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배운 20대의 기억 #3

by Kirin

#눈물과 함께한 날들, 그리고 깨달음

미슐랭 주방에서의 날들은 쉽지 않았다. 하루에 15시간은 기본, 20시간까지도 일을 해야할만큼 그 강도가 어마어마했었기에 체력적으로는 늘 피곤을 달고 살았고, 정신적으로는 항상 긴장 상태였다. (어쩌다 12시간 일을하고 집에 갈때면 반차를 쓴다는 얘기를 하곤 했었다.)

샤워를 하다가 잠들기도 하고, 2시간 후에 다시 출근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날에는 청소를 마친 프렙 키친 주방 바닥에 쓰러져 잠이 들기도 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웠고, 주방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하며 용기를 내야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지금은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고통을 통해 배운 것들, 그 압박 속에서 발견한 나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 그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날 밤, 너무 지쳐 주방 뒤편에서 몰래 울고 있을 때, 평소 무섭기로 소문난 수솊(부주방장)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세프가 너를 푸쉬하는 건 그만큼 너에게 기대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야. 니가 그만큼 더 할 수 있기때문에 몰아부치는거고 넌 지금까지 잘 버텨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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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강도의 프렙이 난무하던 시절

그날 이후로 수솊은 틈이 날때마다 나를 몰래 조금씩 도와주었고, 어떤날은 장갑과 수건을 아침에 몰래 챙겨주기도 했다.

(여기 레스토랑에서는 제한된 수량의 수건과 일회용 장갑을 제공했기 때문에, 아침에 일찍 와서 먼저 선점하지 않으면 서비스할때 화상은 당첨이다. 모든 기물들이 올스텐으로 되어 있기때문에 수건없이는 냄비를 잡을수도 조차없다.)


수솊 덕분에 나는 남자들이 넘쳐나는 주방에서 홀로 살아남은 아시안 여자 셰프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는 섹션을 옮겨 다니며 도와줄 수 있을만큼 내 섹션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고, 몇달 후에는 다른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스카웃 제의도 받을 수 있었다.


고통은 성장의 일부였고,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더 명확해졌다.


#미슐랭의 비밀, 소스의 세계

미슐랭 주방에서 가장 많이 배운 것은 아마도 '소스'일 것이다. 프랜치 다이닝의 핵심은 결국 소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루 종일 소스만 만드는 'Saucier(소시에)'라는 특별한 포지션이 있을 정도로, 소스는 레스토랑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였다.


소스 하나를 완성하는데 몇달이 걸리기도 했다. 기본 스톡을 만들고, 거기에 농축된 또 무언가를 첨가했다가 정제하기도 했다가. 갑자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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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를 만들어가는 과정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Jus'라고 불리는 농축액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Jus는 대부분 고기를 활용해서 만드는데, 좋은 고기의 뼈와 자투리를 오랜 시간 로스팅한 후, 와인으로 디글레이징하고, 각종 향신료와 함께 하루 종일 끓인 후 또다시 농축하고 거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날 몇일에 걸쳐 만들어진 소스는 그 자체로 예술작품과도 같았다. (잘만든 Jus는 그 자체로 빛이 날만큼 광택이 어마어마하다)


"소스는 레스토랑의 영혼이다. 그것은 기술과 맛, 철학이 모두 담긴 액체 상태의 예술이다."



#미슐랭을 넘어, 나만의 이야기로

비단 나의 첫 미슐랭 레스토랑에서의 에피소드만 이야기했지만, 어느 미슐랭 레스토랑을 가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두 요리에 진심이고, 미쳐 있으며 자나깨나 요리밖에 모르는 바보들이 모인 최정예 부대같은 느낌이랄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의 경험은 나에게 심도 깊은 요리의 세계를 펼쳐 줬고, 다양한 기술들을 안겨 줬지만 한편으로는 그곳을 벗어나 내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했다.


미슐랭의 엄격함과 완벽주의는 분명 요리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개개인에게는 창의성과 자유를 제한한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셰프의 상상력을 우리가 실현시키는 역할같은거랄까?) 정해진 레시피와 방식을 벗어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내 방식대로' 요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커져갔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생각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이런 요리를 합리적인 가격에 접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사실 파인다이닝이라는 곳은 일반인이 가기에 꽤나 큰 금액을 지출해야하기에 먹어보고 싶어도 선뜻 다가갈 수가 없다.

나는 온갖 잡도리를 당하며, 어렵게 기술들을 익히고 내 20대의 한 페이지를 몽땅 투자했지만, 특정 소수들만 즐길 수 있는 그 맛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레꽁디멍 와인바'였다.

파인다이닝을 포함해, 까페, 비스트로, 펍, 호텔, 뷔페, 케이터링 등 각 나라를 다니며 다양한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쌓았기 때문에 자신있었다. 그리고 통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 주셨고, 그 분들 덕분에 레꽁디멍 시즌3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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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꽁디멍에서 판매하던 메뉴들(가스파치오, 콜드파스타, 토마토파스타, 비트-리코타 샐러드, 닭간무스 등)

이제 새로운 챕터의 시작.

'소스'를 통해 나의 여정과 경험을 나누려고 한다.



#20대의 무모한 도전, 30대의 성숙한 창조

돌이켜보면, 20대의 나는 무모했다. 정규 요리 교육도 받지 않은 채,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목표로 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하지만 그 무모함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 서른에 그 목표를 이루겠다는 바람을 현실로 이루고야 말았다.)


다양한 나라에서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값진 시간이었다. 특히 각국의 주방에서 배운 것은 단순한 요리 기술을 넘어, 인내와 열정,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용기였다.


그리고 이제 30대의 나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성숙하고 균형 잡힌 시각으로 레꽁디멍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가고 있다. 파인다이닝의 정교함을 추구하되 그것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전통을 종중하되, 그것을 재해석하는 창의성을.


"요리는 결국 자기 표현이다. 내가 형험한 모든 것,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는 캔버스와 같은 것."


찬란했던 나의 20대.

때로는 눈물나도록 힘겨웠지만, 그만큼 값진 성장의 순간들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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