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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Jan 25. 2019

우리들의 농섬 이야기

미군의 표적이 된 섬 이야기

갯벌을 바라보며 주르륵 늘어선 집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 바다가 그 집들의 일용할 양식이다. 겉에서는 한없이 잔잔하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열심히 움직이는 서해의 바다. 바라보는 이조차 모르게 슬금슬금 움직이며 시커먼 갯벌을 드러내 놓고 저 만치 물러나 있더니, 어느새 슬쩍슬쩍 갯벌을 건드리며 들어와 있다. 


그래서 갯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밀물과 썰물이 자명종이다. 하루에 네 번씩 바닷물이 들어가고 나는 시간에 따라 아침밥상 시간이 달라지고 호미 들고 나가는 시간도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도 달라진다. 날마다 변하는 그 시간을 줄줄 외며 사는 게 어촌마을 사람들이다. 바다가 길을 열어줘야 마을 저편 갯벌까지 나갈 수 있고, 바다가 문을 닫기 전에 들어와야 뻘에서 빠져나올 수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저 멀리까지 뻗어가는 평평한 갯벌을 따라 가면 작은 섬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다. 처음에는 온전한 하나였다가 절반은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린 섬이다. 이웃하던 작은 형제 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쓸쓸한 섬, 어느 날 미 공군의 표적이 되어 버린 서해안 마을 작은 섬의 이야기다. 


1. 나의 살던 농섬은

매향리 마을 역사관에는 바다 위 농섬을 향해 줄지어 걸어가는 사람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마을 사람들이 농섬을 되찾기 위해 갯벌 사이로 드러난 길을 따라 깃발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이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커다란 농섬의 사진을 만난 노인의 눈에는 순간 눈물이 어렸다. 저 길을 따라 찾아 갔던 농섬은 그에게도, 마을 사람들에게도 어린 시절의 짙은 향수다. 


마을 앞 해변에서 1.5 km 떨어진 섬. 스르륵 물이 빠지고 길이 열리면 아이 걸음으로도 30분이면 닿을 곳이다. 그늘 한 점 없는 뻘에서 조개를 캐다가 지치면 마을 사람들은 섬으로 늘어가 꿀 같은 짧은 낮잠을 잤다. 마을로 오며 가며 보내는 시간 조차 아까운 아낙들은 아예 도시락을 싸 들고 들어갔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면 마을로 들어가는 대신 섬에 모여서 밥을 먹고 다시 물이 빠지기를 기다렸다. 섬 주위의 바닷물이 빠져나가며 드러난 튼실한 해산물을 누구보다도 먼저 캘 수 있었다.  


빠지는 물길을 따라 섬에 들어 온 아이들은 동무와 정신 없이 놀다 보면 물때를 놓치기 일쑤였다. 애가 타는 엄마의 속은 알지도 못한 채 핑계 삼아 숲이 우거진 섬 그늘에서 다음 물 때까지 더 놀았다. 물 길어와라 밭일 도와라 엄마의 잔소리가 닿지 않는 농섬은 아이들에게도 평화롭고 훌륭한 아지트였다. 
 

2. 그 섬에 포탄이 떨어졌다

그 섬에 쿵쿵 포탄이 떨어졌다. 한국 전쟁이 끝나갈 무렵 미 공군의 전투기들이 날아오더니 쿵쿵 포탄을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이제 전쟁이 끝나가는 신호인가, 쓰다가 남는 포탄을 버리고 돌아가는 건가, 마을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반가웠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포탄은 계속 섬 위로 떨어졌다. 미 공군의 전투기들이 제대로 포탄을 쏠 수 있도록 미리미리 연습을 하는 거라고 했다. 남과 북이 갈라져 피 터지게 싸우고 나서 원수처럼 등을 들린 시대였다. 전쟁에서 우리를 지켜준 고마운 미군이니, 다시 전쟁이 나면 제대로 싸워서 이겨야 하니, 연습은 필요하겠다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폭격 소리는 50년이 넘도록 이어졌다. 


슬금슬금 마을의 논밭과 앞 바다는 미 공군의 전투기들이 몰려와 정식으로 훈련하는 해상 폭격지가 되었다. 오산 공군 기지에서 날아온 전투기가 목표로 삼는 곳은 마을 앞 바다에 떠 있는 농섬이었다. 원래 농섬은 전씨 집성촌의 사유지였다는 증언도 있으니, 1968년 토지징발로 수용 당하기 전까지는 개인소유지에 폭격 훈련을 했던 셈이다. 농섬 꼭대기에는 정학한 투하지점을 표시하는 표지판도 세워졌다. 그 표지판에 제대로 명중시킨 전투기 조종사는 사격장의 채점관에게 박수를 받으며 흐뭇한 얼굴로 돌아갔다. 미 공군 채점관이 ‘브라보’ 를 외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 때마다 해상사격의 공식 표적물이 된 농섬에는 포탄이 제대로 내리 꽂혔다.  


3.  나무 대신 포탄이 민둥섬의 주인이 되었다 

한때는 나무가 우거져 주민들이 땔감을 구해다 쓰고, 새들이 날아와 알을 낳고 기르던 곳이었다. 조선 시대와 일제 강점기까지는 대그릇 롱(籠)자를 쓰는 ‘롱도’가 정식명칭이었지만, 하도 수풀이 우거져서 짙을 농(濃)자를 쓰는 ‘농도’라는 이야기가 섬 이름 유래의 정설로 바뀔 만큼 푸르른 섬이었다. 하지만 모두 옛 이야기 일 뿐. 농섬이 해상 사격장의 공식 표적이 된 이후, 울창했던 나무는 사라져 황량한 민둥산이 되었고 섬에는 수풀 내신 고철 포탄들이 쌓여 갔다. 숲이 하도 우거져 농섬이라고 불렸다는 호사가들의 주장이 무안할 지경이었다. 


전투기 조종사들의 명중률이 높아질수록 농섬은 점점 작아졌다. 포탄을 맞아 갈라지고 부서진 섬은 원래 크기의 1/3 내지 1/2 정도로 줄어들었다. 섬에 제대로 명중시키지 못한 전투기 조종사의 포탄은 섬 주위 갯벌에 숭숭 박혔다. 


어쩌면 농섬은 반절이라도 남아 다행이었다. 농섬보다 먼저 미군 폭격의 표적이 된 구비섬은 아예 형체가 사라져 버렸다. 매향리 해안에서 고작 750m 떨어진 섬이었다. 거북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구비섬, 귀비섬, 기비섬, 거북섬 등으로 부르던 섬은 이제 섬이었나 싶을 정도의 흔적만 있다. 섬이 있던 자리에 듬성듬성 남겨진 조그만 바위들과 나지막한 바위 줄기는 물이 빠져야 간신히 드러난다. 일제 강점기의 지도에도 농섬보다 살짝 작은 크기로 분명히 그려져 있던 섬 하나가 ‘거기에 섬이 있었다’ 더라는 옛 이야기로만 남았다. 

농섬 뒤편으로 웃섬이라고 불리는 작은 섬 하나가 있다. 물이 빠지는 간조 시에는 농섬과 웃섬 사이에 길이 열려 걸어 갈 수 있다.

4. 우리가 살 농섬은 

영원히 멈출 것 같지 않았던 폭격 소리는 54년 만에야 멈추었다. 2005년 매향리 미군 사격장이 폐쇄되면서 농섬에 포탄을 퍼 붓는 전투기들은 더 이상 날아들지 않았다. 사격장이 운영되던 지난 50여 년 동안 알려지지 않은 수천 톤의 포탄과 그 잔해들은 갯벌과 해변 그리고 들판 곳곳에 고스란히 남았다. 미군들은 포탄 껍데기와 기준치의 34배가 넘는 납 등 중금속으로 오염된 바다와 갯벌만 남겨 놓고 또 다른 폭격연습장을 찾아갔다.


황폐화된 섬의 생태계는 아주 느리지만 서서히 되살아나고 있다. 사라진 나무 대신 섬의 아픔을 덮어주기 위해 폭신폭신하게 빨리 자라는 외래종 풀도 가져다가 심었다. 조금씩 섬이 수풀로 덮여가면서 물새도 다시 찾아 왔다. 괭이괄매기와 검은 머리 물떼세, 흰빰 검둥오리의 둥지와 알이 반갑게도 발견되었다. 뻘에서는 풀게와 굴이 다시 커가고 갯고둥과 애기 배말도 자라고 있다.


오래 전 떨어진 포탄 껍질은 갯벌에 박힌 채 화석처럼 굳어 버렸다. 이제는 빼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바다와 갯벌과 한 몸이 되었다. 그 옆으로 다시 날아든 물새들이 발자국을 남긴다.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을 연습하는 섬이 아니라 생명을 간직한 섬이라고 말하듯 모래에 발 도장을 찍는다. 포탄이 쿡쿡 박히던 50년의 기억을 이제야 조금씩 잊어가는 섬이다.  

화석처럼 굳어 버린 포탄 껍질 주위에 물새의 발자국이 생겨났다.
민둥 섬이었던 농섬을 덮어가는 외래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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