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식지 않아서, 감정이 식지 않아서
열대야는 밤의 최저 기온이
25도 이상으로 유지되는 현상이다.
낮 동안의 열기가 식지 않고 밤까지 이어져,
몸도 마음도 쉼이 부족하다.
그런 밤이 있다.
창문을 열어도, 선풍기를 틀어도
몸이 아니라 감정이 더워져 잠들지 못하는 밤.
오늘이 지나도 오늘이 끝나지 않는 그런 밤.
그 밤의 열기는 기온 때문만은 아니다.
식지 않는 생각과
식지 않는 감정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엔 그저 기온 때문이라고,
더워서 잠을 못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
땀이 나고, 베개가 눅눅하고, 이불이 달라붙는
그런 밤.
선풍기를 세게 틀고 에어컨도 틀어봤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몸은 가만히 누워 있었지만,
머릿속은 한낮처럼 환하고 시끄럽게 돌아갔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는데,
아무 생각도 안 하려 했는데,
생각은 자꾸 꼬리를 물었다.
낮엔 아무렇지 않았던 말이
밤이 되면 유독 또렷해졌다.
점심시간에 나눈 스몰 톡, 카톡방에서의 짧은 대화, 회의 중 스친 누군가의 표정.
별일도 아닌 장면들이 왜 그렇게 오래 마음을 건드리는 걸까? 혹시 내가 실수한 걸까? 왜 그 표정이 자꾸 떠오르지?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걸 오래 곱씹을까?
감정은 언제나 생각보다 늦게 반응하고,
그 감정은 언제나 밤에 살아난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이건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잠을 방해하는 건
몸의 체온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였다.
불안, 후회, 미련, 서운함.
이런 불편한 감정들이
내 안에서 식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에어컨 바람은 내 몸만 식힐 뿐,
머릿속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감정에도 식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나는 자주 잊는다.
오늘의 감정을 오늘 안에 식히지 못하면
또 그대로 내일로 이어진다.
그렇게 감정은 쌓이고,
감정의 열대야는 결국 나를 병들게 한다.
잠은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안식할 마음의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나를 다루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천천히 식히는 법을 찾고 있다.
감정에도 통풍이 필요하다.
하루의 온도를 하루 안에서 내려놓는 연습.
그게 서툴더라도 무사히 그 밤을 지나기만 해도 잘한 것이다.
다이어리에 오늘 나를 가장 뜨겁게 했던 생각을 잠깐 적어둔다.
“오늘은 여기까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천천히 숨을 고른다.
어제도 잠을 설친 채 하루를 시작하며 생각했다.
감정은 왜 늘 밤에만 깨어나는 걸까?
몸은 지쳤는데,
마음은 가로등 불빛처럼 꺼지지 않는 밤.
감정에도 계절이 있다면,
나는 지금 어느 순간을 지나고 있을까.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생을 사계절로 나눈다면,
40대는 늦여름이 끝나고 초가을쯤 열매를 맺어야 할 때다.
스스로도 모르게 마음속에 쌓인 질문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어디쯤 와 있는지 묻게 되는 시기를 앞두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감정을 식히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의 삶을 조금 더 단단하게 살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부터 이 책을 읽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