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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Jan 28. 2019

매향리를 떠나 간 꿈

부슬부슬 빗방울이 내려앉는 주말의 늦은 오후였다. 주말이라 장 보러 나온 사람들로 제법 북적거리는 읍내 중심을 한참이나 지나쳐 낡은 건물의 모퉁이를 돌면 구석에 작은 치킨집이 있다. 딸랑 하는 소리와 함께 가게 문을 들어서면 배달손님 말고는 영 찾을 것 같지 않은 조그만 매장. 철 지난 광고포스터가 붙어 있는 유리창 아래 배달원이 앉아서 기다릴 의자만 몇 개 놓여 있다. 아직 주문전화마저 없는 시간이라 썰렁한 치킨집 주방에서 흰 머리가 가득한 할아버지가 나왔다.  


"얼마 전에 여기에도 (전투기가) 몇 대가 떠 있더라고. 무슨 행사 연습을 한다던데. 소리가 쒹쒹 나더라고." 

 인사차 건넨 첫 마디가 얼마 전 에어쇼 연습 때문에 시내 상공에 떠 있었던 전투기 이야기다. 평소 듣지 못했던 소음에 사람들의 문의가 이어졌고, 행여 전쟁이라도 났나 걱정할 까봐 각 학교나 어린이 집에서는 관련 소음이 있을 거라는 안내문까지 돌려졌다고 한다. 하늘에 뜬 전투기 몇 대의 소음만으로도 시내 사람들이 술렁일 만큼 큰 일이 된 평화로운 세상이다. 노인이 잠시 잊고 살았던 기억도 전투기 소음을 듣는 순간 되살아 났나 보다.

 

1. 


“육 이오 때 제가 다섯 살이었어요. 고향인 공주에서도 전쟁 경험은 없었어요. 오히려 (매향리에서) 토끼를 기르면서 처음 경험해 봤어요, 그런 소리를. (…) 내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비행기가 한 바퀴 돌아서 타깃을 때리니까, 소음이 쾅 하는 것도 아니고 쨍 해가면서 막 울려요. 유리창이 막 흔들리고, 벽에 금이 쫙쫙 갔어요. 물에 폭탄을 터트리면 지잉~~ 하는 것처럼”
 
 

그런 소리를 듣고 살 줄 알고 찾아 갔던 매향리는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운 특별한 기술도 없고 물려 받은 자본도 없는 사람들이 먹고 사는 방법을 찾는 건 언제나 만만치가 않았다. 매향리 앞바다의 매립 공사를 하는 건설업체의 구내식당 일을 맡게 된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매향리에는) 82년도에 들어왔어요. 한양건설이 있을 적에 구내식당을 해가지고. 그때 공사한 LNG 가스가 나가는 거야, 서울이고 인천이고(…) 계란 후라이를 부치려면 사오백 개를 부쳐야 하는데, 한 끼에. 그러면 졸려서 계란 부치다가 옷에 불이 붙는 줄도 몰라요. 졸음이 막 쏟아지니까.“ 
 
 공사 현장은 주말도 없이 1년 내내 팽팽 돌아갔고, 건설회사의 식당도 365일 삼시 세끼 밥을 해 대느라 분주했다. 그 밥을 먹은 건설 노동자들은 꾸역꾸역 힘을 내서 작업장으로 나섰고, 식당 주인의 통장에도 차곡차곡 돈이 쌓여갔다. 


“하루 저녁에 2시간 3시간 자면 많이 잤어요. 일하는 작업자들 시간 맞춰서 매 끼니 밥을 해줘야 하니까. 밥 한 상에 900원. 그 900원짜리를 해가지고 거기에서 이익금을 조금씩 남겨서 2천만원을 만들었지.” 


가진 사람들에게는 우스워 보일 금액이지만 무일푼으로 시작한 그에게는 어마어마한 목돈이었다. 이 돈이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는 식당 주방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었다. 뭘 해 보면 좋을까 궁리를 하는 내내 머리는 아파도 통장을 열어보면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어쩌다 흘러 들어 오게 된 매향리였지만, 이제는 이 마을에 정을 붙이고 어엿한 농장이라도 하나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2. 

그의 선택은 당시 한창 붐이 일었던 앙고라 토끼 농장이었다. 소 한 마리면 자식 하나 대학에 보낸다는 시절이었다. 그런 소보다도 훨씬 귀하게 쳐 준다는 앙고라 토끼를 멋지게 길러 볼 생각이었다. 이 토끼들만 잘 먹여주면 보송보송한 털이 무더기로 자라난다고 했다. 그 털만 깎아다가 내다 팔면 자식들이 수십 명이라도 걱정이 없을 터였다. 


“84년도에 앙고라 토끼 한 마리에 오만 오천 원 했을 때, 그때 현찰 1500만원을 주고 토끼를 샀어요. 토끼 장 짓고 그러느라고 2000만원이 다 들어갔어요. 나는 땅도 없는 사람이니까, 고은리(지금의 매향리)에 남의 땅을 임대해가지고 토끼 농장을 만들었죠. 


현실은 꿈처럼, 희망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살 때는 멀쩡하던 앙고라 토끼들이 매향리에만 오면 시름시름 병이 들었다. 맛난 사료를 골라가면 넣어줘도 제대로 먹지를 못 했다. 사료 값은 사료 값대로 들어가는데 돈 쓴 보람도 없이 앙고라 토끼의 털은 자꾸 윤기를 잃어갔다.  


“털이 에이 비 씨 디 급이 있는데 가격 차가 엄청나죠. 1키로에 좋은 건 7만원 8만원까지 나왔어요. 길이가 5센치 이상 되어야 돼요, 그래야 1등급(..) 근데 폭격기소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털이 길지도 않을 뿐 더러 무게도 안 나가는 거야, 털도 부시시하고. 우리도 맛있게 잘 먹어야 머리카락에 기름기가 짜르륵 흐르지(…) 털이 꼬부라지고 꾸불꾸불 하니 펴지지도 않고. 그러니까 그게 서울 공장으로 가지고 가면 털이 안 좋으니까 받아 주지를 않는 거야.” 


3. 

비행기 폭격 소리 아래에서 사람들도 살아가는데 말 못하는 동물이야 뭐 어떨까 생각했다. 작고 조용한 동물이라 괜찮을 줄만 알았다. 소리조차 내지 않고 큰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동물이라 그저 잘 자라줄 줄 알았다. 앙고라 토끼를 흔하게 기르는 세상이 아니라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그저 참 시끄럽다 참 성가시다 생각했던 비행기 소음이 토끼의 생명까지도 좌지우지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토끼가) 임신을 해도 다 지워져 버리는 거야. 폭음 소리에 견딜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라디오 음향시설을 해가지고 틀어줘 봤어요, 소음에 익숙해져 보라고. 근데 비행기가 느닷없이 빵 하고 때리면 이건 어쩔 수가 없는 거야. 2년 동안 그 돈을 다 까먹어 버렸죠, 새끼를 하나도 못 낳아보고(…) 그렇게 고생해서 모은 뼈 아픈 돈을 한 푼도 못 만져보고 다 버린 거에요.”


소복하게 털이 올라오길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끝이 나지 않는 고문과도 같았다. 올망졸망 새끼들을 낳으면 다른 농장에 분양해서 더 큰 목돈을 만질 거라는 희망은 절망이 되었다. 윤기 흐르는 털도 못 키우면서 종일토록 오물거리며 먹어대는 토끼가 원망스러웠다. 어미 뱃속에서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죽어버리는 새끼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털도 못 깎고 새끼도 못 낳아서 수입은 0원, 사료 값이 쌓여가고 땅값도 쌓여 가니 지출만 늘었다.  


“토끼는 하루 종일 먹어요. 내가 사료를 먹여 줘야 하는데, 아무리 먹여도 수확이 없으니까. 2천만원을 다 까먹었는데 그때 돈 2천만원이면, 아무리 안 해도 지금 2억은 할 겁니다(…) 다 까 먹고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으니까. 농사를 지을 데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친하게 한 들 내가 땅을 달라고 하겠어요. 농사 짓는 걸 시켜달라고 하겠어요. 후회 많이 했죠. 그 돈을 가지고 땅을 샀어 봐요. 지금 그 돈이 얼마겠나.” 


 4. 
 

매향리에서 꿈을 키우던 한 사람이 있었다. 이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려던 사람이었다. 식당 불 앞에서 꾸벅꾸벅 졸아가며 뼈 빠지게 모은 목돈을 쥐었을 땐, 이제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줄 알았다. 어쩌면 그의 잘못은 그 시작을 매향리에서 한 것뿐이었다. 54년 동안 끊이지 않았던 폭격기 소음은 한 사람의 꿈도 허무하게 끝내 버렸다. 그렇게 그의 가족은 매향리를 떠났다. 


“그때 논 한 마지기가 만 9천원이었어. 그때 논을 살까 토끼를 살까 막 갈팡질팡 고민을 하던 때였어. 새벽 기도를 하다가 환상을 봤는데 내 앞에 하얀 토끼가 겅중겅중 뛰어 나왔는데 내 무릎에 치어서 죽는 거야. 그때 그걸 이게 뭐지 하고 말아버린 거야. 그때 그런 뜻인 줄 알았으면, 토끼 말고 땅을 샀어야 했는데. 한 순간에 다 날아가 버린 거야. ” 


주방 안쪽 창고에서 나온 할머니가 자책 섞인 목소리로 한 마디 거들었다. 토끼를 산다는 걸 말리지 못한 자신에 대한 후회 반, 결국 그렇게 한 재산 날려먹는 남편에 대한 원망 반. 순간 어색한 침묵이 주방을 한참 동안이나 맴돌았다. 노인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물었다. 한 노년의 꿈도, 원망 섞인 후회도, 그렇게 지고 있다. 오는 듯 마는 듯 한두 방울씩 흩뿌리는 빗방울마저 왠지 서글프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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