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제철 식자재 이야기

by Kirin


요리사로 일을 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는 '지금 제철인 게 뭐예요?'이다.

아무래도 인공적으로 설계된 기후와 토양에 맞춰 자란 것보다는 자연의 흐름에 맞게 생존(?)한 식자재들이 그 빛을 더 발하는 편이다. 기술이 좋아져 사시사철 내가 원하는 작물을 모두 만나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자연에서 자란 것보다는 그 맛과 향이 덜하다는 것은 먹어본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


레스토랑에서는 그 흐름에 맞춰 그때 가장 맛이 오른 식자재들을 공수해서 시즌별 메뉴를 만들곤 하는데, 이게 참 생각보다 쉽지 않다. 아무래도 새로운 메뉴를 올릴 때에는 그만큼의 공수가 추가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기존의 메뉴 중에서 한두 가지를 빼고 신메뉴를 넣기 마련이다. 고객의 입장에서는 매일 같은 식당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올 때마다 메뉴가 바뀐다는 불평불만을 하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기 때문에 찾아온다는 사람들과 계절마다 메뉴가 바뀌어서 불만이라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데, 그 중간 줄타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명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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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명이), 6월(제피)


처음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때에는 모든 고객들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알 수 없는 사명감(?)으로 인해 다양한 의견이 나올 때마다 이를 들어주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시간이 흐르다 보니 레스토랑의 색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메뉴판은 무조건 한 장으로 맞추는 방식을 택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할까. 처음엔 이로 인한 다양한 컴플레인들로 상처를 받곤 했지만, 결국 나의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들만 남아 레스토랑 운영이 더 효율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지금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진 않지만,

제철에 무르익은 식자재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소스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지금 최대한 가짓수를 줄이는 게 좋다는 걸 알면서도 다양한 제철 식자재들을 색다른 모습으로 선사하고 싶은 셰프의 마음이 그런 게 아닐까?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이런 마음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아, 쿠킹클래스를 진행해 보려고 준비 중이긴 하지만 온라인 판매를 위해 발주한 물품들이 스튜디오 빈 공간들을 모두 차지하고 있어 어찌해야 할지 몰라 아직까지는 방치 중이다. 언젠가는 마음먹고 치우는 날이 오겠지..?

KakaoTalk_20250625_131943088.jpg 사무실이 되어가고 있는 스튜디오


무튼, 제철에 나오는 식자재들을 그 모습 그대로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시장이다. 외국에는 농장에서 직접 농부들이 나와 판매를 하는 장이 일주일에 한두 번은 동네마다 꼭 하나씩은 있기에 전날 혹은 새벽녘에 딴 신선한 재료들이 가득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마르쉐가 많지 않아 구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래도 계절이 바뀌는 간절기에 시장에 가면 느껴지는 공기만 맡아도 또 한 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새로운 절기를 맞이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연의 힘이 그만큼 대단하다.


선선하던 봄바람이 어느새 무더운 끈적한 여름의 향기를 몰고 오는 요즈음에는 각종 과일과 채소들이 그 맛과 향을 농축해서 발산하는 시기라 그 어떤 식자재를 맛보아도 그 색이 선명하다. 마음 같아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1년 치 사서 쟁여놓고 싶지만, 그 시기에만 나는 것들을 적당히 즐겨야 내년에 돌아올 지금의 계절을 기다리게 된다는 걸 알기에 마음을 동여매는 중이다.



다가올 한국의 여름이 두렵지만, 반갑기도 한 초여름의 어느 날.

이번 여름엔 어떤 식자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볼까... 고민하는 요즘, 7월은 어떤 향기가 날 설레게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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