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제피 이야기

초여름에만 먹을 수 있는 생제피로 만든 피클

by Kirin

작년 이맘때즈음 생제피를 구해온 적이 있었다.

정말 우연한 계기였는데, 당시 '오페퍼'라는 후추 브랜드를 운영하고 계시는 대표님께서 우리나라 여러 산지에서 구한 생제피를 가지고 계시다는 스토리를 보고 얼른 연락드려 받아오게 되었다.


정확히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 당시 다른 2곳에서 채취한 생제피를 구해다 주셨는데 재밌게도 그 맛과 향이 미묘하게 달랐다. 하나는 톡 쏘는 맛이 더 강렬했고, 또 다른 하나는 시트러스향이 강렬해 어린 시절 모과를 차에 두던 것처럼 차에 놔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은은한 상큼미가 느껴졌다.


사실 제피라는 식자재는 생소하기도 하고, 마니아층이 두텁기 때문에 선뜻 권하기가 어렵다. 추어탕 같은 잡내 나는 탕에 넣는 재료로 알려져 있어 거부감이 꽤나 심한 편이고 호불호도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한번 맛을 본 이들은 대부분 다시 찾게 되는 게 또 이 친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가루나 말린 열매가 아닌, 제철에 난 제피를 말려서 만든 가루의 향을 맡아보면 그 향을 대체할만한 무언가를 찾기가 어려워 이 시기가 얼른 돌아오길 손꼽다 기다리곤 한다. 기름집에서 갓 짜온 참기름과 마트에서 사다 먹는 참기름의 맛이 다르듯이, 이 또한 그 향긋함이... 차원이 다르다!


늘 가루나 말린 열매로만 접하다가 생제피를 처음 맛본 순간, 아 이거 오랫동안 먹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들어낸 2가지 방법. 소금절임 달콤한 피클.


구한 양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단골분이셨던 분들과 인스타 팔로워 분들께 공유하여 소량만 판매를 했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내 몫을 남기지 못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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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절임과 제피, 제피피클


그 매력에 빠져 조금 더 만들어보고 싶었지만, 제피는 초여름에 잠깐 나오고 채취가 어려워 피클물이 들어 맛이 올라왔을 때에는 이미 시기가 지나 내년을 기약해야 했다.



그리고 2025년 5월.

드디어 생제피의 계절이 돌아왔다. 약 세 군데서 받아와 테스트를 해보았는데, 올해는 작년처럼 시트러스향이 강렬한 제피는 찾지 못했고, 대신 알싸한 맛과 함께 얼얼한 마비증상 같은 맵싹 한 매력을 풍기는 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어떤 식자재든 그렇지만, 같은 종류라고 해도 어디에서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는데 알고 있어도 매번 직접 경험할 때마다 얼마나 신기하고 재밌는지 모른다.


KakaoTalk_Photo_2025-06-08-22-05-29.jpeg 2025년 5월 채취한 생제피


생제피의 매력은 얼얼하게 매운 것도 있지만, 은은하게 느껴지는 시트러스의 향도 한몫하는데 올해 테스트해 본 친구들은 생각보다 그 향이 덜했다. (생긴 건 미니 라임 같은데.. )

알싸하지만 달짝지근하면서 마무리는 시트러스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은 피클물로 해결하는 수밖에.


다양한 종류의 식초들과, 설탕, 페퍼 등의 비율과 농도를 체크해 가면서 마지막 필살기. 내가 사랑하는 레몬과 함께 숙성을 시켜줬다. 원물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향도 중요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소스의 역할도 큰 몫을 차지하기에 이번 시리즈에서는 피클물이 소스로서의 본분을 다했다.


KakaoTalk_Photo_2025-06-08-22-08-51.jpeg 맛있게 익어가고 있는 제피 피클


손이 꽤나 가는 작업이기에 올해는 하지 말까.. 생각을 하다가 내가 먹고 싶어 시작했지만, 올해는 제피 안 하시냐고 물어보는 단골들의 성화에 양을 늘리다 보니 약 30인분 정도가 만들어졌다.


제피 피클은 매일 상태를 확인하고, 먹어보면서 적당한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이번 제피는 약 2주 정도의 숙성기간을 거쳤다. 어느 정도 알싸한 향도 잡혔고, 피클물에서도 제피의 맛이 우러나오기 시작한 지금이 적기이다.


피클은 숙성이 되면 될수록 또 다른 매력을 발하기 때문에 식자재 본연의 맛을 즐기기 원한다면 숙성이 완료된 지금이 좋고, 다른 재료들과의 융합이 어우러진 농축된 맛을 원한다면 조금 더 익혀서 먹을 수도 있다. 한주, 한주 조금씩 먹어보면서 변하는 그 맛을 즐겨보는 것도 피클의 매력 중 하나.


제피 피클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데,

밥반찬으로도 손색이 없고, 초밥에도, 돈가스에도, 파스타에도, 짜장면에도 그 어디에 붙여놔도 그 매력을 발하기에 넉넉히 준비했다가 다양한 음식들과의 콜라보를 즐겨보라고 권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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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제피 피클 활용


처음 접할 때는 꽤나 알싸하기에 한 알이나 두 알 정도 똑 떼어먹어보라고 권하는데, 간혹 줄기채로 먹고서는 한동안 말을 잃어버렸다는 고객분의 후기를 듣고 도전했다가 약 30분 동안 묵언수행을 한 경험이 있다. 역시 함부로 나대면 안 된다는 뼈저린 생활밀착형 교훈을 얻게 되었다. (경험담을 잘 새겨듣자.)


철마다 새로운 식자재들을 소개하고, 다양한 종류들을 만들어내고 싶지만 계속 구매할 수 있는 제품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객분들의 말을 듣고 스테디 한 상품을 고민해 보는 중이다. 레꽁디멍하면 떠올릴 수 있는 소스가 뭐가 있을까... 조금씩 천천히 테스트를 거쳐봐야겠다.








* 2025년 생제피 구경 가기 *

https://mkt.shopping.naver.com/link/683cf9ebe625370ec15aeca5



워낙 소량만 만들어서 이걸 판매링크를 따로 만들어야 할까 고민을 했었는데, 그래도 1년 동안 만들었던 소스들을 기억하는데 이만한 기록도 없겠다 싶어 제작해 본 제피열매 피클.


(사실 Sichuan pepper는 제피가 아닌 산초를 의미하는 말이지만, 제피로 쓰이는 영어는 학명밖에 없어 알려진 표현으로 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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