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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상수첩 Jan 18. 2016

박지성도 한때는 '유령'이었다

스포츠 파벌 속, 선수들의 진짜 이야기

박지성, 양준혁, 김주성, 지소연, 문성민, 윤경신, 차유람, 이형택

2010년 방송된 <SBS스페셜> '우리는 왜 공에 열광하는가' 편에서 만난 스포츠 스타들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공에 열광하는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한 다큐멘터리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나에겐 최고의 아이템이었고, 촬영하는 매일이 즐거웠다. 스페인 프로축구팀 FC바르셀로나의 메시 플레이를 직접 취재하고, 포스트시즌 중인 야구선수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났다.  

'당신에게 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조금은 황당한 나의 질문에 그들은 멋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특히 명지대학교 세미나 현장에서 만난 박지성 선수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눴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파벌을 정면 돌파한 박지성... '축구공의 의미'

박지성도 한때는 '유령'이었다


수많은 취재진과 학생들이 몰려와 빈자리 없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유소년 축구의 발전 방향과 축구 시스템에 대한 세미나 발표가 끝나고 질문시간이 짧게 주어졌다. 그런데 학교 측은 미리 질문할 사람과 내용을 정해놓고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세미나를 마치려던 사회자는 결국 끈질기게 손을 든 나에게 질문할 기회를 준다.

"질문이 300, 400가지가 있습니다. 박지성 선수에게 축구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강의실의 학생들과 취재진은 웃음을 터트렸으나 정작 박지성 선수는 심각한 표정이다. 그리고 이내 멋진 대답이 돌아온다. 

"어렸을 때는 놀이기구이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공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공에 의미가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너무 신비한 마술같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웃고 울게 하는, 큰 영향력을 지닌 무서운 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박지성을 '산소탱크' 혹은 '두개의 심장'이라고 부르지만, 영국에서 그의 별명은 '유령'이었다. 지독하게 훈련한다고 동료 에브라가 붙여준 별명이다. 박지성은 15년 전에도 유령이었다. 대신 지금처럼 보이는 유령은 아니었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죽도록 뛰어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투명인간 같은 유령이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축구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박지성의 무대는 어디에도 없었다. 대학에서도, 프로팀에서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국가 대표가 돼서도, 2002년 월드컵이 있기까지 매일 대표팀 탈락에 마음을 졸이며 불안해 했다. 그를 불안하게 한 것은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바로 파벌이라는 그림자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 번째 질문은 개인적인 궁금증이었다. 축구 영웅이 닮고 싶은 영웅은 누구였는지.

"브라질 대표팀의 둥가 선수를 좋아했습니다. 그가 경기장에 있을 때면 동료와 코치진들이 강한 믿음을 보였기 때문에, 저도 팀 내에서 신뢰를 주는 선수가 되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전국대회 4강까지 올라야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박지성의 수원공고는 금강대기 8강전 진출이 최고 성적이었다. 박지성이 고3이던 1998년 10월, 그는 기어이 학교를 전국체전 우승으로 이끈다. 수원공고가 창단한 후 17년 만에 거둔 첫 우승이었다. 

롤 모델인 김대의를 따라 고려대에 진학하고 싶었던 박지성. 하지만 고려대는 그를 눈여겨보지 않는다. 전국 대회 우승팀의 주축이었던 자신에게 대학과 프로팀은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등장한 구세주가 명지대 김희태 감독이다. 축구부 대신 테니스부에 남아있는 자리로 입학했지만, 그는 대학 신입생 때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당시 올림픽 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이 김희태 감독에게 바둑을 져서 엔트리에 합류시켰다는 루머를 비웃기라도 하듯 박지성은 그라운드에서 모든 것을 증명했다. 그는 파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실력으로 깨끗하게 걷어냈다. 

2014년 스포츠계 핵심 키워드, '의리'와 '빅토르 안'

2014년 스포츠계를 뜨겁게 달군 키워드는 '의리'와 '빅토르 안'이다. '고려대 라인'이 축구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설은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증폭됐다. 당시 홍명보 감독의 선수 선발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에도 축구협회와 언론은 그를 감싸기에 바빴다. 히딩크 감독이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선수 선발 권한은 축구협회에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연세대 출신의 조광래 감독과 고졸 최강희 감독의 경질은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빅토르 안. 러시아로 귀화한 쇼트트랙 선수 안현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쇼트트랙의 파벌 문제는 '한체대(한국체육대학교)'와 '비한체대' 라인에서 시작한다. 한체대 출신의 안현수는 비한체대 출신의 송재근 코치를 피해 여자대표팀과 훈련을 했고, 단국대 출신의 진선유는 한체대 출신의 박세우 코치를 피해 남자대표팀에서 훈련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빙상 연맹은 폭력 문제가 있는 코치를 선임하고, 선수들의 대회 상금을 불투명하게 처리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가드는 누구일까. 이상민? 강동희? 오랜 농구 팬들은 유재학을 꼽는다. 28세에 무릎 부상으로 농구 코트를 떠난 비운의 천재. 1986년 창단한 기아 농구팀은 연세대 출신의 방열 감독과 유재학, 정덕화 그리고 중앙대 출신의 한기범, 김유택, 강정수를 주축으로 구성된다. 1989년 농구대잔치 우승을 차지하고 MVP에 유재학이 선정되자, 다음해 선수들은 태업과 항명을 이어가며 8연패를 만들어 버린다. 방열 감독을 밀어낸 뒤, 후임으로 중앙대 출신의 최인선 감독이 임명되고 유재학도 부상을 이유로 코트를 떠난다.

그렇게 중앙대-기아 왕조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파벌에 상관없이 오직 실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선수가 있다. 소속팀과 대표팀에서 꾸준하게 활약하는 농구선수 김주성이다. 멋진 블로킹과 정확한 미들슛이 트레이드마크인 그에게 공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다.

"공은 코트 위의 선수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 같아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거든요. 믿는 것은 오직 공과 우리 동료들밖에 없어요. 같이 힘을 모아서 득점을 하는 거죠."

'파벌'이라는 이야기가 무색할 정도로 멋진 대답이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그에게 자신감을 주었다는 공은 이제 동료들을 하나로 만드는 연결고리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한복을 입고 금메달 시상대에 오른 유도 영웅 김재엽을 기억하는가. 나와 같은 축구단 소속으로 토요일 아침마다 축구 경기를 함께 하고는 했다. 그래서 아직까지 나는 그를 단장님이라고 부른다. 이목구비가 뚜렷해 강인한 인상이지만, 항상 웃는 얼굴과 몸에 배어있는 친절함은 주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한다. 

최근 몇 시간 동안 함께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눌 자리가 있었다.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과 깍듯한 매너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도 항상 그 이야기를 할 때면 인상이 찌푸려지고, 목소리가 다소 높아진다. 바로 유도계의 파벌 문제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스포츠 파벌 이야기를 피 튀기게 하잖나. 알다시피 대한민국 유도는 용인대가 쥐고 흔들고 있어. 파벌에 무릎 꿇었으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은 없고, 그냥 유도선수였던 김재엽만 있었겠지."

대한유도협회장을 거쳐 현재 대한체육회장을 맡고 있는 김정행의 용인대는 스포츠 파벌의 끝을 보여준다. 국제대회 47연승의 윤동식과 재일교포 출신 추성훈은 파벌의 대표적인 피해자들이다.


그나마 유도계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파벌에 적극적으로 항의했던 사람이 바로 계명대 출신의 김재엽이다. 유도협회는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마사회 감독이었던 그를 퇴출시키고, 메달 연금마저 박탈하는 촌극을 벌였다. 참으로 지독하다.

공정함을 막는 스포츠계의 파벌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


엘리트 체육을 표방해서 성장한 대한민국 체육계는 메달을 딴 국가대표에게 병역 면제와 포상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한다. 그리고 협회가 주최하는 전국대회에서 상위권에 입상한 선수들에게는 대학 입학 등 엄청난 특혜를 주고 있다. 스포츠 파벌은 유도뿐만 아니라 태권도, 씨름, 배드민턴, 탁구 등 대한민국 체육계 전반에 자리 잡은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다.

최근 기업들은 브랜드 홍보와 이미지 세탁을 위해 스포츠에 거대한 자본을 투자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체육회 산하 60여 개 협회, 절반 이상의 회장직을 기업인들이 맡고 있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그렇게 자본과 프런트 라인에 따라 생사가 결정되기 시작했다. 프런트는 현장에 라인을 만들고자 하고, 경기장의 몇몇 선수, 코치들은 그 라인을 잡고 싶어 한다.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의 고질적인 프런트 문제는 선수들과 마찰을 빚었고, 오랜 팬들조차 야구장에 발길을 끊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은 SK 와이번스 시절 3번의 한국시리즈 우승과 1번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SK는 곧 KS (코리안 시리즈)를 의미했다. 그라운드만큼 그에게 잘 어울리는 곳은 없다. 그것은 야구팬과 선수들 심지어 구단 프런트까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프로야구 감독으로의 복귀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김성근은 팬들과 선수들이 원하는 감독이지만 구단 관계자와 프런트가 환영하는 감독은 아니기 때문이다.

<SBS스페셜> '우리는 왜 공에 열광하는가' 인터뷰 전에 은퇴식(2010년 9월 19일)을 치른 양준혁을 만나러 오랜만에 찾은 잠실야구장. 그라운드로 내려가니 선수들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는 귀퉁이에서 공을 던져주는 그를 만날 수 있었다. TV 속에서나 경기장 너머로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덩치 때문인지, 그의 이름값 때문인지 유난히 거대해 보였다.

양준혁은 쓴 소리를 많이 한다. 현역시절, 나이 많은 선수들은 후배들의 앞길을 막지 않기 위해 물러나야 한다는 인식과 부진을 부상 탓으로 돌리는 관행에 "프로답지 못하다"고 했다. 김성근 감독의 고양 원더스가 KBO의 지원 문제로 해체하자 "야구판 참 잘 돌아간다. 야구를 위해 일하는 진짜 일꾼들은 소외되는 야구판 현실이 부끄럽다"며 일침을 가했다. 

대한민국 야구의 역사를 바꾸며 '양신'이라고 불린 양준혁에게 공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앞선 질문들에 막힘이 없었던 그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양준혁의 대답.

"공이 공이죠. 뭐." 

우문현답이다. 공은 공이고 스포츠는 스포츠다. 파벌로 얼룩진 스포츠계에 지금 필요한 것은 스포츠를 스포츠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이다. 스포츠의 가치는 협회와 프런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선수들의 노력과 팬들의 응원보다 중요한 협회는 존재할 수 없다. 결국 당연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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