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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스킹혜성 Aug 04. 2021

엄마가 부주의해서 미안해

소아 화상 사고 퇴원 후 한 달이 지났다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집에서 일도 하고 육아도 하던 어느 날 아침, 아이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뜨거운 물 잔을 쏟아 화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났다.

분명 방금까지 거실에 있던 아이를 확인하고 물을 따르고 잠깐 몸을 돌렸는데 언제 식탁에 다가와서 컵에 손이 닿은 건지... 지금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다.


다급히 119를 불러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응급 처치를 받은 후 화상 전문병원으로 이송을 권유받아서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동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한 명만 있을 수 있어서 그렇게 병원에서 아기와 한 시도 떨어지지 않고 열흘을 보냈다.


아이의 입원 기간은 나에게 역대급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치료 시간마다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를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다리를 꼭 붙들고 같이 울었고, 병원 침대는 자나 깨나 낙상사고의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 18개월의 아기를 혼자 두고 잠깐 화장실에 갈 짬도 없었다.

아기는 다친 곳이 많이 아파서인지 병원 환경이 낯설어서 인지 새벽이 되면 자주 깨서 크게 울었다. 2인실을 써야 했기에 옆 침대에 계신 환자분이 우리 아기 울음소리에 잠 설치는 한숨소리를 들어서 한 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둘째 날 까지는 정말 그 잠깐의 방심이 너무나 후회스럽고, 아이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인지 발달 이런 것을 다 떠나서 그저 아이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지 처절하게 일깨워주는 사건이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아이의 회복이 빨라서 처음 2주로 예상됐던 입원 기간보다 빨리 퇴원하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일단 내 긴장이 풀려서 열이 올랐고, 아이를 온전하게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한동안 삶에 의욕이 없었다.


화상병원 원장님의 기고글에 의하면 아이 화상 후 보호자 중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들보다는 딸의 보호자가 더 많은 자책감을 느낀다고 한다. 사고의 사전적 의미는 '뜻밖에 일어난 불행한 일'이다. 화상도 마찬가지로 우연히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보호자에게 질책을 주는 말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위로를 해줘야 한다고 한다. 우리 남편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며 나를 감싸주어서 나도 힘을 낼 수 있었다.


한 달이 지나자 이제 겨우 일상이 일상다워졌다.

얼마 전 다녀온 외래진료에서 다행히 표면은 깨끗하게 아물었다는 결과를 받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의 몸에 얼룩진 상처를 볼 때마다 사고 당시가 떠오르고, 너무 큰 고통을 느끼게 해서 미안하다. 그렇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현재에 충실할 것이다.


잘 견뎌줘서 고마워. 엄마가 더 사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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