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 시대의 예술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되고 계산하는 시대에, 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기이한 평온함 속에 살고 있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을 검색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영상 목록을 탐닉한다. 어떠한 위협도 없는 안전한 프레임 안에서 안주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안락한 질서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치명적인 비상사태라면 어떨까?
스페인 출신 철학자 산티아고 사발라(Santiago Zabala)는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유(Why Only Art Can Save Us)』 로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든다. 그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위기는 '비상사태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하며, 오직 예술만이 이 무감각한 일상에 균열을 내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발라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통찰을 빌려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현대 사회는 존재를 '사물'로 대체하고, 인간의 실존을 계산 가능한 객체로 환원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상태를 '존재의 망각'이라 불렀으며, 사발라는 이를 더욱 구체화하여 '비상사태의 부재'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말하는 비상사태의 부재란 전쟁이나 기근이 없는 평화로운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것을 기술적으로 조직하고 신자유주의 논리로 계산하여, 인간이 자신의 존재 근거를 망각한 채 시스템의 부품으로 전락한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는 뉴스에서 난민 위기, 테러, 경제 공황 같은 '사건'을 쉼 없이 접하지만, 사발라는 이러한 소동조차 기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프레임' 안에서 소비될 뿐이라고 일침을 가한다. 구글, 트위터 등의 거대 플랫폼은 개개인을 연결한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알고리즘을 통해 사용자의 생각을 규격화하고 통제한다. 민주주의라는 이름 아래 모든 의견이 허용되는 듯 보여도, 실제로는 체제의 근간을 흔들 위험이 있는 담론은 사전에 차단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명료하게 설명되고 예측 가능한 '세계 그림' 속에 갇혀 있을 때, 우리는 진짜 위기를 감지할 능력을 상실한다. 사발라는 이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위험한 비상사태라고 경고한다.
전통 미학 이론에서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관객이 관조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사발라는 이러한 전통 미학이 오히려 예술을 장식품으로 전락시켜 비판적 기능을 거세했다고 본다. 그에 따르면, 현대 예술은 더 이상 우리를 즐겁게 하는 무관심한 아름다움(indifferent beauty)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대신 예술은 우리를 일상의 평온에서 끌어내어 비상사태의 한복판으로 던져버리는 충격(Stoß)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은 '진리의 개시'에 있다. 여기서 진리는 과학적 사실처럼 고정된 정답이 아니라, 은폐되어 있던 존재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사건이다. 진정한 예술 작품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현실이 실은 얼마나 취약하고 모순적인지 폭로한다. 예술가는 아름다운 형태를 만드는 장인이 아니라, 시스템이 지워버린 잔해를 그러모아 우리에게 말을 거는 해석자여야 한다. 관람객 또한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이 던지는 존재론적 물음에 응답하고 개입하는 '전투적 해석자'가 되어야 한다.
사발라는 책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실제로 우리를 '비상사태로 구출'해내는 현대 예술가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들은 사회 파괴, 도시 폐기물, 환경적 재앙, 그리고 왜곡된 역사의 현장을 예술로 소환한다. 예를 들어, 영국의 예술가 듀오 케나드필립스의 작품 「포토 옵(Photo Op)」은 이라크 전쟁을 주도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불타는 유전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셀카를 찍는 모습을 합성하여 보여준다. 이는 신자유주의와 전쟁의 위선이 일상의 평온함 뒤에 어떻게 숨겨져 있는지를 단숨에 폭로하는 강력한 이미지다.
또한, 네를레 아제베두의 「최소 기념비(Minimum Monument)」 프로젝트는 도시 광장 계단에 수백 개의 작은 얼음 인형을 세워둔다. 햇빛 아래 속절없이 녹아내리는 얼음 인형은 기후 변화로 사라져 가는 빙하와 인류의 운명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우리에게 즉각적인 실천을 촉구하는 환경의 외침이 된다.
인도의 헤마 우파드야이는 뭄바이의 거대한 슬럼가를 미니어처로 재현하여, 자본주의가 생산해 낸 '도시의 배설물'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존재를 가시화한다. 제니퍼 카라디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돌아온 퇴역 군인들의 트라우마를 일상의 공간에 연출하여 사진으로 담아냄으로써, 전쟁의 상흔이 결코 과거의 일이 아님을 증언한다. 이들의 작업은 모두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의 잔해를 존재의 영역으로 불러내어, 우리를 안락한 수면에서 깨우는 비상사태의 미학을 실천하고 있다.
사발라가 말하는 '구원'은 종교의 구원이나 초월적 세계로의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시스템이 정해놓은 운명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다시 해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는 일이다. "오직 예술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는 말은 예술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열쇠라는 뜻이 아니라, 예술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생각하게' 만들고 '흔들어놓는다'는 의미에 가깝다. 예술을 통해 우리는 가장 고통스럽고 소외된 현장, 배제된 자들과 연결되고 연대함으로써 체제에 균열을 낸다.
우리는 작품 앞에서 단순히 "예쁘다"거나 "어렵다"라고 말하는 관찰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예술이 던지는 비상사태의 신호를 감지하고, 그 의미를 자신의 삶과 연결하여 재해석해야 한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평신도 스스로 성서를 해석할 권리를 부여했듯, 비상사태의 미학은 전문가나 큐레이터의 권위를 넘어 모든 수용자가 예술의 충격 앞에 각자 실존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옹호한다.
저자는 "당신은 지금 비상사태를 느끼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무감각한 평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독소이며, 예술이 던지는 불편한 충격을 기꺼이 껴안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기계적인 삶에서 벗어나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발라의 충고는 일견 비현실적으로 들리지만, 오래도록 곱씹고 사유할 화두를 안겨준다. 묻는다. 당신을 괜스레 불안하게 만들고, 질서를 의심하게 하며, 다른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예술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