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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귤 Apr 10. 2021

제주 녹차 이야기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때

  많은 사람이 녹차 하면 전남 보성을 떠올린다. 하지만 보성 못지않게 제주도는 녹차를 재배하기 좋은 환경을 가졌고 품질 좋은 녹차를 생산하고 있다. 제주도 날씨는 평균 온도가 높고 비가 많이 내려 녹차를 재배하기 좋다고 한다. 거기에 화산활동이 유기질 함량이 높은 토양과 배수가 좋은 암반을 만들어 녹차에 제주만의 맛과 향을 더했다. 이러한 품질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제주도의 녹차는 중국 안후이성, 일본 시즈오카현과 함께 세계 3대 녹차 재배지로 꼽힌다고 한다.


  제주에는 많은 녹차 다원과 제주산 녹차를 맛볼 수 있는 카페들이 있다. 이 중에서 단연코 가장 유명한 곳은 오설록 티 뮤지엄이 아닐까 싶다. 오설록 티 뮤지엄은 아모레퍼시픽이 녹차와 한국 전통차 문화를 소개하고 널리 보급하고자 2001년에 개관한 국내 최초의 차 박물관이다.


  오설록 티 뮤지엄은 광활한 녹차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뮤지엄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이는 넓은 녹차밭이 목적지로 잘 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뮤지엄은 전시, 기념품 판매, 체험장 등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높진 않지만, 초록 초록한 주변의 경관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도 있었다. 메인 건물에는 카페와 차 판매장이 있는데 카페에서는 직접 재배한 진한 녹차 아이스크림과 각종 녹차 디저트를 먹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차 판매장에는 여러 과일이 블렌딩 된 홍차, 커피 향이 나는 녹차 등 시중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차들이 많았는데 나는 딸기향이 나는 홍차를 지인에게 선물해 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다. 세계적인 디자인 공모전에서 패키지 디자인상도 받았다고 하니 제주에서 사갈 기념품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곳을 들러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뮤지엄 안에는 티 클래스를 하는 공간이 따로 있는데 예약을 하면 박물관 투어와 함께 티 클래스를 체험해 볼 수 있다고 한다. 티 클래스에서는 여러 종류의 녹차를 맛보고 제주 발효차 이야기도 들어볼 수 있다고 하니 차에 관심이 있다면 미리 신청하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조금 아쉬웠던 점은 이니스프리 매장이 티 뮤지엄이라는 콘셉트와 맞지 않게 뜬금없이 있어서 너무 상업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있지 않고 사람들이 많아 차밭을 온전히 즐기기 힘들었다.


  오설록 티 뮤지엄이 사람의 손길로 세련되게 만들어 놓은 녹차 전시관이라면 올티스와 오늘은 녹차 한잔은 투박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녹차밭이다. 

마음의 평화가 필요할 땐 올티스로..

  해발 320고지 중산간에 위치한 녹차밭 올티스는 오름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산속의 비밀스러운 공간 같았다. 내가 갔을 때 방문객이 혼자여서 정말 여유롭게 녹차밭을 산책할 수 있었다. 멀리 보면 진한 초록색 나무숲이 보이고 가까이에는 빽빽이 심어진 연한 초록색 찻잎이 보였다. 어딜 봐도 온통 초록색으로 가득 차서 눈이 정말 편안했다.


  녹차밭을 한 바퀴 돌고 조금 내려가니 작은 녹차 체험관이 있었다. 원래는 홈페이지에서 '티마인드'라는 프로그램을 예약하고 시간에 맞춰 방문해야 하지만 직원분께서 멀리서 혼자 왔다고 감사하게도 차를 맛볼 수 있게 해 주셨다. 내부는 큰 장식 없이 깔끔하게 테이블과 의자만 몇 개 놓여있었고 창밖으로 넓은 녹차밭이 보였다. 옆방에서는 수확한 찻잎을 직접 가공하고 계셨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정말 수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차도 다니지 않는 산골짜기의 고요한 체험관은 마치 절간 같았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과 '쪼르륵' 차를 내리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워주었다. 많아 보이던 녹차가 창밖을 보며 홀짝홀짝 마시니 어느덧 바닥을 드러냈다. 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조용히 녹차밭을 나왔다. 녹차와 함께 내 안의 소란이 씻겨 간 듯 집으로 돌아올 때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시크릿 동굴 오늘은 녹차 한잔

  '오늘은 녹차 한잔'은 사진 포인트로 유명한 곳이다. 녹차밭 가운데에 큰 동굴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판타지 영화의 주인공 등장 장면 같은 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밝기 차이가 심하고 촬영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사진을 제대로 남기려면 삼각대와 빛의 노출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좋은 카메라가 필수이다. 나와 친구는 사진에 욕심이 없어서 산책하듯 동굴 입구만 둘러보고 왔는데 눈으로만 봐서 그런지 큰 감흥이 없었다. 녹차밭 입구에는 카페와 기념품을 파는 듯한 곳이 있었는데 공사를 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동굴보다 그곳에 가는 길이 더 기억에 남는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녹차가 가지런히 심겨 있고 그 가운데로 곧게 난 길이 정말 예뻤다. 내가 갔던 날은 날씨가 흐렸었는데 왠지 모르게 오래된 로맨스 영화가 생각났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가 오는 날 나란히 우산을 쓰고 가는 풋풋한 청춘 커플의 모습이 잘 어울릴 것 같은 곳이었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굴로 향하는지 녹차밭 산책로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친구와 이야기하며 산책하기 정말 좋았었다. 


카페 산노루

  녹차를 보는 것보다 먹는 것을 좋아한다면 카페 산노루로 가보는 것이 어떨까? 이곳은 마치 녹차를 연구하는 곳 같은 연구실 느낌의 카페이다. 카페는 가지런한 벽돌 건물 두 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한 곳은 이곳에서 만든 녹차를 전시하고, 만드는 과정들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다른 한 곳은 음료와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카페였다. 


  카페에 들어가 메뉴를 보면 온통 녹차와 말차인데, 차도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니라 신선한 차, 부드러운 차, 상큼한 차 같이 세세하게 구분되어 있었다. 특히나 말차 메뉴가 많았는데 말차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말차와 녹차는 동일한 찻잎으로 만들지만, 공정과정이 다르다고 한다. 녹차는 찻잎을 우려 마시는 것이고 말차는 찻잎을 파우더가 될 때까지 갈아서 물에 타 마시는 것으로 말차가 녹차의 에스프레소 버전이랄까...? 카페의 디저트 메뉴에서도 온통 녹차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말차 양갱, 말차 초콜릿, 말차 파운드케이크까지... 녹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눈이 돌아갈 만큼 매력 있는 장소가 되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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