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든다

문학과 심리학, 인간의 형성

by 탱귤도령


스릴감 넘치는 추리 소설을 읽은 기억을 떠올려보라. 분명 머리로는 작가가 연출한 허구임을 알고 있지만, 요동치는 심장박동과 범인을 찾느라 찌푸린 이마는 속일 수 없다. 인지심리학자이자 소설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키스 오틀리(Keith Oatley) 토론토 대학 명예교수의 『꿈으로 만들어진 것: 소설의 심리학(Such Stuff as Dreams: The Psychology of Fiction)』 은 문학이 단순한 오락이나 도피를 넘어, 우리를 어떻게 타인에게 더 깊이 공감하고 세상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지 심리학의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낸다.


그는 소설 읽기를 '마음의 비행 시뮬레이터'를 타는 경험에 비유한다. 실제 조종사가 추락할 위험 없이 시뮬레이터 안에서 폭풍우와 엔진 고장을 겪으며 숙련도를 쌓듯, 우리는 소설이라는 안전한 시뮬레이션 속에서 타인의 복잡한 감정과 사회 갈등을 미리 체험하며 '인간 이해'의 기술을 연마한다.


소설, 마음이 실행하는 시뮬레이션


오틀리는 소설을 '시뮬레이션'이라고 정의한다. 소설은 단순히 현실을 복제한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에서 보여주었듯이, 소설은 현실의 겉모습 아래에 숨겨진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모델이다.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 뇌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진다. 주인공이 전등 스위치를 켜거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을 읽기만 해도, 독자의 뇌에서는 실제로 그 동작을 수행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 꿈틀거린다. 뇌는 텍스트를 단순 정보로 처리하는 대신,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을 자신의 하드웨어 위에서 직접 실행한다.


다운로드 (4).jpeg 루시안 프로이트 - 데이비드 호크니 (2002)


타자의 마음을 읽는 기술


문학이 우리를 더 '좋게' 만드는 첫 번째 기제는 '마음 이론(Theory of Mind)'의 확장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 이론이란 타인의 신념, 욕구, 의도가 나와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오틀리는 소설 읽기가 이 능력을 크게 향상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레이먼드 마와 오틀리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이 타인의 눈만 보고 감정 상태를 맞히는 '눈으로 마음 읽기' 점수가 월등히 높았다. 이러한 경향은 독자의 지능이나 교육 수준을 통제한 후에도 유효했다. 소설을 읽는 행위 자체가 타인의 내면을 추론하는 '사회적 근육'을 단련케한 셈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개 복잡한 욕망과 모순된 감정을 지닌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의 주인공들을 지켜보며 그들이 왜 사랑에 빠지는지, 왜 오해하고 후회하는지를 열심히 추론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나'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운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동등한 자아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그것이 문학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우리를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 출발점이다.



1920px-Jan_Vermeer_-_The_Art_of_Painting_-_Google_Art_Project.jpg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 회화의 기술 (1665~1666)


공감의 확장과 자아의 변형


문학의 두 번째 힘은 '공감의 확장'이다. 우리는 나와 전혀 닮지 않은, 때로는 혐오스러운 인물의 계획과 목표를 자신의 마음속 시뮬레이터에 입력한다. 히치콕의 영화를 보며 범죄자의 긴박함에 가슴을 졸이거나, 18세기 하녀의 수난에 분노하며 우리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타자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역사학자 린 헌트는 18세기 서구 사회에서 인권 개념이 싹틀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로 소설의 유행을 꼽는다. 이름 없는 하녀나 노예의 삶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당시 사람들은 계급과 인종이 다른 타인도 나와 똑같이 느끼고 고통받는 존재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소설이 만들어낸 공감의 연대가 실제 세상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동력이 된 것이다.


오틀리는 소설이 개인의 고정된 자아를 유연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마야 지키치 등의 연구에 따르면, 체호프의 소설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은 독자들은 단순한 법정 보고서 형식의 글을 읽은 이들보다 자신의 성격 특성이 변했다고 느끼는 폭이 컸다. 예술로서의 소설은 우리의 습관적인 방어 기제를 허물고,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완고한 정의를 잠시 내려놓게 한다. 이 '자기 변화의 틈새'야말로 우리가 더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귀중한 공간이다.


또한 빅토르 쉬클롭스키가 제안한 '낯설게 하기'도 자아의 변형을 북돋는다. 우리 삶은 매너리즘에 빠져 굳어 있지만, 문학은 비유나 독특한 시점을 통해 대상을 생소하게 만들어 우리의 주의를 환기한다. 톨스토이가 말(馬)의 시점에서 인간의 소유 개념을 묘사한 것은 이러한 기술의 정수다. 문학적 장치들은 독자로 하여금 일상의 무감각함에서 벗어나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자극제가 된다.


1920px-1602-3_Caravaggio,Supper_at_Emmaus_National_Gallery,_London.jpg 카라바조 - 엠마오의 만찬 (1602)


문학을 읽는다는 것의 도덕적 의미


정보가 범람하고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 왜 여전히 종이 위의 허구적인 이야기가 필요한가? 그것은 오직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타자에 대한 경외감'과 '공감의 연습' 때문이다. 문학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시뮬레이션 장치'다. 우리가 소설 혹은 시집 한 권을 덮을 때, 우리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옆 사람을 보게 된다. 그 사람의 무뚝뚝한 표정 뒤에 숨겨진 슬픔을 짐작해보고, 그가 내뱉은 날카로운 말 한마디의 맥락을 사색해본다.


소설 읽기는 뇌라는 생물학적 하드웨어 위에서 구동되는 정교한 '사회적 지능 강화 소프트웨어'이다. 우리는 소설이라는 '환상'에 허우적거리며 수천 가지 삶을 경험하고, 타인의 마음속을 항해하며, 우리 자신의 자아를 더 깊고 넓게 확장한다.


소설이 제공하는 진실은 과학의 진실과는 다른 '개인적 진실'이다. 이 개인적 진실의 탐구가 우리가 타인과 연대하고, 인간 존재의 불가피한 고통과 우연성을 수용하며, 더 나은 사회적 존재로 성장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동력이다. 오틀리의 책은 소설을 읽는 행위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인간다운 마음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자기형성의 수행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61sMlRy+ibL._AC_UF1000,1000_QL80_.jpg Such Stuff as Dreams - Keith Oatley,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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