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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스킹혜성 Oct 04. 2023

명절, 할머니  그리고 밥타령

6일간의 추석 연휴가 끝나고 드디어 출근을 했다. 

'드디어'라는 해방감이 느껴지는 단어를 선택한 것은 착각이 아니다. 


이번 명절의 키워드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명절, 할머니 그리고 그놈의 밥타령. 



부산에 사시는 나의 친할머니는 명절 연휴가 되기 시작되기도 전에 아들 - 나에겐 아빠 - 집에 오셔서 거실 TV 앞을 차지하셨다. 정말로 9일 내내 그 자리에서 드라마를 섭렵하시고 잠도 그 자리에서 주무셨다. 연휴를 그렇게 보내고 내려가시는 오늘 아침까지도 나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일명 밥타령을 하셨다. 


어제는 떡을 먹어 배가 고프지 않으니 저녁을 건너뛰겠다 하시더니

오후 6시가 되자, 밥시간이 되면 그래도 밥을 차려야 하는 거라며 며느리 - 나에겐 엄마 - 를 타박하셨다. 


그 연세의 노인들이 대부분 그랬으리라 예상할 수 있듯이 

먹고사는 것이 힘들었고 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든이 넘는 할머니 연세에 큰 지병이 없으신 것도 

여전히 고봉으로 드시는 쌀밥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또 하나, 남편 밥은 꼭 해줘야 한다고 자꾸 말하신다. 

일단 굶긴 적도 없어서 억울하고, 할머니 논리대로라면 나도 바깥일 하는데 자꾸만 나한테 남편이 먹을 밥 차리라고 하는 게 짜증 난다. 

제가 일해서 돈 버니까 할머니 용돈도 드리는 거예요. 

저는 일도 하고 애도 키우는 데 내 밥은 누가 챙겨주냐고요. 

 

게다가 현재 우리 가족은 영양이 넘치다 못해 오히려 다이어트가 시급한 상태이다. 

한 끼정도 밥 안 먹어도 괜찮다는 나의 주장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여든 해 이상을 사신 노인의 논리를 바꾸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다. 


할머니의 밥타령에 반감이 커지다 보니 그냥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인데도 어투가 점점 쎄 진다.

자칫하면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와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생각보다 더 단호하게 거절해야 

그나마 듣는 척이라도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1년에 한 번뿐인 명절이라지만, 

하루 세 번 이상 일주일 넘게 들으니 아주 곤혹스럽다. 


나의 고집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신해주실 것이 아니라면 

그냥 놔두시면 좋겠다. 

한 마디로 건들지 않으면 안 물어요. 


2023년 추석 후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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