 글짓기로 상을 받아서 일지 몰라. 그리고 글짓기에서 상 받고서 부모님이랑 외식도 했다던데.’

아리는 사생대회에 나가서 꼭 대상을 받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가 대상을 받으면 친구들도 부모님도 나를 좋아해 줄 거야.’

아리는 곧장 화성호로 갔습니다. 아리의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아리는 한걸음에 화성호에 다다랐습니다. 서둘러 가방에서 스케치북과 연필을 꺼냈습니다. 아리의 스케치북에는 그동안 아리가 그렸던 그림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습니다. 고양이, 개, 나무, 아리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아리는 페이지를 넘기자 부모님 그림이 나왔습니다. 아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다음 페이지로 넘겼습니다. 아리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자리에 앉으려는 찰나, 방금 전에 참새를 놀라게 했던 게 미안했던지 앉으려는 자리에 작은 생물이라도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살폈습니다. 휴우, 아리는 다행히 아무 것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앉았습니다. 갈대가 꺾이지 않게 조심하면서요. 

아리는 갈대와 화성호, 습지, 그리고 그 곳에서 쉬고 있는 철새들, 거기다 저 멀리 방조제 까지. 아리는 눈으로는 화성호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혹시나 잊어버릴라 손으로는 열심히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참을 그리던 아리는 너무나 예쁜 새 한 마리에 시선이 고정됐습니다. 어른들이 입는 정장을 입은 것 같은 모습에 주황색 부리를 가진 새였습니다. 아리는 열심히 스케치를 했습니다. 

‘근데 부리는 어떻게 하지? 아차 내 가방에 색종이가 있지!’

아리는 가방에서 색종이와 가위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새의 부리 크기에 맞게 주황색 색종이를 잘라 공책에 붙였습니다. 아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리는 이정도면 됐다는 듯 공책을 접어 가방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떠나기가 아쉬운 듯 화성호를 바라보았습니다.

“또 올게!”

아리는 사생대회에 낼 그림을 그리러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아리 뒤로 평화로운 화성호에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습니다. 갈대가 손을 흔들 듯 일렁이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리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을 꺼내 방금 그린 그림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물감을 꺼내서 열심히 색을 칠하기 시작했습니다. 화성방조제 안쪽의 습지와 갈대, 그리고 그림 가운데에 정장을 입은 주황 부리 새까지. 아리가 바라본 아름다운 모습을 도화지에 알록달록 채워나갔습니다. 

“아리야, 엄마 왔다.”

아리는 엄마가 퇴근하고 들어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에 열중했습니다. 이내 엄마가 밥 먹으라고 아리를 불렀습니다. 아리는 다급하게 대답했습니다.

“잠시만요, 이것만 마저 그리고요.”

아리는 새를 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을 빨갛게 색칠했습니다. 아리는 그림이 만족스러운 듯 흐뭇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아리는 얼른 밥을 먹고 왔습니다. 그림에 물감이 잘 말랐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림을 살펴보는데,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림에 새가 없어졌어!”

아리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분명 내가 열심히 그렸단 말이야! 아직 놀람이 채 가시지도 않은 아리에게 뒤에서 아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안녕, 나는 검은머리물떼새야.”

아리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너는 누구니? 아니, 근데 새가 어떻게 말을 해?”

“네가 그렸잖아. 그러니깐 말을 하지.”

“네가 내가 그린 새라고? 지금 그림 밖으로 나왔단 말이야?”     

아리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아리는 당장 모레가 사생대회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검은머리물떼새에게 말했습니다.

“빨리 그림 속으로 들어가! 사생대회에 나가야한단 말이야!”

검은머리물떼새는 대답은 하지 않고 바깥세상에 나온 것이 신기한 듯 폴짝폴짝 뛰며 아리 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아이참. 왜 이렇게 폴짝거려! 빨리 그림 속으로 들어가!”

“폴짝? 그게 내 이름이야?”

“그래 뭐 그렇게 불리고 싶다면야.”

“드디어 나한테도 이름이 생겼네. 나 소원이 하나 있어.”

“그 소원이 뭔데?”

“벽 너머의 밖을 날아보고 싶어.”     

“왜 밖을 못 보는데?”

“네가 호수 안쪽만 그려줬잖아. 그래서 그 밖이 너무 궁금해서 나왔어.”

“너는 새 인걸? 날아서 보면 되잖아.”

“네가 앉아있는 모습만 그려줬잖아. 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

“나는 법을 하루 만에 배울 수 있다고?”

“그럼. 당연하지. 나에게 나는 법을 알려주기만 한다면.”

“그럼 화성호 바깥 풍경만 보면 다시 그림 속으로 들어 갈 거야?”

“응. 그럴게. 약속!”

아리가 폴짝이와 말하는 사이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리가 잠잘 시간이 되었습니다.

“누구랑 이렇게 얘기하니?”

엄마가 아리 방으로 오며 물었습니다. 아리는 폴짝이를 들킬까 걱정이 되어 얼른 침대 밑에 숨겼습니다. 

“내일 화성호에 데려갈 테니 꼭 약속 지켜야해!”

“알겠어. 약속!”

폴짝이는 알겠다고 다짐하며 침대 밑으로 숨었습니다. 아리도 이불 속으로 쏘옥 들어가서 자는 시늉을 했습니다. 엄마는 아리 방에 들어왔습니다. 엄마는 아리가 불을 켠 채 잔다고 생각하고 불을 꺼주고 나갔습니다. 아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아리는 가방에 폴짝이를 숨기고 엄마에게 들킬까 살금살금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가 집을 나서는 아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아리 일찍 일어났네. 서둘러 어디 가니?”

“오늘 저 당번이에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아리는 엄마가 대답할 새도 없이 황급히 집을 나왔습니다. 얼마쯤 걸었을까요. 가방 속의 폴짝이가 소리쳤습니다. 

“답답해!”

아리는 깜짝 놀라 폴짝이에게 말했습니다.

“조용히 해!”

“싫어! 그림 속에서도 답답했단 말이야!”

폴짝이는 긴 부리로 가방의 지퍼를 열고 나와 아리의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아리는 빨리 폴짝이를 그림 속에 넣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습니다. 더 이상 폴짝이와 입씨름하느라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화성호에 도착한 아리와 폴짝이는 도열한 채 대열을 맞추고 있는 검은머리갈매기와 도요새 일행을 마주했습니다. 아리는 검은머리갈매기가 하는 말이 들리는 게 여간 신기하지 않나봅니다. 

“어! 새들이 말하는 게 들려!”

“나와 있으면 화성호에서 하는 모든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거야.”

그 때 위기대응센터장인 검은머리갈매기가 이 둘을 발견했습니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다들 경계 태세!”

아리와 폴짝이는 화들짝 놀라 몸을 숨겼습니다. 하지만 아리는 습지에 마땅히 몸을 숨길 곳이 없어 당황했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얘들아. 여기에 몸을 숨기렴.”

아리는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여기야. 아래를 보려무나.”

아리가 아래를 살펴보자 갈대할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어제 왔던 착한 그 아이구나! 내가 숨겨줄 테니 여기에 몸을 숨기렴.”

갈대할머니는 갈대들을 모아 아리와 폴짝이를 숨겨주었습니다. 검은머리갈매기가 주위를 경계하며 두리번거렸습니다. 한 발짝씩 앞으로 올 때마다 아리의 심장은 더욱 두근거렸습니다. 매서운 눈빛의 검은머리갈매기를 보고 잔뜩 겁에 질렸거든요. 아리 바로 옆을 지나가는 검은머리갈매기. 아리는 숨소리라도 새어나갈까 숨을 꾹 참았습니다. 다행히 검은머리갈매기가 못보고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갈대 잔털이 아리의 코를 간지럽혔습니다. 아리는 코가 몹시 간지러웠습니다. 아리는 재채기를 참아보려 하지만 끝내 참지 못했습니다.

“에취”

이 소리를 들은 검은머리갈매기는 위압적인 경고음을 내며 아리를 향해 날아왔습니다. 검은머리갈매기를 따르던 호위 철새들이 아리와 폴짝이를 둘러쌓습니다. 아리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이때 폴짝이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섰습니다. 

“나는 검은머리물떼새 폴짝이에요. 그리고 이 친구는 나를 그려준 아리고요.”

아리는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용감하게 나선 폴짝이가 대단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한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화성호 밖을 날아 보고 싶어 왔어요!”

가만히 듣고 있던 검은머리갈매기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내일 중요한 일이 있으니 절대 방해해선 안 돼! 해가 지기 전에 여기를 떠나거라.”

아리는 폴짝이의 당당한 모습에 용기를 얻어 검은머리갈매기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법을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검은머리갈매기는 당황한 듯 대답했습니다.

“나는 법을 알려달라고? 인간이 어떻게 날 수 있다는 말이니?”

“아니요. 저 말고요. 제 친구 폴짝이요.”

“지금 바쁜 거 안 보이니? 미안하지만 도와줄 수 없겠구나. 해 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기나 하거라.”

검은머리갈매기와 철새들은 줄을 맞춰 날아올랐습니다. 철새들이 떠난 자리에 아리와 폴짝이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아리 주변을 폴짝이가 폴짝거리며 돌아다녔습니다. 폴짝이가 움직일 때마다 습지 바닥에는 폴짝이의 발자국이 남았습니다.

“가만히 좀 있어! 나 지금 장난칠 기분 아니야!”

폴짝이는 그대로 멈춰 아리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도 한 번 뛰어봐. 꼭 스펀지 같아.”

아직 날지 못하는 폴짝이는 땅을 딛고 뛰어오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폴짝폴짝. 폴짝이의 눈에 한 무리의 도요새가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기 새들이 잔뜩 지나가고 있어. 우리 저기 한 번 가보자.”

아리는 폴짝이를 따라 새들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도요새들이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리는 아직도 새들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아리는 새들이 하는 말을 유심히 들어보았습니다. 

“우리 어떻게 하지? 다들 무도회라고 예쁘게 하고 올 텐데.”

“그러게 말이야. 우리 이러다가 구석에서 박수만 치다 오는 건 아닌가 모르겠어.”

아리는 무도회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방에서 색종이와 가위를 꺼냈습니다.

“폴짝아, 내가 좋은 생각이 났어. 우리 저 도요새들을 도와주고 나는 법을 배우자.”

아리는 도요새에게 다가갔습니다. 

“얘들아, 안녕. 내가 도와줄게”

도요새들이 흠칫 놀라 날아가려고 하자 폴짝이가 서둘러 앞에 나섰습니다.

“너희를 잡으려는 게 아니야, 우리는 너희의 친구야.”

도요새들은 서로 수군거렸습니다. 그러고는 가장 앞장섰던 도요새가 말했습니다.

“근데 뭘 도와준다는 거야?”

아리는 색종이와 가위를 들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예쁘게 꾸며줄게.”

도요새들은 서로 귓속말로 속삭이며 힐끔힐끔 아리를 쳐다보았습니다. 서로 눈치를 보며 망설이자 폴짝이가 나섰습니다. 폴짝이는 도요새 한 마리를 앞 쪽으로 끌어왔습니다. 

아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위로 붉은색 색종이를 잘라 도요새의 어깨를 장식해 주었습니다. 아리가 멋지게 솜씨를 부리자 도요새는 근사한 붉은 어깨가 생겼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도요새들도 너도나도 장식을 해달라고 아리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리는 폴짝이가 나는 법을 배우게 하려고 도요새에게 다가갔지만 어느새 도요새를 예쁘게 꾸며주는 일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아리는 처음 느꼈습니다. 가장 잘하는 일을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해준다는 것. 그것이 이처럼 기쁜 일이라는 것을요. 장식을 마친 도요새가 아리와 폴짝이를 보고 말했습니다.

“너희들 우리랑 같이 무도회에 갈래?”

아리와 폴짝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무도회장은 칠면초가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색으로 잎이 변하면서 무도회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무도회장에는 멋진 새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주걱 모양의 부리 끝을 노란색으로 치장한 노랑부리저어새, 뒷머리에 멋진 장식깃을 한 노랑부리백로, 부리가 멋지게 휘어있는 알락꼬리마도요까지. 

아리는 멋진 새들을 보느라 자신이 왜 화성호에 왔는지 조차 까맣게 잊을 지경이었습니다. 멋지게 치장한 새들 중에서도 가장 멋진 새는 단연 붉은 어깨 장식을 한 도요새였습니다. 도요새들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두의 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무도회가 끝나고 도요새들이 아리와 폴짝이를 찾아왔습니다.

“너희 덕분에 우리가 무도회장에서 빛날 수 있었어. 혹시 우리가 너희를 도와줄 게 있을까?”

아리는 그 때서야 자신이 화성호에 온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폴짝이가 도요새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법을 알려줘!”

“나는 법? 그거야 어렵지 않지. 우리가 도와줄게.”     

아리와 폴짝이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도요새가 폴짝이에게 나는 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별로 어렵지 않아. 가볍게 몸을 띄우면서 날갯짓을 부드럽게 해주면 돼.”

폴짝이는 너무나 쉬워 보이는 모습에 자신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잘하는 폴짝 뛰기를 하며 부드럽게 날갯짓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도요새처럼 가볍게 날아오르지 못했습니다. 도요새는 너무나 익숙해서 굳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폴짝이는 뛰어오르는 순간과 날개를 펴는 순간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폴짝이는 날아오르지 못하고 습지로 자꾸만 고꾸라졌습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잘 되지 않자 도요새가 천천히 나는 순서를 알려주었습니다. 

하나, 날개를 접고 뛰어오른다. 둘, 가장 높이 올라갈 때 쯤 날개를 활짝 편다. 셋, 몸이 떨어지기 전에 날갯짓을 해서 도약한다. 넷, 바람을 느끼면서 날갯짓을 이어간다. 

도요새는 가장 중요한 건 힘을 빼는 일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힘을 빼고 몸을 바람에 맡기면 저절로 몸이 떠오를 거야.”

폴짝이는 날아오르겠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몸을 바람에 맡겨 보았습니다. 마음을 비우자 폴짝이는 날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얼마 못가서 또다시 고꾸라졌습니다. 도요새가 말했습니다.

“아직 날개에 힘이 없어서 그래. 우리랑 같이 날면서 날개에 힘을 기르면 잘 날 수 있을 거야.”

폴짝이는 도요새들과 힘껏 날아올랐습니다. 폴짝이가 힘에 부치면 옆에서 도요새들이 의지해 주었습니다. 어느새 폴짝이는 여느 새들과 다름없이 멋지게 비상하고 있었습니다.

폴짝이는 화성방조제를 넘어 너른 바다로 날아가며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폴짝이는 방조제 너머의 낙조를 보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옆에서 함께 비행하던 도요새가 폴짝이에게 말했습니다.

“이 멋진 광경을 내년에나 다시 볼 수 있다니.”

폴짝이는 깜짝 놀라며 물었습니다.     

“내년? 내일 다시 보면 되잖아.”

“아, 아직 너는 잘 모르는가 보구나. 우리 내일 따뜻한 남쪽나라로 갈 거야. 이토록 멋진 화성호는 우리가 먼 길을 여행하는데 잠깐 쉬어가는 소중한 쉼터지.”

“그래서 오늘 다들 바빴던 거야?”

“응.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내일 아침에 다 같이 떠날 거야.”

“나도 같이 가도 될까?”

“당연하지. 너도 이제 우리의 친구인걸.”

폴짝이는 생각에 잠겼습니다. 폴짝이는 한동안 말없이 낙조를 바라보며 해변의 소나무 위를 배회하듯 비행하였습니다.

폴짝이가 열심히 나는 법을 배우는 동안 아리는 화성 습지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발 조심해!”

아리는 깜짝 놀라 발을 빼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다른 쪽에서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이 참, 조심 좀 해!”

아리는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며 습지 바닥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곳에는 여러 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리는 집게발이 아빠가 사용하던 스패너 같이 생긴 게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니?”

“나는 길게야.”

아리는 이번에는 마치 권투장갑을 낀 것 마냥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게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이름이 뭐야?”

“안녕, 나는 방게야. 너는 어제 우리 다칠까봐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던 그 아이구나! 만나서 반가워.”

아리는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 작은 생물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에 머쓱하면서도 뿌듯했습니다. 방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그 옆에서 엄마의 매니큐어를 바른 듯 발에 예쁘게 치장을 한 게에게도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머, 발이 예쁘네. 너는 누구니?”

“나는 세스랑게야. 이 곳 갯벌에 사는 친구들 중에선 내가 제일 멋쟁이라고.”

아리가 갯벌에 사는 생물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아리의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아리는 엄마가 전화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아참, 벌써 학교 끝날 시간이잖아! 빨리 폴짝이랑 집에 가야겠어!’

아리는 새로 사귄 갯벌 친구들과 인사하고 서둘러 폴짝이를 찾아 나섰습니다.

“폴짝아! 폴,짝,아!”

이제는 자유롭게 비행하는 것이 가능해진 폴짝이가 아리가 애타게 찾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폴짝이는 멋지게 활강하며 아리에게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날개를 접고 밑을 바라보면서 슉!     

폴짝이는 아리를 향해 멋지게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착지가 미숙한 폴짝이는 아리 앞에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리는 깜짝 놀라 폴짝이에게 다가갔습니다.

“괜찮아?”

“그럼, 여기는 푹신한 갯벌이 있는걸.”

“휴우, 다행이다. 자 이제 화성방조제 너머의 바다도 봤으니깐 그림 속으로 들어가.”

폴짝이는 아리의 말에 망설였습니다. 폴짝이도 아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림 속으로 들어가면 두 번 다시 푸른 바다 위를 자유롭게 날 수 없었습니다. 폴짝이는 친구들과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난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갈 거야.”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림 속에 들어간다고 약속했잖아.”

“하지만 내 친구들이 다 떠나는 걸? 그림 속은 너무 외로워. 친구들과 함께 있고 싶어. 그리고 넓은 바다 위를 마음껏 날아보고 싶어.”

“그럼 나와의 약속은?”

“넌 언제든지 다시 그릴 수 있잖아.”

“하지만 시간이 없는 걸? 너 때문에 오늘 학교도 빠졌단 말이야.”

폴짝이는 이미 마음을 굳힌 듯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멀리 떠나는 

폴짝이를 보며 아리는 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사생대회에 참가할 그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폴짝이가 너무도 쉽게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모습이 못내 서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는 너무나 속상했습니다. 아리는 친구들도, 부모님도, 그리고 자신이 그린 그림 속 폴짝이 마저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리가 쭈그리고 앉아 울자 옆에서 지켜보던 갈대할머니가 위로를 해 주었습니다. 

“아리야, 무슨 일이니?”

“폴짝이가 나를 버리고 떠난대요.”

“친구들을 따라 떠나는가 보구나. 화성호는 철새들의 소중한 쉼터란다. 많은 철새들이 찾아오

고 떠나가는 곳이지.”

“할머니는 다 떠나가면 아쉽지 않으세요?”

“아쉽지. 한 동안은 많이 그립겠지. 그렇지만 네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를 위해서는 아쉬운 마음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한단다.”

“왜요? 왜 그렇게 힘들어야 해요?”

“오늘 많은 친구들을 만났니?”     

“네.”

“철새 친구들, 작은 게 친구들, 습지에서 자라는 풀들까지.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살아 간다면 지금처럼 조화롭게 살아가지 못할 거야. 화성호가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지.”

“할머니도 그런 친구가 있어요?”

“그럼, 있다마다. 할미가 젊었을 때 할미를 보기위해 멀리서 찾아와주는 친구가 있었지.”

“지금은요?”

“지금은 소식이 끊겼단다.”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할머니 친구인데?”

“보고싶다마다. 그렇지만 분명 이유가 있을 거야. 그 친구도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거든.”

“저는 폴짝이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보다 저를 떠난다는 게 더 슬퍼요. 이제 저에게도 친구가 생긴걸요.”

“할미도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단다. 화가 나기도 했지.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니 알겠더구나.”

“무엇을요?”

“언젠가 우리는 헤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우정의 깊이라는 것이 얼마나 오래 만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야.”     

“그럼 뭐가 중요한데요?”

“만나는 동안 진심을 다하는 것.”

아리는 할머니의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와의 대화가 아리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나의 고민을 들어준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니까요. 

갈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멀리서 아리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내 경찰아저씨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리는 경찰아저씨를 보고 당황했습니다.

‘오늘 학교에 안 가서 경찰아저씨가 날 잡으러 왔나봐!’

아리는 겁이 났습니다. 할머니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서둘러 도망쳤습니다. 아리를 발견한 경찰아저씨들이 아리를 부르며 좇아왔습니다. 아리는 더 필사적으로 도망치지만 경찰아저씨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습니다. 경찰아저씨의 손이 아리에게 닿으려는 순간, 경찰아저씨들의 발이 갯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리의 친구가 된 방게와 길게가 큰 집게발로 함정을 팠던 것입니다. 경찰아저씨들은 발을 빼느라 쉽게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리는 그 사이 더 멀리 도망가고 싶었지만 숨이 턱 밑까지 차서 더 이상 뛸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폴짝이가 도요새 친구들을 데리고 아리에게 날아왔습니다. 도요새 친구들은 날개를 겹쳐 커다란 새를 만들었습니다. 아리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올라탔습니다. 아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습니다. 바람이 아리의 볼을 스쳤습니다. 아리는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함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 멀리보이는 낙조의 모습은 땅에서 바라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아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아리가 자기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호!”

그 때 폴짝이가 옆으로 날아왔습니다. 

“아리야, 미안해. 네가 아니었으면 이 멋진 광경을 보지 못했을 거야. 너와의 약속을 지킬게”

아리는 폴짝이의 말에 환한 미소로 답했습니다. 하지만 아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리는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아리도 처음 느껴보는 하늘을 나는 즐거움, 그 비할 바 없는 기쁨을 폴짝이한테서 빼앗아야할 지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정작 미안해야하는 사람은 아리 자신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도요새 친구들은 아리를 집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폴짝이도 집에 같이 왔습니다. 아리는 부모님께 들킬까봐 집에 살금살금 들어갔습니다. 자신이 학교에 안 간 것 때문에 크게 혼날까봐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리가 문을 여는 순간, 부모님이 아리를 보고 달려왔습니다.

“엄마, 사실은...”

엄마는 아리를 보자마자 달려와 와락 껴안았습니다. 왠지 모르게 엄마의 눈은 부어있었습니다. 엄마는 아리를 껴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엄마는 아리를 혼내기는커녕 오히려 다치지는 않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리는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리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아리의 귓가에는 갈대할머니의 말이 맴돌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한다는 것아리는 엄마에게서 그 진심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만 같았습니다.

아리는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림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폴짝이와 마주하였습니다. 폴짝이가 아리를 보고 말했습니다.

“그림 속에 들어가기 전에 너와 인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아리는 퉁퉁 부은 눈으로 폴짝이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난 이제 사생대회는 중요하지 않아. 엄마아빠가 나를 이렇게 아껴주는걸. 그리고 이제 너는 나의 소중한 친구야. 그러니깐 너를 보내줄게. 이게 내 친구인 너를 위한 내 진심이거든. 대신 이것만 약속해줘. 내년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고마워. 아리야. 약속할게. 이번에는 꼭 지킬게. 내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걸 보고 너에게 얘기해줄게.”

아리는 폴짝이에게 달려갔습니다. 폴짝이는 폴짝 뛰어올라 아리의 품에 꼭 안겼습니다.

다음날 아침, 도요새 친구들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아리는 폴짝이와 함께 도요새를 타고 화성호로 갔습니다. 화성호에는 검은머리갈매기가 선두에서 남쪽 나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희들! 얼른 서둘러! 갈 길이 멀다고!”

도요새와 폴짝이는 아리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내년에 꼭 돌아와야 해!”

“응. 너는 그 동안 우리의 쉼터를 잘 지켜줘”

폴짝이와 도요새는 화성호를 떠났습니다. 아리는 갈대할머니와 손을 흔들며 떠나는 철새들을 배웅하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철새가 돌아오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아리는 외롭지 않았습니다. 아리는 친구들과 함께 화성호에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친구들이 잠시 그림에 한 눈을 파는 사이, 아리는 몸을 숙여 갈대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오늘도 안 오나 봐요.”

“그러게나 말이다. 기후가 달라져서 예년보다 늦어지나 봐.”

아리는 몸을 일으켜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시간이 너무 늦은 것 같아. 내일 다시 와서 그리는 거 어때?”

친구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친구들이 짐을 싸는 사이, 아리는 몸을 숙여 갈대할머니에게 인사했습니다. 

“할머니, 저는 내일 다시 올게요.”

아리는 그림을 정리하고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였습니다. 그 때 멀리서 한 무리의 새가 석양을 배경으로 날아왔습니다. 아리는 고개를 들어 날아오는 철새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리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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