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강수량: 축적된 시간의 풍경

어제의 한 줄, 한 장

by Hsun


누적강수량은

일정한 기간 동안 땅에 떨어진 물의 총량을 말한다.
비뿐 아니라 눈, 우박, 안개까지 모두 합산한다.
어제 5mm, 오늘 10mm, 내일 또 15mm.
하루치 강수량만으로는 풍경이 달라지지 않지만,
여러 날의 기록이 쌓이면 큰 물줄기가 되고, 더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된다.

기상학은 이 과정을 수치로 남기지만,
우리는 그 흔적을 일상의 풍경으로 기억한다.
창문에 맺힌 작은 빗방울,
아침 들판을 덮은 서리,
순간 스쳐간 안개.
한 방울은 미미하지만,
모여서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다.

나는 그 개념이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커다란 결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쌓이고 누적되며 내 안에 고인다.
어떤 믿음은 비처럼 선명했고,
어떤 믿음은 눈처럼 천천히 녹아내렸다.
갑작스러운 우박처럼 충격으로 남은 순간도 있었고,
안개처럼 흩어질 것 같던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국은 모두 내 안에 누적되었다.
흩어져 사라진 듯 보여도 남는 것이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책을 쓰면서 배웠다.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 같은 사람도 가능할까?

의심이 더 컸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채워본 적도 없었고,
하루의 무게에 지쳐 스스로를 믿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그런데 한 문장, 한 단락이 쌓였다.
어제 1쪽, 오늘 2쪽, 내일은 3쪽.
숫자로는 미미했지만,
모이고 모여 결국 공동저서 한 권이 되었다.

그 순간 알았다.
완벽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작은 축적이 결과를 이끄는 힘이 된다는 것을.

그 경험은 또 다른 시도로 이어졌다.
혼자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도 예전만큼 두렵지 않았다.
앞선 기록이 작은 빗방울처럼 내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 모아둔 원고가 책이 되었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쌓아온 기록은 어느새 내 삶의 풍경을 바꿔 놓았다는 것을.

삶은 누적강수량과 닮았다.
오늘의 피로와 내일의 노력이 더해지고,
작은 성취와 또 다른 시도가 겹쳐진다.
때로는 무겁게 느껴지지만,
돌아보면 그 축적이 나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한다.
그동안 쌓아온 무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 무게는 다음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어쩌면 인생의 성취란 커다란 결단보다 작은 시도의 합에 더 가까운 것은 아닐까?
게임도 1탄을 깨야 2탄에 도전할 수 있고,
더 무거운 것을 들기 위해서는 먼저 작은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작지만 매일 쌓이는 그 누적이 결국 나를 지탱한다.


오늘의 작은 확신은 내일의 기록이 되고,
그 기록은 언젠가 나를 더 멀리 데려다줄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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