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군가에겐 부분으로만 보인다
무지개는 공기 중 물방울에 햇빛이 굴절·반사·분산되면서 생기는 광학 현상이다.
사실 무지개는 원형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그 일부, 하늘에 걸린 반원이나 호만 본다. 지평선 아래쪽은 땅이나 바다,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체가 없는 건 아니다.
늘 완전한 모습으로 존재했지만, 우리가 바라본 건 그 일부뿐이었다.
며칠째 내리던 비가 잠시 멎고, 창가 너머로 무지개가 걸렸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그 색띠를 한참 바라보다 문득 생각했다.
지금 저 무지개를 이루는 물방울은 매분, 매초 변하고 있을 텐데. 왜 무지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까?
우리는 그 찰나들을 무심히 하나로 묶어 ‘무지개’라 부른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 그날의 기분은 매번 다르고,
나 자신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나이고, 당신은 여전히 당신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내가 웃는 얼굴로만 남고,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모습으로 각인된다.
마치 무지개처럼.
본래는 완전한 원이지만, 누군가에겐 부분만 보인다.
무지개는 일곱 빛깔로 이루어진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나도 그렇게 여러 얼굴로 존재해 왔다.
다정한 나, 예민한 나, 웃고 있는 나, 상처받은 나.
어쩌면 나는 한 가지 색으로만 빛나지 않았기에, 누구에게도 온전히 읽히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의 여러 색을 껴안고, 오늘도 어제와는 다른 얼굴로 하루를 지난다.
그러다 문득, 쌍무지개를 만나기도 한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두 겹으로 선 무지개를 보면 마음이 놀란다.
이런 행운, 이런 특별함이 내게도 주어졌다는 듯이.
쌍무지개는 빛이 물방울 안에서 두 번 반사되며 만들어진다. 첫 번째 무지개보다 희미하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다.
삶에서도 그런 순간이 있다.
한 사건이 두 겹의 감정을 안길 때.
기쁨과 서운함, 다정함과 거리감. 가까울수록 겹쳐 보이고, 그 겹침은 마음에 오래 남는다.
그건 흔치 않기에 더 귀하다.
쌍무지개가 드문 행운이라면,
과잉무지개는 미처 다 알아채지 못한 마음의 결이다.
아주 드물지만 과잉무지개를 본 적이 있다.
주무지개 안쪽에 여린 띠들이 몇 겹으로 겹쳐 나타난다.
파동처럼 겹치는 그 얇은 색들은 언뜻 보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사람들은 종종 그걸 지나치지만, 나는 이제야 안다.
내가 나를 이해하려면,
그 얇고 여린 부분들까지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에게나 금세 보이는 다정함이나 서늘함 말고,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떨림들. 그 미세한 결들까지 합쳐져야 비로소 나라는 걸,
이제는 나만이라도 알아주고 싶다.
나는 요즘 변하고 싶다.
말의 무게를 배우고,
사람들과의 소통에 더 귀 기울이고 싶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자주 고민하곤 한다.
나는 한 사람이지만, 각자가 나를 보는 방식은 다르다.
누군가에겐 따뜻한 사람, 누군가에겐 무심한 사람, 누군가에겐 그저 잠시 스친 인연.
그런 찰나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무지개를 만든다.
어쩌면 나는 늘 완전한 원형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의 한쪽 모습만 보고 기억했을 것이다.
내가 가진 웃음과 슬픔, 따뜻함과 서늘함은 함께여야 비로소 나인데, 세상은 그중 일부만 가져간다.
내 안에는 언제나 여러 색이 공존한다.
한없이 뜨거운 빨강, 한없이 평온한 초록, 한없이 특별한 보라.
그 색들이 얽히고 부딪히며, 나라는 무지개를 만들어왔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는 내 마음속 다양한 무지개를 알아봐 주기를.
쉽게 지나치는 얼굴이 아니라, 한 번쯤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겉으로만 알 수 없는 마음, 가까이 다가서야 비로소 보이는 겹마음으로.
나를 만난 이의 마음에 잠시라도 작은 감탄이나 따뜻한 울림을 남길 수 있기를.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요즘은 자주 생각한다.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사랑하고, 기대하고, 웃는다.
어쩌면 인생은 작은 교체와 변주의 연속, 그 위에 걸린 무지개 같은 것 아닐까.
나는 오늘도 물방울처럼 흔들리지만, 언젠가는 어떤 하늘에서든 나라는 무지개가 빛나고 있을지 모른다.
사라지지만, 남는 것.
그걸 받아들이고, 다음 무지개를 기다리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