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 정도는 하는 거라고
습도는 공기 중에 포함된 수증기의 양을 말한다.
그중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는 상대습도는 지금의 공기가 머금고 있는 수증기의 양이 그 기온에서 머금을 수 있는 최대치(포화 수증기량)에 비해 얼마나 차 있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값이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공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르면,
공기는 더는 수증기를 품지 못하고 밖으로 흘려보낸다.
그 수증기는 응결되어 물방울이 되거나, 결로가 되거나, 혹은 누군가의 눈물이 될지도.
유난히 숨이 막히던 그해 여름, 나는 습도 100%였다.
겉으로는 잘 견디는 것 같았지만 속은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말 한마디, 실수 하나,
혹은 출근 버튼 하나로도 마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못한다 못한다 해서 진심으로 출근하기 싫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든 걸까? 이 일은 나와 맞지 않나?
내가 너무 뒤처졌나 싶은 생각이 출근길 발끝마다 들러붙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내 나이에 이 정도도 못 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들었다.
스스로에게는 늘 가혹했고,
그만큼 세상이 날 보는 시선도 예민하게 감지됐다.
매일이 챌린지였고, 매 순간 평가받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주를 버티다 보니, 서서히 달라졌다.
두세 달쯤 지났을까?
나는 아직도 겨우 버티는 느낌이었는데,
사람들은 나를 조금씩 인정하기 시작했다.
“잘 따라온다”,
“감이 있다”,
아주 가끔씩 “잘한다”는 말도 들렸다.
그런 말들이 기쁘면서도 무서웠다.
인정받으니 더 잘하고 싶어졌다.
욕심이 생겼다.
더 완벽하게, 더 빠르게, 더 매끄럽게.
내가 그릴 수 있는 최선에 닿고 싶어졌다.
그 목표가 멀지 않아 보이니까, 나를 더 많이 갈아 넣었다.
어느 순간부터 죽도록 잘하고 싶은 마음이
진짜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상태가 되어 있었다.
하루하루가 무거웠고, 내일이 없는 세상,
출근이 사라진 세계를 꿈꾸기도 했다.
어릴 땐 밤새 연구를 해도 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세가 나질 않았다.
나이를 먹은 걸까? 열정이 식은 걸까? 아니면 체력이 없는 걸까? 그게 무엇 때문이든 노력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을 때, 나의 감정은 한없이 차올랐다.
마음의 습도는 늘 높았고,
감정은 마르지 않았고,
나는 눅눅해진 마음을 꾹꾹 눌러 안고 출근했다.
누구나 그 정도는 하는 거라고,
이 정도는 괜찮아야 한다고 말하는 세상에서
나는 괜찮은 척하면서 계속 한계를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결국 내 안에 파랗고, 까맣게 곰팡이를 만들었다.
감정도, 습도도 너무 높아지면 결국 응결된다.
말하지 못한 마음은 언젠가 어디선가 이슬처럼 맺힌다. 그리고 더 이상 차오를 곳이 없던 어느 날,
회사 화장실 한 칸에서 눈물이 되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