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에 들어섰다. 익히 각종 언론을 통해 접했던 마을이었다. 1951년부터 2005년까지 주한미군의 폭격훈련소가 있었던 곳이었고, 때문에 수많은 고통과 사연을 간직한 마을이었다. 언론이 말하는 그 마을은 차마 기사를 끝까지 읽을 수도 없을 만큼 참혹했기에 어쩌면 매향리에 들어섰을 때 사방에서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따사로운 햇살이 차창을 감싸고 열린 창문 틈새로 들어온 솜털 같은 바람이 열 손가락을 간질였을 때 내비게이션을 몇 번이나 흘끗거렸다. 이토록 한가로운 마을이 매향리가 맞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했으니까.
어둠은 마법처럼 사라지고
도착한 곳은 매향리가 맞았다. 매향리 역사관엔 증명이라도 하듯 커다랗고 녹슨 포탄들이 아주 많이 쌓여 있었다. 차곡차곡 쌓여 오가는 사람들에게 고래고래 소리쳐대고 있었다. ‘이것 봐라! 무시무시하지? 내가 바로 매향리를 괴롭혔던 천하의 제일가는 악당이다!’
하지만 실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한 때 매끈하고 윤이 났을 포탄은 이제 녹슬고 낡아 있었다. 매향의 바람과 매향의 햇빛에 바스라지고 무뎌졌다. 햇볕에 마른 쇠냄새는 나른했고 어느새 목청껏 소리치던 포탄의 위협도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렸다. 역사관 곳곳에 전시된 포탄으로 만든 예술품들은 아기자기하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이게 무슨 일일까. 당황한 목소리가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솟았다. 참혹하고 끔찍한 일을 당한 사람들을 떠올릴 때면 으레 그렇듯 분노와 절규를 상상했으나 고요함만이 가득했으니 왠지 모를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대들은 억울하지도 않나요? 왜 더 분노하고 소리치지 않나요?
매향리의 선택
사실 매향리 사람들도 분노를 아는 사람들이다. 역사관에 남은 그들의 기억은 누구보다도 뜨겁고 아프다. 다만 만 그들은 그저 분노를 달리 표현할 줄 알았을 뿐이다. 포탄에 포탄을 던지기보다 비극을 평화로 바꿀 줄 알았을 뿐이다. 2005년, 처절한 주민들의 항쟁 끝에 주한미군이 매향리를 떠나고 마침내 다시 기회가 찾아왔을 때 그들은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보복 대신 평화를 택했다. 매향의 바람을, 나무를, 하늘을, 끝도 없이 펼쳐진 녹색의 평화를 다시 한 번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역사관엔 벽마다 매향리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시들이 걸렸고, 역사관에서 조금 걸으면 닿는 매향교회에도 역사를 기억하는 그림들이 때마다 전해졌다.
그림들은 미군의 반대로 십자가도 걸 수 없었던 교회의 황량한 공간을 안락하게 뒤바꿔 놓았다. 이 모든 공간을 돌아보며 매향리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렸다. 짐작도 못할 만큼 커다란 상처와 그 틈새에서 자라난 푸르른 나무 같은 것.
마지막으로 들른 쿠니사격장도 한가롭고 고요했을 때는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바다 한가운데 농섬을 표적 삼아 주한미군이 포탄 사격 훈련을 했던 곳. 쉼 없이 포탄을 쏘라고 명령을 내렸다던 관제탑으로 가는 길은 이제 무시무시한 포탄 소리 대신 풀벌레소리와 바람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로 가득 채워져 있다. 탑에 올라 바라본 농섬도 언론에서 얘기했던 서글픈 섬처럼 보이지 않았다. 에메랄드 물빛 너머 떠 있는 그 섬은 슬프다고 하기엔 너무 한가롭고 평온해 보였다.
“54년을 돌아 마침내 평화를 되찾은 모습이야.”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나니 어쩐지 뿌듯해졌다. 비극을 평화로 바꾸다니, 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마을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