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걷다] 신라 진성여왕은 정말 암군이었을까

by 숲별바람

신라 역사와 한국사의 마지막 여왕이자 선대의 선덕여왕, 진덕여왕에 비해 암군으로 평가되는 인물이 진성여왕이다.


학창 시절에 역사를 배울 때는 성군으로 불리는 선덕여왕, 진덕여왕과는 달리 성적으로 자유분방하고, 정치를 못해서 신라 말기가 혼돈에 싸여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건국된 현상을 자초했던 여왕으로 생각했다.

마치 신라 말기의 모든 혼란이 진성여왕으로 인해 야기된 것처럼 알려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숙부인 각간 위홍과 혼인한 관계였다,

미소년들을 궁궐에 끌어들여 음란한 생활을 즐겼다,

백성들의 삶이 어려워 도적들이 들끓었다,

반란이 일어났다,

호족 세력이 커지면서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생겨나 후삼국시대를 열었다....




나도 국어와 국사를 배울 때 진성여왕이 각간 위홍을 통해 향가 모음집인 삼대목을 편찬했다는 내용을 보면서 '진성여왕이 이런 업적도 남겼네?' 하고 재인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재에도 가짜뉴스와 언론의 왜곡보도로 진실이 가려지는데 예전에야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 당시 역사 기록은 드문 데다 몇 백 년 후 고려의 신하들이 편찬한 기록에 전적으로 의존했을 텐데 얼마나 공정했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데 망해가는 신라왕조, 더구나 여왕의 정치력을 진실되게 기록했을까 싶다.

여왕의 사생활이야 개인적 문제고 왕이라고 성별을 바꾼다면 그리 손가락질할 일도 아닐 것이다. 또한 고대국가에서는 왕실에서의 근친 간 혼인이나 애정관계는 왕왕 있는 일이기도 했다.




정통성 있는 선덕여왕이 왕위에 있을 때도 여왕이라고 무시하고 반란이 일어났었다. 하물며 이미 기울 대로 기운 신라왕조의 여왕을 신하들이 인정해 주었을까?

오히려 망국의 조짐이 보이던 시기에 왕이 된 진성여왕이 독박을 썼을 가능성은 없나 의심이 든다.


선덕여왕, 진덕여왕이야 통일을 이루기 전 강성해지는 신라를 다스렸기에 장점이 부각되었고 미화된 면도 있었을 것이다.

진성여왕도 즉위 직후에 조세를 일 년이나 받지 않는 등 나름대로 선정을 베풀려고 애썼다.

여기저기서 불리던 향가들을 모아 <삼대목>을 편찬했고, 최치원의 시무 10조를 받아들이려 했다.

시무 10조는 정치 개혁안이라 할 수 있는데 진골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하는 걸 보면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중앙집권제를 강화시키는 제도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진섬여왕은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조카 효공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원래 몸이 약했는지, 나라를 제대로 못 다스리고 불명예스럽게 퇴위한 데 대한 자책감 때문에 쇠약해졌는지 어찌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신라를 진성여왕 혼자의 실정으로만 몰아가는 건 진성여왕으로서도 억울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역사동화] 그 바위, 그 바우 3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