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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Nov 05. 2019

[이야기 여행] 발걸음 따라 이야기 따라

흥법사-왕모대-궁평항 풍어제

숨이 꽉 막히는 출근길 지하철, 쉴 틈 없이 쏟아지는 업무. 누군가 나의 머릿속을 꽉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때마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고, 나는 꾹꾹 눌러 담았던 마음의 소리를 모조리 쏟아냈다. 

“멀지 않은 곳에 바다가 있어, 바로 화.성.호!”

살짝 들뜬 목소리의 친구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화성호에 가면 재미난 이야기가 밀물처럼 밀려오기를. 사당에서 친구를 만나 곧바로 화성호로 출발했다. 사당에서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달렸을 무렵, 집집마다 가꿔놓은 포도나무들이 보였다. 표지판을 보지 않고도 ‘화성에 거의 다 왔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하늘이 응답한 의지     

우리는 가장 먼저 홍법사에 들렀다. 좁은 수풀길을 지나 다다른 홍법사에는 고요함만이 맴돌았다. 걸음을 옮겨 사찰 입구로 들어서니 왼편에 작은 건물이 보였다. 그 때, ‘홍랑각’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홍랑각의 외벽에는 여러 개의 벽화들이 그러져 있었는데, 그 모습은 꼭 이야기 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꼿꼿한 자세로 앉아있는 벽화 속의 여인, 그 여인이 바로 ‘홍랑’이다.     

조선 병자호란 때, 아름다운 조선의 여인들이 중국 명나라로 끌려가게 된다. 남양 홍씨의 여인 홍랑도 명나라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홍랑은 가진 보물을 버리고 조선의 흙을 한 자루 담아간다. 홍랑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명나라 사람들은 값진 것들을 내어놓았다. 그런데 홍랑은 오직 고국에서 가져온 흙 자루에만 앉기를 고집했다. 명나라 사람들이 회유에도 홍랑의 좀처럼 기개는 꺾이지 않았다. 참다못한 명나라 사람들은 ‘돌배에 무쇠 사공과 함께 태워도 고향으로 가겠느냐’는 억지를 부렸고, 홍랑은 ‘혼이라도 고향에 가겠다’고 당차게 답했다. 예상대로 홍랑을 태운 배는 결국 가라앉고 말았다. 그런데 고국을 향한 깊은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홍랑의 배는 화성시의 서신면에 닿았다. 사람들은 홍랑을 안장한 뒤 부처님으로 모셨고, 홍랑을 기리는 절이 홍법사라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진다.      

홍법사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니 화성호 곳곳에 담긴 이야기들을 더욱 알고 싶어졌다. 산바람을 머금은 풍경소리를 뒤로한 채, 차를 타고 왕모대로 이동했다. ‘왕모대’라는 이름에는 두 가지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왕모(王母), 왕의 어머니가 머물러 왕이 걸음을 했던 곳. 또 하나는 왕무(王舞), 경치가 좋아서 임금이 춤을 추며 놀았던 곳이라는 것이다. 과연 어떤 유래가 맞을까? 차창 너머 풍경들을 바라보는 두 눈 가득 호기심이 서렸다.      

그 시절, 왕모대의 기억    

 

홍법사를 떠나 차를 타고 10분, 바위를 뚫고 자라난 크고 작은 소나무들이 보였다. 시야에 담기지 않을 만큼 커다란 바위에는 파도가 만든 빗금들이 남아있었다. 바위 주변에는 사용하지 않는 조업 도구들이 널려있었는데, 이 역시도 왕모대가 바다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했다. 70년대까지 왕모대는 관광 명소로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간척 이후 자연이 훼손되면서 왕모대의 인기는 쇠락했다. ‘군공항 이전 사업이 진행되면 왕모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추측의 말이 마음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화성의 발전사 속에 왕모대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줄어들었지만, 화성시민들의 애향심은 소나무처럼 변함이 없을 것이다     

왕모대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 여정인 궁평리로 향했다. 궁평리에는 용과 관련된 설화가 있다. 궁평리에 가뭄이 지속되자 사람들은 노승을 찾아갔다. 노승은 용을 없애야 비가 온다고 답하였고,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장군에게 용을 없애달라고 청했다. 이에 장군은 못에서 하늘로 솟아오르는 용에게 독화살을 쏘았다. 지금의 용두리(龍頭里)에 용의 머리가 떨어졌고, 궁평리에 꼬리가 떨어졌다고 한다.    

 

바다에 보내는 만선의 꿈     

홍법사와 왕모대, 그리고 궁평리까지 그 무엇보다 강렬한 힘을 지닌 것은 ‘인간의 의지’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돛을 힘껏 당겨 출항하는 배 또한 인간의 강한 열망이 아닐까. 무사 귀항과 만선의 꿈을 담아 바닷사람들은 제를 올렸는데, 궁평항에서 사라져가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중 하나인 ‘풍어제’를 만날 수 있다. 봉죽(대나무 끝을 깃대로 장식) 세우기로 시작한 궁평항 풍어제는 부정풀이, 장승제 등 다양한 신굿들로 풍성해진다. 풍어제 두 번째날에는 ‘땟배 나가기’를 하는데 짚으로 만든 부산을 띄운 뒤 용왕께 기도를 올린다. 어민들의 마을 신앙에 따라 궁평항 풍어제가 진행되는 가운데, 홍법사와 왕모대에서도 고사 및 제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여정을 통해 선조와 후손이 의지와 기개로 일치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매년 4월 중 주말 이틀 동안 궁평항 풍어제가 열린다고 하니, 봄에는 꼭 풍어제를 즐기러 궁평항에 와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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