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스킹혜성 Apr 08. 2022

선임자의 육아휴직이 나에게 끼친 영향

중소기업 육아휴직 대체자의 기록 

'육아휴직'을 검색해보면 육아휴직 중인 엄마의 글, 육아휴직을 신청한 아빠의 이야기, 육아휴직 후 복직한 소감, 육아휴직을 알차게 보내는 꿀팁 등이 나온다. 


나는 육아휴직자의 빈자리를 대체하여 회사에 남은 사람의 이야기도 한 번 남겨보고 싶었다. 




잔잔한 일상에 폭풍우를 만나다. 

   중소기업의 특성상 한 사람이 매우 여러 가지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선임자가 하던 업무가 상대적으로 복잡해서 회사 내 경력자인 내가 맡게 되었고, 새로운 직원을 뽑아서 내가 하던 일을 인수인계해야 했다. 

  내가 변화하고자 결정한 일은 아무것도 없었는데 내 나름대로 잡혀있던 업무 루틴은 쉽사리 무너졌다. 기존 업무는 그대로 하면서 인수인계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여유롭지 않았다. 결국 선임자는 대부분의 업무 목록을 적어서 파일로 만들어 주었고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는 말을 남기고 휴직을 떠났다. 

  선임자를 탓하기에는 서로 아무것도 몰랐다. 일단 업무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인수인계 파일 내용이 눈에 잘 들어오질 않았다. 그래서 세부 사항까지 확인해 놓지 못한 것이 큰 실수였다. 그 후 매일 새로운 일들과 이슈가 생겨났고, 기존에 하던 일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했으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체자가 모든 일을 똑같이 할 수는 없다.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나의 욕심일 수도 있다.  나 스스로 그 기준을 정해놓고 지금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의심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눈치껏 지난 기록들을 찾아서 맞춰나간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내부에서는 과거 내역에 대해 아느냐 물으면 부담스러웠다. 지금은 내가 맡고 있는 업무이니 모른다고 할 수도 없고, 육아휴직 논의가 있기 전에 종결된 일이라 인수인계받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면 또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휴직 중인 선임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간혹 무례한 언행을 일삼는 거래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닌데 단순히 자신의 스타일과 맞지 않다고 해서, 혹시 몰라 실수할까 봐 한번 더 확인했다고 해서 비아냥 거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멘트는 '너는 왜 이것도 모르냐, 전임자는 다 알아서 했는데,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하냐' 등이다. 내가 올해로 이 회사에서 만 10년 근속인데 회사에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그런 말에 상처받지 않아도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감정은 요동치는 날이 많았다.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간다. 

  놀랍게도(?) 내가 완벽하게 선임자의 일을 대신할 수 없어도 회사는 돌아갔다. 시간이 흐른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발견된다면 그때 정정하면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겁먹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힘줘서 일한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금만 가볍게 생각할 걸. 

 하지만 지난 1년 간의 나는 그럴 수 없었다는 것이 바꿀 수 없는 사실이고, 대체업무를 하는 사람의 스트레스가 이 정도로 크다는 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선임자 없는 고군분투를 하며 벌써 11개월이 흘렀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선임자의 복직일이 다가왔다. 선임자의 육아휴직은 회사에 선례로 남아 나에게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시 업무를 선임자에게 인수인계하고 있는 요즘, 1년 동안의 업무 진행상황에 대해서 디테일한 질문을 받고 있다. 역시 내가 인수인계받을 때와는 사뭇 다르구나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3년 만에 다시, 수영 강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