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보이지 않는 날을 지나

선택이 만든 오늘의 풍경

by Hsun


안개는

극히 작은 물방울이 공중에 떠 있어,

시야를 1km도 채 남기지 않는다.

관측자는 낮게 깔린 안개까지 기록한다.

비가 오던 날도 비가 그친 뒤 잠깐 스친 흐릿함도 안개일수로 남는다.

그 세심함이 다음 예보가 된다.


안개가 자욱해지면

눈앞의 풍경은 흐려지고,

멀리 있던 것들은 더 멀게 느껴진다.

소리와 빛이 조금씩 눅눅하게 잠기고,

세상은 잠시 숨을 고르는 듯 고요해진다.



요즘 내 하루도 조금 흐릿하다.

길의 끝이 정해져 있다고 해서

가는 길까지 선명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흐릿해지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많다.

그럼에도 해야 할 일은 여전히 정해져 있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비슷한 순서로 하루를 보낸다.


흐릿한 하루 속에서도,

나는 글을 쓰고 문장을 다듬는다.

앞길이 선명하지 않아도

쓰는 손을 멈추지 않는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선택한 길을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그 기분을 몸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과보다 행동을 고르기로 했다.



예보는 비였지만

공휴일 아침 눈을 뜨니 하늘이 맑았다.

개운한 마음으로 세차를 마쳤다.

차 위에 맺힌 물방울이 햇빛에 반짝였고,

그 반짝임은 마음에 닿았다.

연휴의 첫 시간을 의지로 열자

나머지 시간에도 기대가 생겼다.

사소한 성취감에 마음도 맑아졌다.


그 맑음이 하늘에도 오래 머물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하늘이 어두워졌다.

예보보다 늦게 온 비의 타이밍이 절묘했다.

그래도 오늘은 내가 고른 맑음이었다.



하루의 날씨처럼

마음도 짧은 시간에 표정을 바꾼다.


휴일의 하늘은 변덕스럽다.

흐렸다가 맑고 다시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자욱하게 깔리기도 한다.

안개가 끼면 멀리보다 가까운 것을 보게 된다.

큰 계획은 흐릿해도 작은 선택은 선명하다.

커피를 마시고 덮어 두었던 책을 펼친다.

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그 반복이

내 앞의 길을 조금씩 밝힌다.



문득 생각한다.

이렇게 사소한 의지를 실천할 수 있는 건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앞이 보이지 않던 시대에도 자신이 정한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들이 있었다.

그 길이 이어져 오늘의 내가 있다.

따사로운 빛이 스며들면, 안개는 천천히 걷힌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길 위에서

당신은 어떤 빛을 발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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