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us에서의 첫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호주에서 셰프에게 선물 받았던 Victorianox(초급용 셰프나이프) 하나를 들고 당당하게 찾아간 레스토랑.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상상도 못 한 채 지옥문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었음을.... 한참 후에서나 알 수 있었다.
Trial은 보통 끝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셰프가 부를 때까지 무급으로 일을 하는 실무 면접?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셰프의 마음에 들지 못하면 그냥 하루 고생하고 집으로 가야 하는 시스템.
나는 무려 4시간 동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대추를 같은 크기로 일정하게 썰어내는 작업이었다. 중간중간 허브 다듬기 같은 작업들을 돕기도 했었지만 한자리에서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자니 오금이 저릿저릿해지고 어깨에 담이 올 것만 같았다.
'집에 갈까? 아니야, 30분만 더 버텨볼까? 내가 지금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걸 셰프가 인지는 하고 있나?'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던 순간, 셰프가 조용히 불러 내일부터 일할 수 있냐고 물어왔다.
(일을 시작한 지 무려 10시간이 지난 후였다.)
'와... 별 경력도 없는 내가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일을 할 수 있다니 이게 무슨 꿈만 같은 일인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Oui, chef(네, 솊)"
하지만 첫 출근날, 나는 알게 되었다. 왜 다들 미슐랭 주방에서 버티지 못하고 금방 나가떨어지는지.
첫 출근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 주방은 특이하게 메인 냉장, 냉동고가 있는 지하층에 프렙키친이 있고 한 층위에 메인 주방이 있는데 모든 주방 도구들 및 식자재들이 지하층에 있기 때문에 수없이 뛰어다녀야만 했다. Commercial용(전문가용) 냄비들은 크고 무겁기 때문에 하나에 최소 2kg는 나가곤 했는데, 일이 너무 바쁘기에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줄이려 대부분 한 번에 10-20kg는 짊어지고 뛰어다니게 되었다.
처음으로 맡게 된 섹션은 Garnish였는데, 메인에 함께 곁들여 나가는 사이드 디쉬 파트라고 할 수 있다. 제일 손이 많이 가고, 준비해야 하는 Mis-en-place(밑준비가 다 된 식자재)가 많기 때문에 다들 꺼려하는 파트였다. 아침 7시 출근, 그리고 다음날 새벽 2시까지 이어진 끝없는 주방 업무. 하루에 15-17시간 가까이 단 10분의 휴식도 없이 계속되는 일.
서비스 시간에는 단 10초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았고, 메인 요리와 호흡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늘 날이 서있었다. 보통 셰프의 콜이 떨어지면 메인에서 몇 분 정도 걸릴지 시간을 얘기해 주고, 그 시간에 맞춰 디쉬를 내놓아야 했는데 약 2분 전부터는 30초 단위로 콜링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타이머 세팅을 하지 않아도 몸이 30초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엄격함 속에서도, 나는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었다. 식재료를 다루는 방식부터, 미세한 온도 차이가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플레이팅의 미학까지. 모든 것이 예술적이면서도 과학적이었다.
미슐랭 주방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복'의 가치였다. 같은 일을 수백, 수천 번 반복하면서 몸에 배게 하는 훈련. 내가 담당했던 Garnish섹션에서는 한 시즌이 끝날 때까지 매일 같은 채소들을 준비했다. 샬롯은 fine brunoise(아주 작은 정육면체 모양)으로, 샐러리는 Batonnet(직사각형 형태의 모양)으로... 각각의 용어들은 정해진 크기가 있었고, 이는 수시로 체크해서 조금이라도 다르면 모두 폐기처분.
한 번은 당일 준비해 놓았던 예약 인원수에 워크인 손님들이 많아 준비해 놓은 재료가 다 떨어진 적이 있었는데, 다급하게 준비해서 셰프의 콜링 시간에 맞춰 내놓았다가 불타는 냄비가 나를 강타한 적이 있었다.
셰프는 "동일한 크기는 동일한 조리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은 동일한 식감을 보장한다. 우리는 운에 맡기는 요리를 하는 게 아니야. 완벽함을 추구하는 거지." 라며 쩌렁쩌렁 성을 냈다.
너무 속이 상해 눈물이 핑 돌았지만, 밀린 주문들을 쳐내다 보니 어느새 그 일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어 있었다.
곱씹어 보면 그날의 셰프가 한 말에는 틀린 게 하나 없었다. 급한 마음에 소중한 시간을 내어 찾아준 고객들에게 대충 준비한 식사를 대접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완벽함은 작은 디테일에서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그 완벽함을 위한 끝없는 반복과 노력. 소스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 주, 몇 달을 같은 과정을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이는 그 집요함이 미슐랭의 본질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