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화창한 가을날이었습니다. 푸른 하늘에는 몇 조각의 구름이 그림처럼 떠 있었습니다. 화성 습지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습지에서 살고 있는 갈대는 바람에 몸이 흔들리며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갈대는 먼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오늘은 안 오나보네.’
갈대는 자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쭈꾸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갈대는 실망한 눈빛이 역력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 그 노래를 누군가가 귀 기울여 들어준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것. 그 어느 것 하나 기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멀리서 파란 바다를 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솨아악. 쭈꾸미였습니다. 갈대는 너무나 기뻤지만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좋아하는 마음이 밖으로 새어나가, 멀리 도망갈까 두려웠거든요. 갈대는 이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쭈꾸미가 갈대에 다다르자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안녕 갈대야. 오늘도 노랫소리가 너무나 아름답구나.”
갈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쭈꾸미가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하지만 무덤한 듯 쭈꾸미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어디를 다녀왔니?”
쭈꾸미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때는 먼 바다를 나가, 거대한 몸집임에도 물 밖으로 멋지게 뛰어오르는 혹등고래를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또 어떤 때는 무시무시한 상어한테 쫓기다가 산호초 사이에 몸을 숨겨 겨우 빠져나온 얘기도 들려주었습니다. 갈대는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과 달리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쭈꾸미가 부러웠지만 쭈꾸미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쭈꾸미가 여행한 모습을 상상하면 마치 꿈을 꾸는 듯 자신도 여행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쭈꾸미가 갈대에게 대답했습니다.
“아 오늘은 별을 직접 만나고 왔지.”
“별을 만나고 왔다고? 하늘에 있는 별을?”
“응.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몰라.”
갈대는 의아했습니다. 하지만 쭈꾸미가 허풍을 떠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갈대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습니다. 이내 쭈꾸미가 말을 이었습니다.
“서해바다로 나갔더니 그날따라 너무나 별이 아름답게 빛나더라고. 나는 하늘의 별이 바닷물 위에서도 반짝이는 것을 보고 별이 바다에 내려온 줄 알았어. 그래서 별을 잡으러 반짝이는 그곳으로 갔지. 그런데 내가 별을 잡으려고 하니 물이 출렁이면서 별이 사라지는 거야.”
갈대는 쭈꾸미의 말에 집중하였습니다. 쭈꾸미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마치 눈앞에 펼쳐놓듯 늘어놓았습니다.
“나는 너무나 이상했어. 그래서 혹시 물속에 들어갔나 싶어서 별이 반짝이는 곳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갔지. 그런데 그 곳에 정말 별이 있는거야!”
갈대는 한 번도 쭈꾸미의 말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사리 믿기 힘들었습니다.
“별이 바다 속에 있다고?”
“응. 근데 그 별은 이름이 있더라고. 자기를 ‘불가사리’라고 소개해 주었어.”
쭈꾸미는 불가사리의 모습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발이 다섯 개이고 몸 색깔이 붉은 듯, 푸른 듯 볼 때마다 색이 달라지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갈대는 만나본 적 없는 불가사리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갈대는 언제까지고 쭈꾸미가 찾아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쭈꾸미는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갈대를 찾아와 갈대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한 보따리 늘어놓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꽃피는 봄을 지나 무더운 여름을 견뎌 풍성한 가을을 맞이할 때 쯤, 화성습지에는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서해바다로 이어지는 바닷길이 거대한 벽으로 막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갈대는 공사를 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사가 끝나면 이 곳에 화성호라는 멋진 호수가 생기게 될 거야.”
갈대는 깜짝 놀랐습니다. 갈대는 쭈꾸미가 바다에서 밖에 살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갈대는 고민하였습니다. 자칫하다가는 쭈꾸미가 화성호에 갇혀서 살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쭈꾸미를 보내면 더 이상 쭈꾸미를 볼수도, 쭈꾸미의 멋진 이야기를 듣지도 못할 것이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갈대
는 너무나 슬펐습니다. 어떤 선택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갈대는 선택해야만 했습니다.
다음날,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한 가을날에 쭈꾸미가 갈대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갈대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갈대의 표정은 평소와 다르게 웃음기가 없는 단호한 표정이었습니다. 쭈꾸미가 갈대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일 있니? 오늘은 왜 노래를 부르지 않니?”
“난 이제 노래 부르고 싶지 않아. 그리고 너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아. 사실 한 번도 진짜라고 믿어본 적 없어. 너는 허풍쟁이야. 거짓말쟁이. 이제 그만 왔으면 좋겠어.”
갈대는 차오르는 눈물을 꾹 참았습니다. 혹여나 눈물을 들킬까 고개를 돌렸습니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본 쭈꾸미는 자신을 보기 싫어서 외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쭈꾸미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지막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갈대는 끝내 고개를 자기에게 돌리지 않았습니다. 쭈꾸미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쭈꾸미는 더 이상 갈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습니다.
“잘 지내. 너의 노래는 너무 아름다웠어. 좋은 노래를 들려줘서 고마워.”
쭈꾸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홀연히 떠났습니다.
몇 번의 가을이 지나고 긴 벽이 완성되었습니다. 갈대는 어느덧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쭈꾸미는 먼 바다를 나가 가정을 꾸리고 살았습니다. 어느덧 손자, 손녀 쭈꾸미가 할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쭈꾸미는 손자, 손녀를 데리고 세상에서 제일 멋진 곳을 보여 주겠다며 화성호로 마실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눈앞에 긴 벽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갈대를 만나러 가던 길이 막혔던 것입니다.
‘갈대가 나를 지키기 위해 그렇게 매몰차게 떠나보낸 것이었어.’
쭈꾸미는 그 때서야 갈대의 마음을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쭈꾸미가 벽에 가까이 가자 구슬픈 노랫소리가 들렸습니다.
“별은 하늘에만 있지 않아. 바닷물 위에도 있고, 바다 속 깊은 곳에도 있지. 그 중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나의 마음속에 있네.”
갈대는 쭈꾸미와의 추억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쭈꾸미는 갈대와의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흐르는 눈물 사이로 이제까지 지어본적 없는 가장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