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는 사직서도 웹으로 품는다
뜨거운 해수면 위에 수증기가 모이고, 공기는 상승하고, 구름이 두터워진다. 그 모든 과정이 이어지면 거대한 저기압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그것을 '태풍'이라 부른다.
하지만 태풍의 중심부, 태풍의 눈은 오히려 조용하다. 고요한 중심이 만들어낸 가장 큰 움직임, 그것이 태풍이다.
나도 요즘 그렇다.
마음속에 저기압이 형성되고 있다.
사직서가 임시저장함에서 사라지지 않고 갱신되곤 한다.
예전의 직장인들은 사직서를 가슴속에 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애사심과 자부심이 함께 있었다. 회사에 실망해도, 감정이 상해도 끝까지 책임지는 것을 의리라 믿었다.
퇴직서를 꺼내는 일은 몇 날 며칠을 고민하고, 마음을 다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마치 사랑했던 사람에게 이별편지를 쓰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사직서를 품고 있으면서도 묵묵히 일하는 사람의 책임감, 애사심, 자부심은 흔히 외면받는 감정이지만, 그 고요한 중심이야말로 진짜 태풍의 눈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감정을 오래 품는 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지금의 MZ가 애사심이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한때 충성이나 의리로 불렸던 감정들은 리스크로 간주된다.
몸 바쳐 일해도 돌아오는 보장은 없고, 애쓴다고 안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감정 없이 일하고, 감정 없이 퇴사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제 사직서도 웹으로 품는다.
퇴직신청서는 데스크톱이나 가슴속이 아닌 클라우드에 있다. ‘결재’ 버튼은 아직 누르지 않았지만, 임시저장된 파일은 수시로 열리고, 갱신되어 남아있다.
책임감 없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을 덜 쓰고도 나를 지키는 요즘의 방식이 아닐까?
의리라는 감정으로 회사를 버티기 어려운 시대,
사직서는 더 이상 망설임의 끝이 아니라 이별 예고가 되었다.
퇴사를 결심하는 사람은 무책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과정을 통과해 온 사람들이다.
폭풍의 진앙에 있는 이 작은 평온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위험한 순간과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